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변방에서 여가를/안성환/240330
오늘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일대에서 여가를 보냈다. 여기에는 ‘국보’인 감은사지와 ‘사적’인 이견대와 문무대왕릉이 있다. 평소 가끔 들리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또 다른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먼저 문화재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면...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문화재의 분류를 보면 총 7개의 유형을 볼 수 있는데 3가지만 소개하겠다. 우선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고 크고 유례가 드문 것으로 지정하며 ‘보물’은 건조물, 서적, 고문서, 회화, 고고자료,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말한다. ‘사적’은 기념물 중 유적, 제사, 신앙, 분묘, 비, 등으로서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울산에는 2023년 기준 국보 2점과 보물 10점, 사적이 7점이 있다.
문무왕은 신라 56명의 왕 중 30번째 왕이다. 태종무열왕의 장자이며, 이름은 법민다. 재위 21년 동안 많은 일을 하였는데 하나를 꼬집으라면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일이다. 후일 다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룩하였는데 만약에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늘 하는 생각이지만 어떤 역사로 변해 있을까 잠시 그림을 그려봤다. 답사 중 가끔 이런 망상을 해보면 재미가 쏠쏠하니까.ㅎㅎ 문무왕은 평소에 ‘내가 죽은 후에는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 지내고 가까운 곳에 감은사를 세워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런 감은사의 넓은 뜰에는 현재 동탑과 서탑만 나란히 쌍둥이처럼 서 있고 나머지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감은사의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 위에 하늘을 향에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위엄있었다.
감은사에서 이견대까지는 약 1.2km, 자동차로 약 2분 거리다. 이곳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한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이 깃들인 곳이다.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은 용이 된 아버지가 감은사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법당 밑에 동해를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주었다고 한다. 그 뒤에 용이 나타난 것을 보았던 장소가 지금의 이견대 장소이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어 1979년도에 복원한 것이다.
이곳에 서면 문무대왕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