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쉰 번째 이야기 성공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은 교회가 성장 자체에 머물러 있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하였다. 교회의 성장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교회의 목표는 될 수 없다. 교회는 성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복음 전파를 위해 존재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빠진 깊은 수렁은 대형교회 곧 교회 성장이라는 함정이다. 그래서 여기에 빠지면 나아가지 않고 머물러 있고자 한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아닌 자기 교회로 모으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가 그랬다. 사람들이 늘어나고 공동체가 성장하자 교회는 크게 기뻐하였지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점점 망각해 가고 있었다.
그런 교회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처방은 핍박이었다. 교회가 사명을 잊고 재산 지키기에 빠지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로 시련에 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분열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외부적인 요인으로 고난을 겪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을 세상으로 흩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물질문명이 발달하던 초기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바벨탑 사건이었다. 바벨탑은 흩어짐을 면하고 인간의 기술 발달을 더 확장하려는 인간들의 욕심,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 버렸다. 그 결과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초기 기독교를 흩으신 하나님의 방법은 박해였다.
(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밀어닥친 핍박은 복음 사업을 크게 촉진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곳에서의 말씀 사역에는 성공이 따랐으므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라는 구주의 사명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악을 저항하는 능력을 얻는 최고의 비결은 적극적인 봉사 활동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사업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새로 개심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대신,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도록 모든 사람을 이끄는 위험에 빠져 있었다.”(행적, 105)
스데반의 순교는 시작에 불과했다. 복음의 원수는 손에 들린 채찍을 기독교라는 불꽃이 발해지는 곳마다 내리쳤고, 그 결과 복음의 불길은 계속 다른 곳으로 옮겨붙었다. 따라서 복음 전파라는 측면에서 박해는 그렇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박해받는 교회는 계속해서 증가했고 그렇게 복음은 신속히 세상으로 번져 나갔던 것이다.
성장이 멈춘 교회는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죽고 일부러 허물어 버리면 오히려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다. 이십 년, 삼십 년 되어도 아무런 변화도 없고 새로운 부흥과 성장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는 교회는 차라리 개척하거나 재개척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죽은 교회에는 위기가 오고 박해가 올 때 기회도 따라온다. 제자들이 핍박으로 흩어졌을 때 그들은 선교 정신으로 충만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저들은 자신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을 더 강해졌고 믿음은 더 굳세어졌다.
오늘은 머물 것인가, 아니면 나아갈 것인가?
하나님 아버지!
머무는 교회, 자만하는 교회가 아니라
끊임없이 앞으로 전지하는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이룬 업적이 아니라 나아갈 사명을 바라보게 하시고
마치지 못한 주의 사명에 여전히 목마른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사모합니다.
오시옵소서.
임하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팟캐스트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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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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