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3 (토) 이재명의 자충수…약속 깬 '방탄 호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9월 21일 국회에서 가결됐다.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재명 대표가 전날 페이스북에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뒤집고 공개적으로 부결을 호소한 것이 민주당 내 이탈표를 부추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20일 넘게 이어온 단식이 결국 ‘방탄 단식’이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다. 이재명 대표는 정치적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당장 이르면 다음주 초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아야 하는 등 구속 갈림길에 놓였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무기명 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여야 의원 295명 중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이었다. 체포동의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 참석에 과반 찬성(148명)인데, 149명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국민의힘(110석)과 정의당(6석), 범여권(4석)에서 던질 것으로 예상한 찬성표 120표보다 29표 많았다.
기권·무효표 10표를 포함하면 민주당(167명) 등 범야권에서 39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단식 22일째를 맞은 이재명 대표는 이날 본회의에 불참했다. 대신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윤석열 검찰은 법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있다”며 부결을 호소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고성을 지르며 반발해 한때 의사진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했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에서는 친이재명(친명)계와 비이재명(비명)계 간 갈등이 분당을 우려할 수준으로 격화할 전망이다.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이탈표 색출에 나섰고, 당 내에선 지도부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지난 9월 18일 배임(백현동 개발특혜 의혹), 위증교사(검사사칭사건 재판 관련), 뇌물과 외국환거래법 위반(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혐의 등으로 이 대표의 사전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野 39명 이탈표 나왔다
9월 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이 자칫 ‘방탄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는 당내 위기감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6월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는데 말을 바꿔 당에 부결을 요구하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건 어떤 이유에서도 국민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대표의 장기 단식과 부결 호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서만 이탈표가 30표 넘게 나오면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 타격은 물론 분당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가결표 색출’이 본격화하면 당내 분열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 이재명 단식·부결 호소 되레 역효과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무기명 표결에는 재적 의원 298명 중 병상 단식 중인 이재명 대표와 수감된 윤관석 무소속 의원, 해외 출장을 간 박진 외교부 장관 등 3명을 제외한 295명이 참여했다. 이 중 149명이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다. 가결에 필요한 148표를 한 표 차로 넘겼다. 국민의힘(110명)과 정의당(6명), 범여권(4명)의 찬성 예상표 120표보다는 29표 많았다. 기권·무효 10표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민주당에서 39표의 이탈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비이재명(비명)계뿐만 아니라 비주류 의원 일부도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충격에 빠졌다. 22일째 단식 중인 이재명 대표가 표결 전날 1989자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올려 부결표를 던질 것을 직접 호소했지만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고위원회 등 당 지도부도 의원총회에서 ‘부결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의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사실상 ‘당론 부결’을 주문한 것이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표결 직후 취재진과 만나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여러 차례 부결을 호소했는데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전 박광온 원내대표를 만나 “당 운영에 대한 의원들의 우려를 알고 있으나 편향적인 당 운영을 할 의사나 계획이 전혀 없다”는 뜻을 전했다. 당직 배분, 총선 공천 등 당 운영에서 비명계 몫을 신경 쓰겠다는 의미였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 총선 패배 위기감에 이탈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의 설득에도 이탈표가 대거 발생하며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건 그만큼 ‘사법리스크’에 대한 당내 우려가 크다는 걸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국회’를 이어가면서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이 어려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비명계 한 의원은 “체포동의안이 이번에도 부결되면 우리 당은 정말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며 “내년 총선에서 중도층을 비롯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명분이 사라진다”고 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당당하게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을 받아내면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혐의가 없다는 걸 법원에서 입증하고, 사법리스크를 털어내는 게 당이나 이재명 대표 본인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다. 비명계의 다른 의원은 “이번 표결에서 가결과 부결 결과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며 “이재명 대표가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소명해 기각을 받아내면 된다”고 말했다.
‘가’ 썼지만 점 찍고 동그라미… 李체포안 무효표 4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나온 무효표 4개 중 2개에는 ‘가’라는 글씨가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른 기호가 함께 표기돼 논란 끝에 무효로 처리됐다. 9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은 재적의원 298명 중 295명이 참여해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가결됐다.
