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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5] 깨달음의 첫 발자국 / 정병조
카필라의 험준한 성을 넘어서 히말라야로 덧없는 발길을 옮기게 된 싯다르타는 우선 자신의 비단옷을 사냥꾼의 누더기 옷과 바꾸어 입었다. 그리고 사냥꾼의 칼을 빌려서 스스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평범한 수도자가 되었다.
29세 때 출가하여 설산 히말라야에서 행한 모진 고행과 당시의 다른 스승들에게 배운 것에 대해서는 현재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는 않으나 대체로 요가수행을 하였으리라고 짐작된다.
요가학파는 인도 정통 철학의 6파 중 하나이며, 요가라는 수행방법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으로 쓰고 있었다. 요가학파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으로써 요가라 는 독특한 방법을 개발하였다. 거기에는 8실수법(八實修法)이라는 실천적인 수행단계가 있다. https://naver.me/FgvYOko0
즉, 조식(調息), 조신(調身),내외합일 등의 구체적인 수행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요가수행자들은 '육신 안에는 순수한 정신, 즉 영혼이 있다. 이러한 순수한 정신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순수한 정신은 육신의 결박으로 인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육신의 결박으로부터 영혼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육신을 괴롭혀서 감각적인 기능을 탐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해탈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고행이라는 독특한 수행방법이 도출 된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도 수행을 할 때 새로 배부르지 않을 만큼 소식을 하고, 밤에도 잠들지 않고 위대한 대각을 위해 극심한 고행을 했던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에 소장중인 고행상은 이러한 싯다르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움쭉 패인 두 눈,다 드러 난 실핏줄 등이 섬세하게 표현된 실물 크기의 고행상은 간다라 예술의 걸작품이다. 이 고행상은 부처님같이 위대한 인격체일지라도 뼈를 깎는 수도의 단계가 없이는 대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 고행상에서 우리는 싯다르타의 모진 고행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목숨을 읽어버릴 뻔한 고행 중에 싯다르타는 고행을 통해서는 끝내 대각을 얻지 못 할 것이라는 소박한 자기반성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이것 은 상당히 어려운 결심이었다. 왜냐하면 출가 고행을 중 시하던 그 당시 수행자들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부처님 이 고행을 포기한 것은 수행자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비난과 질시를 무릅쓰고, 싯다르 타는 나이란자라 강둑으로 발을 옮긴다. 어린 소녀 수자 타가 올린 우유죽 공양을 받고 나아란자라 강에서 목욕 을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그는 보리수 밑에 풀 방석을 깔고 앉은 채 굳은 맹세를 한다.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그 후 꼭 이레째 되는 날, 새벽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위대한 깨달 음이 싯다르타의 뇌리를 스쳤다.
무엇이 이 삶을 고통으로 이끄는가?
어떻게 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의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윤회의 사슬을 푸는 열쇠는 무엇인가?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위대한 깨달음이 열린 그 때의 광경을 불교경전은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다. 천지가 진동하면서 하늘에서 꽃들이 뿌려졌다. 이 위대한 인류의 성인을 위해서 온 대지의 생 명들이 춤을 쳤다. 그 순간부터 싯다르타는 스스로를 붓다. 즉 '깨달음을 얻은 이'라고 불렸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 때 그의 나이 35세였다.
이 깨달음의 성지는 현재의 지명이 보드가야이며, 인도 중북부에 있는 상당히 큰 도시이다. 불멸 후 2백 년경, 아 쇼카 대왕이 이곳을 참배하고 석주를 세우고 큰 절을 일구었으나, 그 후 몇 차례의 전란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11세기경(미얀마)스님 들이 대각사를 세우고, 다시 증축을 계속하여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7세기 중반에 이미 보드가야의 불적지가 많이 훼손된 흔적들이 보인다. 또한 혜초스님의 << 왕오천축국전>>에도 언급이 되어 있다. 지금도 보드가야에는 세계 각국의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찬탄하고,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곳에는 스리랑카, 티베트, 미얀마, 중국, 일본 등이 각기 자국의 절을 세위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고, 순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부처님의 위대한 깨달음, 그 내용은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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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四聖諦)는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고(苦), 집(集), 멸(滅), 도(道)를 가리킨다. 이 세계는 고통(苦)이며, 고통의 원인(集)은 욕망이고, 고통을 소멸(滅)하기 위한 길(道)을 통해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열반에 이르는 길인 도제(道諦)에는 여덟 가지의 수행 덕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팔정도이다. 팔정도(八正道)에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있다.
https://naver.me/GsjJFS2u 아리안-조로아스터교-불교-이슬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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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영혼은 영원하지만 육체는 유한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사상이 강하다. 그래서 더러운 육체를 신성한 땅에 묻지 않고 조장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선행을 강조한다. 여기에서는 선신(아후라마즈다)과 악신(아리만)의 싸움에서 결국 선신이 이긴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선행을 강조한다. 선행을 하면 죽은 다음 심판을 받아 복락을 누리지만 악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사상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중심 사상이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는 불교의 팔정도와 유사한 삼정도(바른 생각, 바른 행동, 바른말)를 강조한다.
