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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우선(金牛仙) 원문보기 글쓴이: 아트만
춘산채지가 - 달노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보름달은 온달이오 나흘달은 반달일세
섣달이라 초나흩날 반달보고 절을 하네
대월(大月)이라 삼십일 소월(小月)이라 이십구일
옥토(玉兎)는 만월(滿月)이요 백토(白土)는 소월(小月)이라
수종백토(隨從白兎) 주청림(走靑林)은 세상사람 뉘 알쏘냐
유시(酉時)에 해가 지고 술시(戌時)에 달이 비쳐
동(東)해 동천(東天) 비친 달이 비친 곳에 비치련만
산양산남(山陽山南) 비친 달은 산음산북(山陰山北) 몰랐던가
근수누대(近水樓臺) 선득월(先得月)이라 향양화목(向陽花木) 이위춘(易爲春)이라
흑운(黑雲) 속에 숨은 달이 별안간에 밝았거든
개벽천지(開闢天地) 열렸도다 문명시대(文明時代) 되었던가
완월루(玩月樓)에 높이 올라 요순건곤(堯舜乾坤) 만났던가
월궁선녀(月宮仙女) 단장(丹粧)할 제 광한전(廣寒殿) 열어놓고
단계지(丹桂枝)를 꺽어 들고 예상우의(霓裳雨衣) 노래 불러
시방세계(十方世界) 통찰하니 십주연화(十洲蓮花) 더욱 좋다
금강산(金剛山)은 명산(名山)이라 일만이천(一萬二千) 높은 봉에
봉봉(峯峯)이도 비쳤으니 옥미용(玉芙蓉)을 깎아낸 듯
십이제천(十二諸天) 금불보살(金佛菩薩) 강림하여 내릴적에
열석 자 굳은 맹서(盟誓) 우리 상제(上帝) 아니신가
고대춘풍(苦待春風) 바라보니 하지하지(何遲何遲) 우하지(又何遲)라
언제 보던 그 손님인가 수원(水原)나그네 낯이 익네
대자대비(大慈大悲) 우리 상제(上帝) 옥추문(玉樞門)을 열어 놓고
대신문(大神門)을 벌려 노니 신명(神明)걸음 더욱 좋다
천상공덕(天上功德) 선영신(先靈神)들 자손(子孫)찾아 내려올 제
춤추고 노래하며 나를 보고 반가와서
적선(積善)일네 적선(積善)일네 만대영화(萬代榮華) 적선(積善)일네
백조일손(百祖一孫) 그 가운데 자손 줄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 이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고
자손 줄이 떨어지면 선영신(先靈神)도 멸망이라
희희낙락 기뻐할 제 한 모퉁이 통곡이라
뼈도 없고 살도 없다 영혼(靈魂)인들 있을쏘냐
화인적악(禍因積惡) 되었던가 너의 운수(運數)) 가소(可笑)롭다
복연선경(福緣善慶) 되었으니 이내 운수 좋을시구
자손을 잘못 두면 욕급선조(辱及先祖) 된다하고
자손을 잘만 두면 조상여음(祖上餘陰) 송덕(頌德)이라
천지인신(天地人神) 대판결(大判決)은 선악분간(善惡分揀) 분명(分明)하다
무섭더라 무섭더라 백포장막(白布帳幕) 무섭더라
작대산(鵲大山)에 달이 떠서 봉우리에 비쳤구나
성주산(誠主山) 늙은 중이 문안차(問安次)로 내려올 제
일월가사(日月袈裟) 떨쳐 입고 총총걸음 바쁘도다
방합(蚌蛤)은 조개로다 월수궁(月水宮)에 비쳤으니
오일(五日) 십일(十日) 때를 따져 열고 닫고 개합(開闔)하니
한 달이라 여섯 번씩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을
월수정기(月水精氣) 갈마노니 토기금정(土氣金精) 길러내어
후천도수(後天度數) 삼십육(三十六)에 중앙어복(中央魚腹) 태을(太乙)이라
존주의리(尊主義理) 높았으니 노중련(魯仲連)의 기상(氣象)이오
채석강(採石江)에 비쳤으니 이태백(李太白)의 풍류(風流)로다
소월(少月)동산 적벽강(赤壁江)에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七月) 소동파(蘇東坡)요
사가보월(思家步月) 청소립(請蘇入)은 두자미(杜子美)의 사향(思鄕)이라
추풍월야(秋風月夜) 초병산(楚兵散)하니 수식(誰識) 계명산월명(鷄鳴山月明)고
달아 달아 밝은 달아 후천명월(後天明月) 밝은 달아
: 위 채지가 달노래에서 광한전(廣寒殿)은 항아라는 선녀가 살고 있는 달 속의 신선궁 이라고 합니다.
