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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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다니던 성당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기억 속 성당 입구에는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둘러싸야 안을 수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왼편에는 성모동산이 있었고 등나무 아래에는 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다란 성당 벽은 흰색이었고, 천장에 달린 전등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소한 모습 하나하나가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성당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성당에 관심과 사랑이 있었나 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성전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신 지 40일 만에 성전에 봉헌되셨습니다. 열두 살 때에는 아버지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부모에게서 떨어져 성전에 남으셨습니다. 나자렛 생활 동안에도 해마다 과월절에는 성전에 올라가셨을 것입니다. 공생활을 하시던 중에도 주기적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성전은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이며,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한 성전이 오늘 복음에서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예수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과거, 하느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우상을 섬겼던 이집트인들에게서 이스라엘을 빼내시고, 시나이 산에서 금송아지를 부수어버린 분이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서 합당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전에는 적당히 예의를 차리려는 사람들로만 가득했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성전에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온몸으로 사랑의 응답을 드리려고 노력하셨던 예수님께서 채찍을 드셨습니다. 잘못된 모든 것에 하나도 빠짐없이 채찍이 닿도록 하셨습니다. 잘못된 것이 담긴 그릇을 쏟아버리셨습니다. 잘못된 것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도록 엎어버리셨습니다. 잘못된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도록 치워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하느님의 성전’이셨습니다.
성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내치시는 그분의 마음과 행동은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내 안에 오직 ‘주님의 집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신 분’만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 성전의 본래 기능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순시기동안 내가 참된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온전하게 사랑을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정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정화의 손길이 나의 손길이고 싶습니다. |
강버들(F.하비에르) 신부 신장성당 보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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