그 모든 것들은 삶의 진실을 일러주는 진리의 가르침이다. 대각의 성지 보드가야에는 2천 5백여 년 부처님의 깨달음을 시공( 포)을 초월해서 답습하려는 많은 순례자들이 그곳을 배회하고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영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불교 가 2천 5 백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변함없이 그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각사의 절터에는 굽타시대의 작품이라고 보여 지는 불상들이 외벽에 조각 되어 있다. 그중 대각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의 불상이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미얀마와 스리랑카의 스님들이 번갈아 가면서 수행도량을 지키면서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진리의 문을 여신 부처님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은 사르나트로 발길을 옮겼다. 사르나트, 즉 녹야원(사슴동산)에서 대각을 얻은 보드가야까지는 250km,약 600리가 넘는 길이다.
그런데 그곳을 최초의 설법지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르나트가 있는 도읍을 바라나시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그곳은 종교인들의 중심적인 성지였다. 종교적인 성인들이 설산에서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모여드는 장소였다. 이 바라나시는 카시 강과 갠지스 강이 굽이쳐 돌아가는 힌두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부처님도 이곳을 그가 깨달은 진리를 설파하는 최초의 장소로 선택하였으며, 히말라야에서 함께 수도했던 다섯 비구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보드가야에서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악마 마라의 유혹의 대한 이야기이다. 악마 마라가 부처님의 위대한 깨달음을 질투하여 이렇게 유혹하였다고 한다.
"부처님, 당신은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 중생들은 당신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수고로운 일을 하려고 합니까?
이 악마의 유혹에 관한 전설은 싯다르타의 내면적 번민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 즉, 그가 깨달은 진리의 내용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 가르침이 얼마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회의를 구상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결연히 일어선다. 무명의 중생들을 향해서 그 위대한 깨달음을 전파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녹야원에 도착할 후, 최초로 그 깨달음의 내용을 다섯 명의 비구들을 위해서 설법하였다. 몇 구절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삶은 고통이다.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어야 하는 것. 모두 고통일지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 는 것, 원한 있는 사람과 만나는것 역시 고통이니라, 구하나 얻어지지 않는 것도 고통이니 요컨대 번뇌의 수풀 위에 뿌리박고 있는 이 몸이 존재하는 것이 고통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 고통의 근본인가? 탐내고(貪), 성내고(瞋), 어리석은 것(癡) 이 세 가지(탐진치)가 모든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이니라. 그러한 고통의 소멸을 열반이라 한다. 그것은 끊어 오르는 듯한 애욕, 그 욕망을 벗어나 영원한 기쁨에 안주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경지를 얻을 수 있는가? 올바로 보고,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말하고, 올바른 업을 지니고, 올바른 생활 수단을 갖고, 올바로 기억하고, 올바로 노력하고, 올바로 마음을 닦는 일 이것이 열반을 얻는 방편이니라. 이것이 바로 사제 팔정도라 불리는 초기 불교의 설법이다
여러 종교의 전통들이 대부분 탄생지가 돌아가신 곳을 성지로 삼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 최초의 설법지인 녹 야원도 성지로 꼽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불교에서는 말을 그다지 중시 하지는 않는다. 선종의 불립문자도 같은 전통 위에 있다. 다만 진리의 말을 펴게 된 것을 중시할 따름이다. 전법륜이라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의미이다. 또 만((卍')자는 수레바퀴의 살을 구상화한 것이다. 거기에는 부처님의 위대한 진리의 설법이 영원히 펼쳐질 것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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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를 비롯한 인도 계통의 종교에서 종교적 상징물로 사용되는 문양. 한자로는 '만(卍)' 혹은 '만자(卍字)', '만자문(卍字紋)'이라고 읽는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스와스티카'(स्वस्तिक, Swastika) 또는 '슈리바차'(श्रीवत्स, Shrivatsa)[2]라고 한다.
프라크리트어[3]로는 삿티야(𑀲𑀢𑁆𑀣𑀺𑀅, satthia)라고 불렸다. 태국과 캄보디아에서는 힌두교나 대승 불교를 통해 만자가 전래되어 '스와스티카'를 어원으로 삼는 단어로 부르지만 미얀마에서 만자는 법륜과 동일시되어 '세짜(စကြ, 차크라)'라고 불린다.
파일펏(fylfot)이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갈고리 십자, 영어로 직역하면 Hooked Cross)라는 이름도 어원의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모양이다.
고대인들은 卍을 태양의 빛 혹은 우주의 순환과 윤회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겼다.
만(卍)자, 하켄크로이츠에 대해 오해가 있다. 45도 회전된 우만자인 卐도 하켄크로이츠 보다 먼저 동양에서 사용된 기호이다.# 기존 아시아 신앙자들과 미국 원주민 입장에서 매우 억울한 사례.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그리스 등 고대 문명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이 문양의 사용이 발견되었고 아리아인[4]들도 사용했으며 곳곳으로 퍼져나간 아리안 문화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인도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종교나 지역마다 각기 해석이 다르다. 천문학과 연관되어 설명되기도 하는데 작은곰자리가 회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설도 있고 전한 시대의 비단책 유물인 《천문기상잡점》에 나온 것처럼 혜성의 꼬리를 형상화했으리라는 해석도 있다. 어느 해석이든 기본적으로 소용돌이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동일하다. 때문에 정확한 한자 卍의 형상 외에 '소용돌이치는 유사한 형상'들도 '스와스티카(슈리바차)'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