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풍요의 관계
여러분이 빵을 굽기 위해 토스터의 플러그를 꽂기 전까지는 전기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돈을 쓸 필요가 있어서 실제로 쓰기 전까지는
돈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해도 여러분 중 누군가는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이러한 가르침이 실용적이지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여러분 중 누군가는 이미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우주에게 요구하면 그것은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풍요가 경험 속으로 자연스레 흘러오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흘러오느냐는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고생하느냐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진실이 그렇습니다.
어떤 여인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남편에게는 이혼한 전 부인이 있어요.
근데 남편은 그 여자와 자식들에게 매달 수입의 절반을 지불해야 한답니다. 다시 말해 남편의 수입이 늘어날 때마다 전 부인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의 수입이 늘어나도 신나지 않고 짜증만 나요. 저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나요?'
우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남편에게 열 명의 이혼한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지금 한 명이 있는 것도 버거운데 열 명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남편이 열 명의 전처에게 위자료를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지금의 남편이 이혼한 처자식까지 보살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그게 과연 그렇게 짜증내고 화를 내야 할 일일까요?
'수입의 절반이나 위자료를 지불하고 있다'가 아니라, '수입의 절반만 지불하고 있다'고 여기고, 전처에게 흘러가는 돈에 대해서도 기꺼이 축복하면 그녀는 지금보다 실제로 훨씬 많은 풍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원하지 않는 것, 탐탁치 않은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 가슴뛰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세요.
전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 않은데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도록 열심히 고생하며 일하는데 돈을 전혀 벌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냉엄한 현실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요?
바로 '노력'이라는 요소는
풍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력'이란
단지 볼텍스에서 벗어난 그 모든 행동을 의미합니다.
풍요의 본질이 반영된 파동이 어떤 것인지 발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주는 풍요를 누리게 되는 가장 저항이 없는 길을 제시할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_ 에이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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