가결 정족수인 148명(출석의원 과반)보다 1표가 많게 가까스로 가결된 터라 여야는 무효표에 민감한 상황이었다. 투표용지에는 한글 또는 한자로 찬성을 뜻하는 가(可) 또는 반대를 의미하는 부(否)만 표기하도록 돼 있다. 다른 글자나 마침표 등 기호를 표시하면 무효로 처리되고, 투표용지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엔 기권으로 처리된다.
이날 감표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가’ 옆에 희미한 점이 표시돼있는 투표지였다. 점이 없는 것으로 치면 가결표로 볼 수 있으나, 희미한 점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무효표가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 투표지의 희미한 점이 ‘투표용지에 묻어난 잉크’라며 가결표라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은 점이 찍혔기에 무효표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민의힘 윤재옥·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를 불렀고, 양당 원내대표들이 1분가량 상의한 뒤 이 투표지를 무효 처리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그 표 한 표가 결과를 바꾸는 사안이 아니었기에 (무효 처리를)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투표지가 무효 처리되더라도 이미 가결표가 가결 정족수보다 많아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머지 무효표 3표 중에는 ‘가’를 쓴 뒤 글자 둘레에 동그라미를 덧씌워 ‘㉮’로 표시한 1표도 있었다. 나머지는 ‘기권’이라고 적은 1표와 글자 없이 점만 찍은 1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표위원이던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개표 이후 페이스북에 “마지막 무효 처리된 한 표는 ‘가’ 옆에 희미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사실상 150명 가결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 표시된 무효표를 두고도 ‘가결표를 던지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민주당 의원의 의사 표시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국민의힘에서 제기됐다. ‘㉮’로 표시된 무효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에서도 나온 바 있다. 지난 2월 부결된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감표 과정에서는 ‘부’인지 ‘무’인지 명확하지 않은 글자가 적힌 투표지 2장으로 여야 간 갑론을박이 벌어져 개표가 1시간 넘게 지연됐다.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은 둘 중 한 표는 ‘부’로 처리하고 나머지 한 표는 무효로 처리했다.
윤석열 대통령 수용 뜻 없는… 한덕수 총리 해임안
9월 21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한덕수 총리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를 예상하고도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의 책임을 총체적으로 묻는 의미를 담아 해임건의를 추진한 것이어서, 여야 대치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찬성 175명, 반대 116명, 기권 4명으로 한 총리 해임건의안을 가결했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은 재적 의원(298명) 중 3분의 1이 발의하고, 재적 의원 과반(150명)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여당인 국민의힘(110명 투표)과 여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이 반대하고, 민주당(167명 투표)과 정의당(6명),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진 결과로 보인다. 지금까지 김황식 전 총리 등을 대상으로 총리 해임건의안이 여덟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되거나 부결됐다.
민주당은 지난 9월 18일 한덕수 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면서, 한덕수 총리가 이태원 참사, 잼버리 사태,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 과정, 해병대 상병 순직 사건 등에서 전혀 책임지지 않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한덕수 총리가 지금까지의 국정운영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겠다’며 지난달 8월 31일부터 이어온 단식투쟁에 발맞추는 뜻도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내부 갈등 에너지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정부에 총구를 겨눴다”(지난 9월 18일, 윤재옥 원내대표)며 ‘정쟁용’이라고 일축했다. 이날 한덕수 총리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된 뒤에도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민생을 내팽개친 야당, 사법 리스크에 빠진 제1야당 대표가 초래한 희대의 비극이자 헌정사의 오점”이라고 비난했다. 한덕수 총리는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뒤 간부들과의 회의에서 “지금과 같이 열심히 일하자”는 취지로 짧게 언급했다고 한다.
한덕수 총리 해임건의안은 이제 윤석열 대통령 책상 위로 올라갈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입장이 없다”고 밝혔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권 인사들이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에서의 욕설 논란 등을 “사상 최악의 순방 외교 대참사”라고 규정하며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을 때에도, 즉시 거부했다.
하지만 한덕수 총리 해임건의안은 여야 대치 국면에서 나머지 인사 문제들과 함께 갈등을 더욱 키우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 25일 국회 본회의 표결이 예상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경우, 야당은 부결 의지가 강하다.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부결될 경우, 사법부 수장 공백이 발생한다. 신원식 국방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야 격돌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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