월궁선녀는 항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가 여쭈기를, 항상 가르침을 내리시기를 '동래 울산이 흔들거리니 천하의 군대가 다 쓰러진다' 하시고 '동래 울산이 진동하니 사국 강산이 콩볶듯 한다'고 하시니,
말씀하시기를, 경상도에 세상을 고칠 큰 그릇이 나오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뒤에 오는 사람이 상등 손님이 되노라.
말씀하시기를, 남원 무당이 큰 굿을 하면 천하의 군대가 모두 쓰러지리라.
위 증산상제님 말씀중 뒤에 오는 사람이 상등 손님이 되노라 하시며 남원무당이 굿을 하면 천하의 군대가 모두 쓰러지리라
하셨는데, "남원무당"은 누구를 말씀하신것일까요?
그에 대한 힌트는 남원에 있습니다. 바로 "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광한루가 있는 남원의 "광한루원" 에 비의(秘意)가 숨어
있습니다.
* 광한루원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라 불렀다고 합니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입니다.
아래에 광한루에 대하여 자세하게 올려드립니다.
광한루원
종 목 명승 제33호
지 정 일 2008.01.08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천거동 78번지 등
시 대 조선시대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
종 목 보물 제281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천거동 77-1
시 대 조선시대
누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자연과 어우러져 쉴 수 있도록 경치 좋은 곳에 지은 건물을 말한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4면 모두 문을 달아 놓았는데, 여름에는 사방이 트이게끔 안쪽으로 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누의 동쪽에 있는 앞면 2칸·옆면 1칸의 부속건물은 주위로 툇마루와 난간을 둘렀고 안쪽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뒷면 가운데 칸에 있는 계단은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이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 정원이 주변 경치를 한층 돋구고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완월정
위치 : 남원시 천거동 187-1번지
규모 : 88.45㎡ (정면 6칸, 측면2칸 겹처마 팔각지붕 5량 굴도리 집)
조성년대 : 1971년 5월 21일
완월정은 1971년에 신축된 수중누각으로 1963년 채기묵 남원군수의 재임(1962년 4월 5일~1963년 5월 31일) 당시부터 연차계획을 세워 경내를 확장하고 주변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증설된 건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인간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한 것으로 (달을 맞이하여 달과 친해진다는 의미)달이 뜨는 동쪽을 id하고 있는데 전통양식의 누각으로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완월정은 1969년 기존 호수를 확장하여 인공 방장형 호수를 축조한 후 수중누각으로 신축한 것인데 2층 누각이다. 누각의 이름은 옛날 남원성 남문의 문루(門樓)인 완월루(翫月樓)에서 따온 것이다. 동학농민동기(1894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원성의 남문인 완월루가 지금의 제일은행 네거리에 있었다.
