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눈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행하신 일은 당신의 기도처였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온전히 감당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제자들을 기도처인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기도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기에, 그 마음에 고민이 매우 커서 죽을 지경이었다고 오늘 본문은 전해줍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땀에 피가 베이도록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여기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십자가 죽음을 앞둔 당신의 고민과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신 듯 그들을 이곳에 앉아 있으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 즉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사람은 당신과 함께기도의 자리로 데리고 나아가셨습니다.
왜 그 세 사람만 변화산에서와 같이 기도의 자리로 데리고 가셨는지 본문은 자세히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초대교회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베드로와, 사도 중 가장 먼저 순교하게 될 야고보, 사도 중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복음서와 서신서, 그리고 계시록을 기록하게 될 요한이기에, 그들에게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그들만을 데리고 당신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는 오늘 본문 41절에 의하면 ‘깨어 기도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에게 ‘당신과 함께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과 함께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그 세 사람을 데리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신 것은, 그들에게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는 그 의미를 세 가지로 살펴 볼 수있습니다.
먼저는 어떨 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22장4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기도하셨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거리라는 것은 매우 가까운 거리를 나타내는, 당시 유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던 관용적 표현으로서, 실제로 돌을 던졌을 때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말합니다. 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예수님께서 고민하며 땀에 피가 배이도록 기도를 하셨다는 것은, 제자들이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길 원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이 당신의 기도를 듣고 교훈을 얻길 바라셨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가깝게는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나면, 그리고 멀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나면, 제자들만 이 땅에 남겨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십자가 죽으심을 앞에 두고 당신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들 또한 앞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주님께서 지게 하실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할 상황 속에서, 당신처럼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 당신처럼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를 통한 동역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과 함께 기도하라 하신 것은, 당신의 기도가 부족하거나 기도의 능력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위해 당신과 함께 기도하게 하심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라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합력하여 중보하며 기도해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해, 일부러 그들을 데리고 올라가셔서 당신을 위해 중보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지금껏 서로 자신이 높다고, 서로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고 싸우고 다툰 적은 있어도,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 경험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제 제자들만 남겨지게되고, 또 교회가 세워지게 될 때에,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보기도가 되어야 하기에 이처럼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가 사역의 시작과 끝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초대교회에서 보여지는 가장 특징적인 신앙의 모습은 중보기도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투옥되고 온갖 핍박과 심문을 받고 있을 때에, 그리고 베드로가 헤롯에게 붙잡혀 참수를 당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성도들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기도의 동역자가 될 때, 교회는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처럼 어떠한 일에도 흔들림없이 날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을 위해 깨어 기도하게 하심으로 가르치신 결과였습니다.
마지막 가르침은, 기도를 통해 그들과 동행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고민하며 기도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홀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해 계셨고, 누가복음 22장43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위해 천사들을 보내셔서 예수님께힘을 더하게 하셨으며,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는 동안 죽을 정도의 고민과 슬픔이 평안과 담대함의 결단으로 바뀌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들이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며, 그들이 기도할 때그들에게 힘을 더하여 주실 것이며, 그들이 갖고 있는 기도의 제목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평안과 담대함과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역사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듯이, 우리를 깨워이 기도의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당신과 함께 깨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제자들 뿐아니라 우리 역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함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길 원한다면,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깨어서 기도해야 함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중보기도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성도가 성도로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중보기도로 동역함으로, 모든 사역을 시작하고 끝맺어야 합니다. 두 세 사람이 중보하기 위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께서 그곳에 함께 해 주실 것이요, 그 믿음의 기도를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며, 우리에게 힘을 더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평안과 용기로 채우사, 기도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친히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두번째날,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기억함으로, 이번 한 주간의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