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김경주
한번은 쓰다듬고
한번은 쓸려간다
검은 모래해변에 쓸려온 흰 고래
내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지갑엔
고래의 향유가 흘러 있고
내가 지닌 가장 오래된 표정은
아무도 없는 해변의 녹슨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씹어 먹던 사과의 맛
방 안에 누워 그대가 내 머리칼들을 쓸어내려주면
그대의 손가락 사이로 파도 소리가 난다
나는 그대의 손바닥에 가라앉는 고래의 표정으로
숨쉬는 법을 처음 배우는 머리카락들,
해변에 누워 있는데 내가 지닌 가장 쓸쓸한 지갑에서
부드러운 고래 두 마리 흘러나온다
감은 눈이 감은 눈으로 와 비빈다
서로의 해안을 열고 들어가 물거품을 일으킨다
어떤 적요는
누군가의 음모마저도 사랑하고 싶다
그 깊은 음모에도 내 입술은 닿아 있어
이번 생은 머리칼을 지갑에 나누어 가지지만
마중 나가는 일에는
질식하지 않기로
해변으로 떠내려온 물색의 별자리가 휘고 있다
첫댓글 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