남원성의 사대문은 향일루(동문), 망미루(서문), 공진루(북문), 완월루(남문)인데 그 중 남문의 누각인 완월루의 완월을 따서 완월정이라 했다. 전체적인 모습은 호두각형 건물인데 의정부 육조중 형조의 건물이 이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오작교
선조15년(1582)에 남원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또한,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린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처녀가 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광한루와 오작교는 전설과 사랑이 어우러져 있어, 춘향이가 단오날 그네를 뛰는 것을 광한루에 올라앉아 이도령이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의 다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춘향관
위치 : 남원시 천거동 240번지
규모 : 246.24㎡ (정면 8칸, 측면3칸 맞배지붕)
조성년대 : 1992년
1992년에 완성했으며, 박남재화백이 그린 유화 9폭의 춘향 일대기와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서화류, 장신구, 서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영주각
위치 : 남원시 천거동 78번지
규모 : 36.02㎡ (정면3칸, 측면2칸 겹처마 팔작지붕)
조성년대 : 용성지 누정조에는 1582년(선조15년) 전라감사 정철이 삼신산을 만들때 한주섬에 연정을 세웠다고 했으나, 증보 남원지(1972년) 누정조에는 1795년(정조 19년) 남원부사 이만길 중수하고, 영주각 편액을 손수 써서 걸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영주각은 1582년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영주각은 광한루와 더불어 누원내 신선사상 배경의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 축조된 상징적 누각으로서 <용성지>의 누정편에 보면, “전라관찰사 정철이 요천에서 끌어온 물이 누앞을 좁다랗게 흐르고 있던 개울을 넓혀서 평호로 하고 은하수를 상징케 했으며 주위를 석축으로 하고 호중에 세 개의 섬을 만들어 하나에는 녹죽을 심고, 하나에는 백일홍을 심었으며, 다른 하나에는 연정을 세우고 호중에 여러 종류의 꽃을 가득 심었다”고 되어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영주각은 관찰사 정철이 주도한 광한루 확장 공사시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때는 한주섬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현재의 영주각은 정조 19년(1795)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하고 영주각이란 편액을 손수 써서 걸었다고 <증보 남원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63년부터 경내가 확장, 정화되면서 1965년에 36회 춘향제를 준비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청이 되었다.
영주각은 단층 누각 형태로 기단부는 화강석 장대석을 정밀 가공하지 않고 설치했으나 부분적으로 자연미도 보인다. 1층 하부의 석주는 화강석으로 일정하지 않은 방형으로 가공해서 초석받침위에 세웠고 초석위로 장귀틀과 동귀틀을 끼워 우물마루를 설치하였고 초석 위에 흠을 파서 귀틀장선을 끼웠다.
상층 우물마루에는 누간을 두지 않고 기둥에 흠을 파서 여모중방을 끼우고 머름을 낮게 설치하였으며 후면에 목조계단 5단을 설치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얹고 기둥머리부터 양서를 하나 내고 위에 쇠서를 구성하여 이익공의 형태를 만들었으며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웠고 주심도리와 주두에는 첨자를 끼웠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외진 기둥 주두위에 얹고 보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치며 종량위에는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천정은 연등천정으로 연목과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고 건물 네 귀의 추녀에는 활주를 받쳤고 기둥머리 이하에는 석간주 가칠하였고 상부는 모로 단청으로 마감되었다.
영주각에는 「영주각(瀛洲閣)이란 편액과 영주각에서 바라본 광한루의 풍경을 노래한 4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방장정
위치 : 남원시 천거동 78번지
규모 : 8.37㎡ (1칸 6자 6각 모정)
조성년대 : 1964년 12월 31일 준공
삼신산의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 중 방장에 위치하고 있는 방장정은 세련된 건축양식보다는 소박한 멋을 살린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방장은 전라감사 송강 정철이 삼신도를 조성함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장정이 세워진 시기는 1963년부터 시작된 광한루원 확장 정화계획에 따라 당시 남원군수 이화익의 창안으로 도편수 이한봉이 건축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 기단부는 형성되어 있지 않고 원형의 가공초석위에 복석형태의 화강석을 얹고 위에 기둥과 귀틀을 세워 장마루를 깔았다.
또한 누난간은 설치되지 않고 다소 높은 듯한 기둥위에 계두, 양서, 수서 등을 걸치고 주심도리를 높게 설치하였으나 칸사이가 좁은 관계로 화반은 설치 하지 않은 듯하다. 천장은 육각형의 소란대를 걸쳐 우물반자를 설치하였고 연목과 부연을 둔 겹처마를 형성하고 있으며 단청은 기둥머리부터 금모로 단청을 하였다.
