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운동은 결사적으로 해야 맛인데...

[김진수]

<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대동문화201105 [한송주의 산사에서 띄우는 엽서]

결사운동은 결사적으로 해야 맛인데...

요즘 한국불교계에 결사운동이 뜨겁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은 올 초부터 민족문화수호 결의대회와 5대 결사운동을 벌이느라 사찰마다 야단법석이어요.

지난해 말 한나라당이 예산 날치기를 하면서 불교관계 예산을 삭감한데다 엠비정권 초부터 지악스럽게 추진해 온 불교폄훼 작태를 참다못한 불교계가 거세게 들고 일어난 것이 이번 결사운동의 배경입니다.

불교계는 엠비정권과 대화 없다는 최후통첩을 띄우고 정부 여당 인사들의 사찰 출입을 거부하는 한편, 민족문화 수호 위원회를 결성해 법종단적인 규탄대회를 개최했지요.

이와 함께 불교계 내부부터 스스로 자성 쇄신하자는 결의를 다지고 5대 과제를 설정해 대대적인 결사운동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5대 과제는 수행결사, 문화결사, 생명결사, 나눔결사, 평화결사입니다.

수행결사는 출가사문의 본분사대로 정법대로 수행정진 하자, 문화결사는 민족문화의 근간이 되는 불교문화의 수호와 창달에 힘쓰자, 생명결사는 뭇생명이 공존을 위한 환경운동에 적극 나서자, 나눔결사는 불교의 으뜸가치인 자비행을 실천하자, 평화결사는 다툼과 전쟁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자는 의미를 갖고 있지요.

이런 기치 아래 전국 방방곡곡 도량은 때 아닌 스님들의 사자후로 쩌렁쩌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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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 하면 우리는 맨 먼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스님(1158~1210)이 펼쳤던 정혜결사를 떠올리게 되지요.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하고 진지했던 결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지눌스님은 타락한 고려의 귀족불교를 바로잡고 소박한 대중불교를 정착하기 위해 오랜 준비 끝에 결사운동을 펼쳐 혁혁한 성과를 이루어냈지요.

지눌스님은 승과에 합격한 뒤 승직에 연연하지 않고 남녘으로 떠돌면서 타락한 승풍을 바로잡자는 개혁운동을 펼쳤어요. 10년의 기다림 끝에 정혜결사문을 반포하고 대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렸지요.

그때 터뜨린 정혜결사문은 오늘 들어도 가슴이 절절합니다.

“..우리들의 일상을 돌아보면 어떠한가. 부처님 법을 빙자하여 나와 남을 꾸미고 구차하게 이양(利養)의 길에서 허덕이며 풍진(風塵) 세속에 골몰한다. 도덕은 닦지 않고 옷과 밥을 축내고 있다. 출가한 덕이 어디 있는가.

아아, 삼계를 벗으려 하면서도 속세를 넘을 행이 없고 사내의 몸을 가졌으면서도 장부의 기개가 없다. 위로는 도를 구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건지지 못하며 중간으로는 사은(四恩)을 저버렸으니 참으로 부끄럽다..”

지눌스님은 이런 신념과 진정성으로 사부대중을 결집해 결사운동을 성공시켰으며 말법에 빠진 한국 불교계를 건져 올렸던 것입니다.

순천 송광사에서 꽃피운 정혜결사와 함께 강진 백련사에서 원묘국사 요세스님(1163~1245)이 결성한 백련결사가 유명하지요. 한국불교의 양대 결사가 남도에서 태동했다는 것도 보통 기연이 아니죠?

요세스님은 어려운 선게나 경구를 모르는 일자무식 무지랭이들도 곧은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평등과 희망의 소식을 전파했지요.

그런 점에서 참선과 간경을 위주로 한 정혜결사의 수행법과는 좀 다른 법을 펼쳤어요. 백련결사는 그저 자기의 죄업을 참회하며 일념으로 부처되기를 소망하면 누구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염불참법을 위주로 했어요.

원묘국사 요세의 속성이 서씨였는데 스님이 솔선해서 얼마나 일념으로 참회정진을 했던지 사람들이 ‘서참회’라고 불렀다고 하니 알만하지요.

지눌스님과 요세스님은 원래 뜻을 같이 한 도반이었는데 중간에 방편을 달리해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고 하더군요. 한 사람은 정통선법을 택하고 한 사람은 민중참법으로 갔지만 타락한 귀족불교를 개혁해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겠다는 지향점은 똑같았지요.

근세의 불교결사로는 봉암사결사를 빠뜨릴 수 없지요.

봉암사 결사의 기치는 매우 간단했어요. ‘부처님 법대로 살자.’

1947년 성철스님을 비롯한 청담, 향곡, 자운, 보문, 우봉, 종수, 월산, 혜암, 법전, 성수스님 등 기라성 같은 수좌들이 봉암사에 모여 출가수행자의 본분사를 되찾자는 결의를 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처럼 손수 탁발하고 나무하고 정진하며 제대로 중노릇하자는 것이었지요.

결사동지들은 맨 먼저 칠성탱화, 산신탱화, 신장탱화 등을 치워버리고 법당에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만 모셨대요. 불공은 자신이 성심껏 하는 것이지 중간에 스님이 축원하고 목탁치는 것이 아니라며 불공도 없애 버렸답니다.

나무 바리때와 비단 가사와 장삼도 불살라 버리고 양재기와 무명먹물옷을 입었어요. 밭일이며 나무도 손수 하고 밥도 돌아가며 지어먹으며 밤을 새워 정진했다고 해요.

한국전쟁이 터져 3년 밖에 가지 못했지만 봉암사 결사는 그 투철함이나 치열성에 있어 단연 우뚝하다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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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런 결사의 시초는 중국 진나라 때 여산 동림사에서 천태선사 혜원스님이 연 백련결사(白蓮結社)라고 하네요.

혜원스님은 진나라 원흥 1년(402)에 거사 유유민과 동지 123명을 규합해 동림사에서 염불수행을 시작하였다는 거예요.

백련결사는 누구나 일심으로 염불하면 서방정토에 태어나 생사윤회의 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으니 요세스님의 백련결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네요.

이상, 불교결사에 대해 대강 훑어봤는데 결사운동이란 아무래도 결사적으로 해야 맛이 나겠지요?

몇 달이 못가서 절실했던 초심이 꺾이고 억지춘향격으로 운동을 이끈다면 결사적인 결사가 아니겠지요?

한송주<월간 송광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