자빠진 나를 사랑합니다.
채경숙
엄마 빨리 준비하세요. 딸이 눈도 다 뜨지 못한 나를 서두르라고 자꾸 다그친다.
어젯밤 늦게 경주에서 올라와 일어나지지가 않아 뒤척이는 중이다.
한나절 쉬면서 혼자 사는 딸아이 집 정리도 좀 하고 시장도 좀 봐서 맛있는 것도 해주고 싶다. 그러나 딸은 오랜만에 서울에 온 엄마를 그냥 집에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 물로 멋지게 샤워를 시킬 셈인가 보다.
딸의 직장은 종로에 있다. 오늘은 종로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인사동도 가 보란다. 점심을 같이 먹고 청계천도 걸어야 한단다. 퇴근 후에는 북촌 마을에 가서 인력거도 타야 한단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쉬고 싶은데..........
결국 출근하는 딸을 따라나서기로 했다. 요즘은 스마트시대다. 엄마 4분 남았어요. 다음 버스는 16분후에 오니 이 버스를 타야해요. 빨리가요. 생활이 분으로 계산되는 서울 생활의 현장이다. 저만치 앞서가는 딸을 따라 뛰다시피 걷는다. 횡단보도를 막 지나 인도로 올라오다 그만 턱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걸려 자빠지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아플 새도 없이 일어났다. 앞서가던 딸이 놀라 달려왔다. 다행히 다리를 조금 긁히고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괜히 딸아이에게 미안하다. 칠칠치 못한 엄마 같아 보여서...........
그런데 딸은 또 자기가 자꾸 다그쳐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미안해하는 눈치다.
겨우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가 종로에 내려 딸은 사무실로 난 어느 커피집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어져 있고 사람들은 별로 없다. 딸 등쌀에 시골 아줌마는 종로 한복판 커피집에서 아침을 먹게 생겼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따스한 커피 한잔과 계란빵하나를 시켜 놓으니 그 기분도 나쁘지 않다. 낮선 공간에 호젓하게 앉고 보니 여행 온 기분도 든다. 펜을 들었다. 나는 요즘 손글씨 쓰는 재미에 빠져서 산다. 손글씨란 약간의 멋내기 글씨쓰기다. 서예가 번거로워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약식 붓펜글씨다. 좋은 글을 정성껏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도 재미있다. 오늘은 혜민 스님의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를 써서 출근한 딸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얼마나 빠른 세상인가 보내고 5초도 되지 않아 딸에게서 답이 왔다. 엄마 한 낱말이 빠졌네요.
‘자빠진 나를 사랑합니다.’ 가 맞지요? 길 가운데서 자빠진 엄마를 이렇게 놀려대다니.
나는 순간 그 말이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웃음이 나왔다. 요즘 아이들 말로 빵 터졌다.
웃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또 웃었다.
한참 후에 나는 이렇게 써 보냈다.
살면서 나자빠진 일이 한두번이냐. 그 때마다 누가 볼새라 털고 일어나 예까지 왔는데
‘그래, 자빠진 나를 더 사랑해야지.’
첫댓글 짧으면서도 깊이 있는 글이네요. 글 제목도 재밌고요.^^ 북촌에 인력거가 생겼다니 저도 봄에는 가서 한번 타봐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인력거를 타서 보는 세상은 또 다르데요. 인력거를 타면 설명을 해 주는데 보이지 않았던 이곳 저곳 구석구석을 설명과 함께 안내해 줘서 좋았어요. 그리고 인력거를 타고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그앞 미술관에도 가서 어슬렁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서울에서 보낸 시간들은 새로운 경험들이었습니다.
무리님의 이야기 재미있어요. 자주 들려 주세요.
발목이 부실한 지 저도 잘 자빠지는 편인데,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사랑해줘야겠네요. ㅎㅎ
부족하다고 해도 남들보기 조금 부족해 보일수 있어도...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를 많이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빠진 나는 더 더욱 사랑합니다. 늘 체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서울에서의 시간들은..........엄마를 닮아서 긍정의 아이콘으로 즐겁게 재미나게 맛있는거 먹고 재미난 영화, 연극보고 미술관 찾아가고, 새로운 곳도 가보느라 바쁘게 다니다 보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카페 투어, 디저트 카페, 쇼핑 할게 넘쳐나는 곳이 서울이 잖아요. 자빠지며 따라다녀도 다 못 보고 내려오곤합니다. 최근에 가 본 별마당도서관에서는 기가 딱 막히데요 쌓아 놓은 책들과 사람들로~~~~~지하세계의 또 다른 명소를 발견
대중교통 이용하기도
생생하면서도 위트가 있네요 ~^^~
서울가면 늘 대중교통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합니다. 미션들을 해결하는 일이 재미도 있고 스릴있어서 좋아요. 교보문고에서 만나기~~~ 청계천에서 만나기~~ 미술관에서 만나기~~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