청허부
위치 : 남원시 천거동 187-1번지
규모 : 39.06㎡ (정면 3칸, 측면2칸 맞배지붕)
조성년대 : 1971년
청허부는 광한루원의 정문이다. 이 건물은 1971년 최봉채 남원군수가 경역을 확장하면서 신축한 건물로 건평 약 11.83평에 맞배지붕 솟을 삼문형식으로 지어졌는데 광한루원이 천체우주를 지상에 건설한 작은 우주로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달나라 옥경인 광한청허부를 상징하므로 옥경을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청허부라 했다.
현 정문은 1970년도 당시에는 남원시장(해방 전까지는 전북에서 제일 규모가 큰 시장이였다)과 전국적으로 규모가 큰 우시장이 있었고 주변에 민가가 들어 차 역사적 가치와 춘향이의 얼이 깃든 광한루원 주변을 정화하고자 민가와 시장을 철거하고(당시 시장에 큰 화재가 일어나 폐허가 됨) 그 자리에 청허부를 세우고 정문으로 사용하던 현재의 북문대신 이 문을 정문으로 대체하였다.
우아한 곡선과 자연스런 풍우판 등을 가진 청허부는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나라 전통 건축문화와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주는 곳이다.
정면의 중앙에는 일중 김충현이 쓴 청허부란 현액이 걸려 있는데 「청허부」는 하늘나라 옥경의 「광한 청허지부」에서 따온 것으로 이 문이 월궁의 출입문임을 상징하고 있다.
: 춘산채지가 달노래는 남원에 있는 "광한루원" 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는 것과 이 "광한루원" 속의 "광한루" 가 채지가
달노래의 "광한전" 이고, "완월루" 가 "완월정" 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광한루원" 에는 삼신산인 봉래산,방장산,
영주산을 섬으로 만들어 " 봉래,방장,영주섬" 안에 전각을 세웠는데, 이 삼신산이 마음 심(心)자의 위 점 세개인 삼신산
인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삼봉산하 반월선"의 삼봉산인 "삼각산" 이고, 광한루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고 하였으니 달을 상징
하는 전각으로 "삼봉산하 반월선"의 반월선인 십승지 "정관신도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완월정은 옛날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광한전은 달 속의 궁궐인 반달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 채지가 달노래에 섣달이라 초나흩날 반달보고 절을 하네라고 하여 달속의 궁궐이 광한전임을 암시하고 있고, 반달보고 절을 한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원무당은 남원의 "광한루원"에 있는 삼신산을 모티브로 한 "영주,봉래,방장섬" 과 반달을 모티브로한 "광한전, 완월정"을 마음심(心) 자 속의 점 세개(삼각산) 과 아래 반월형 땅(정관신도시) 를 전각과 섬으로 꾸며 이 곳이 십승지와 진인이 출현하는 정관신도시를 가리키는 비의(秘意)가 담겨있고, 남원무당은 바로 이 남원의 "광한루원" 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삼신산과 광한루가 상징하는 삼각산과 정관신도시 십승지에서 출세하시는 진인 이라는 것을 증산상제님이 남원무당이라 비유적으로 명칭을 나타내 주신것입니다.
평창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수호랑" 과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반다비" 가 각각 호랑이 寅 3木으로 삼신산인 "삼각산" 과
반달곰 가슴의 "초승달"이 "정관신도시" 를 상징하듯이 남원 "광한루원" 안에 있는 "영주,방장,봉래섬" 과 "광한루,완월정"
도 각각 삼신산과 반월을 상징하는 "삼각산" 과 "정관신도시" 를 올림픽 마스코트와 동일하게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남원무당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좋은 글이 있어 올려 보았습니다.
즉 남원무당은 삼신산이 있는 그곳 즉 천하제일 무당이신 천모님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임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광한루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통해 삼신산이 살아 있는 그곳이 어디인지는 당연 진리를 통해 알아봄이 맞겠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맑은 하늘 처럼 구름이 겉힌 기분 이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