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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cigar) 하면 생각 나는 것.
최인호의 책은 읽기 쉽고 부담이 거의 가지 않으므로 요즘 자주 읽고 있는데 여기에 시가 (cigar)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시가 하면 생각 나는 것을 좀 적어볼까 한다.
우선 시가에 대한 최인호의 이야기를 옭겨본다.
많은 사람이 시가와 담배를 같은 종류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전혀 다르다. 담배는 폐부깊숙이 빨아들여야 하지만 시가는 빨아들여 연기를 전혀 삼키지 않는다.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시가를 온전히 피울 수 없다. 왜냐하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시가의 연기까지 빨아들임으로써 결국 독한 연기에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서 이렇게 투덜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아니 이 독하고 맛도 없는 시가를 왜 피우십니까 ? " 시가는 연기를 빨아들이는 담배가 아니다. 시가는 다만 입안까지만 연기를 빨아들여 그 향기를 머금고 입으로는 그 촉감을 즐기는 것에 묘미가 있다. 시가하면 사람들은 으레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을 떠 올린다. 처칠은 항상 시가를 물고 다녔으므로 ' 체인 스모커 '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담배중독자는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평생동안 시가를 물고 다녔지 담배를 피운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최인호도 시가를 무척 즐겼던 모양이다. 다음 말을 들어보면 그런것 같다.
시가는 내 유일한 즐거움이다. 매일 아침 시가 통에서 한 대의 시가를 꺼내 피워물고 외출을 할 때면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데이트를 나가는 느낌이다. 왜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가. " 주머니에 넣어서 하루종일 같이 다니고 싶다 " 마찬가지로 내 주머니에 있는 시가는 그날 하루 종일 나와 데이트하는 애인이다. 아니 애인 이상의 연인이다. 시가는 피우다 내버려 두면 그대로 조용히 꺼지는데 반해 애인은 데이트 하다 내버려 두면 심심하다고 칭얼대고 짜증을 부리지 않는가. 시가는 내버려둬도 스스로 꺼져서 내가 다시 자신을 발견하고 불을 붙일때까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그리고 그 맛이라니.주머니에 들어있던 시가를 막 꺼내들고 손톱으로 시가의 끝을 잘라 입에 물었을 때의 그 만족감. 그리고 시가에 불을 붙여 첫 모금 빨았을 때의 충일감. 그때는 창가로 숨어들어오는 아침 햇살마저 찬란하게 빛나고 향기롭게 느껴진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시가를 피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것이며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 주제에 왜 최인호의 시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느냐 하면 나에게도 시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때는 아마도 1970년 여름방학때이다. 소위 요즘 말하는 sky 3개대학 상대마켓팅 전공자를 마켓팅교수를 통하여 추천해 달라고 신세계백화점으로 부터 연락이 와서 나도 지원을 했다. 서울상대 4명 고대상대 10명 연세상대 10명 도합 24명을 추천을 받아 방학동안에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실습을 하고 그 중에서 딱 절반인 서울상대 2명 고대상대 5명 연세상대 5명 도합12명을 최종 합격시킨다는 것이었다. 9월인가 합격자 발표가 있는데 운좋게 나도 합격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연락이 왔는데 마지막으로 이병철회장의 면접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삼성에 입사할려면 반드시 이회장이 직접 면접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회장의 면접에서 통과해야 최종합격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다 변했겠지만 그 당시 신세계본점 1층에 조그만 별실이 있었는데 거기에 12명이 집합하여 앉아 있는데 신세계대표이사와 이병철회장이 왔다. 이회장은 자그만 체구에 아마도 안경을 쓴것 같은데 호리호리한 몸매에 빨간 티셔츠를 입고 들어와서 면접을 보는데 두가지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첫째는 이회장의 말씀이 " 항간에서는 내가 사원을 뽑을 때 관상을 본다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무슨 관상쟁이인가. 내가 보는 것은 관상을 보는 게 아니고 자네들의 눈망울을 보는거야. 눈망울이 또록또록한지 허리멍텅한지 그걸 보는거야 "
두째는 말씀도중에 가만히 살펴보니 이회장이 두툼하고 길쭉한 시가를 피우는 것이었다. 시가를 피우다가 재떨이에 놓아두면 저절로 꺼지며 다시 피울려고 하면 대표이사가 라이타로 불을 붙여드리고 했는데 아마도 그때가 나로서는 시가를 처음 본 게 아닌가 싶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단정한 모습으로 도톰한 갈색 시가를 피우던 삼성 이병철회장. 참 아득한 이야기구나 !
처칠도 가고 이병철회장도 가고 최인호도 갔으니 시가를 사랑하던 분들이 죄다 가 버렸는데 저쪽 세상에서도 시가를 즐기고 있는지 .....
2019.7.19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