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멸시하지 않는 하나님
욥기 36:5,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찬송가 299장(하나님 사랑은)
오늘 말씀을 원문으로 보면, 이 한 구절에 ‘전능하다’는 뜻을 가진 ‘카비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옵니닫. 그래서 원문을 따라 번역을 다시 하면, “하나님은 힘에 있어서도 전능할 뿐 아니라 그의 지혜의 능력에 있어서도 전능하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능력이 한이 없으신데, 한 가지 더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성에 반하여 하나님께서 가지신 다른 성품을 여기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라는 말씀대로, 그는 그 아무리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비교한다면 말을 다할 수 없을 만큼 인간들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시되,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그들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인간 앞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결코 과시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젠 체하지 않으시며 뻐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힘을 다 과시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영광과 능력과 위엄을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숨기십니다. 자기의 힘을 빼십니다. 그는 도리어 약한 자, 뒤처진 자, 버림받은 자들을 품으십니다. 모든 사람을 안으십니다. 그들의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십니다. 그들 곁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규례들을 보면 항상 하나님께서 기업이 없는 가난한 레위인들과 떠도는 나그네들과 고향 땅에서 떠나 지내는 거류자들과 이런 저런 이유로 가난해진 자들을 항상 챙기도록 명하십니다. 절기 때에도 그 백성들에게 반드시 성읍의 가난한 자들과 함께 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화목제물을 드린 경우에도 제사장에게 드린 음식 외에 가난한 이웃들이 함께 성전에 올라온 경우에 그들과 함께 나누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그 당시에 주류 사회에서 완전히 내친 사람들을 품으셨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이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가까이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보고서 그 아이들과 그 부모를 제지하며 책망하던 자기 제자들을 향하여 도리어 크게 책망하시면서 그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허락하라고 하시면서 그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안수하고 축복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완전히 소외된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이처럼 온전히 존중해주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들을 품으시고 존중해주며 품고 가까이 해주신 것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시는 성품을 보여준 대목입니다.
생각해보면,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의 첩 하갈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내칠 수 있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첩으로 들인 일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하갈을 정실부인 사라가 학대하고 내쫓아서 하갈이 광야에서 헤매다가 목말라 죽을 상황이 되자,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오시고 사라에게 돌아가 복종하라고 타이르고 잉태한 아이의 이름도 정해주시고 목마른 그녀에게 우물 물을 마시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아 기르다가 사라가 노년에 낳은 이삭이 젖을 떼는 잔칫날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함부로 대하여 사라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하갈은 아이를 데리고 또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광야에 내몰려 목이 말라 죽어갈 하갈과 이스마엘 아이에게 다시 찾아와 주시고 위로하고 격려해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샘을 보게 하시고 다시 물을 마시고 살게 해주시고 축복하시어 나중에 큰 민족이 이루어지게 해주셨습니다.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의 경우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외갓집에 가서 라헬을 사랑하여 아내로 삼고자 칠년을 무료봉사했습니다. 그런데 첫날 밤에 간교한 장인 라반이 큰 딸 레아를 신방에 들여넣어줌으로써 야곱은 억지로 레아를 맞고 칠일 후에 라헬을 다시 맞아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오직 라헬만 사랑하여서 레아는 본체만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아버지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곱과 결혼한 까닭에 레아는 사는 것이 괴로움과 슬픔뿐이었습니다. 레아는 남편 야곱의 마음이 자기에게 전혀 없는 가운데 결혼 생활을 해야 하기에 그 마음이 늘 허전하였고, 가까이에서 남편 야곱과 동생 라헬이 환하게 웃고 즐거워하며 사는 것을 보면서 힘들고 사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레아의 마음까지도 하나님은 마음을 쓰셨습니다. 창세기 29장 3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에게 많은 아이들을 낳게 하시고 라헬은 아주 나중에 가서야 간신히 요셉과 베냐민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을 보면 하나님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마음을 쓰시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긍휼히 여기시며 살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류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은 이처럼 보잘것없는 자들까지도 불쌍히 여기시고 자상하게 돌보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평범한 백성 중 한 사람인 나봇이 악한 왕 아합이 그의 밭을 탐내어 아내 이세벨과 함께 그 밭을 억지로 빼앗았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봇의 무고한 죽음을 묵과하지 않으시고 후일에 그 피 값을 아합 왕과 이세벨과 그 가문에서 다 찾아 갚아주었습니다. 나봇의 피가 땅에서 호소하는 소리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힘을 가졌고 모든 영광을 가지신 분이시며 지혜가 한이 없으신 분이시면서도 지극히 보잘것없고 가난하고 힘없고 초라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주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성품을 본받읍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이 갖는 통속적인 판단을 다 내려놓고 모든 이들을 품고 존중해주며 이해주고 돕는 자가 됩시다. 힘을 가졌으나 그 힘을 자랑하지 말고 힘을 감추고 약한 자들을 돕는 데 사용합시다. 존귀할지라도 낮은 자들과 함께 낮은 데 처하며 지혜와 지식을 가졌으나 그 지혜와 지식을 뽐내지 않고 섬김을 위하여 사용합시다.
참으로 오늘 본문 말씀, 욥기 36:5 말씀에 엘리후가 드러낸 하나님의 복된 성품 곧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모습을 본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