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의 명반사냥이야기 서른 두 번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공대지 2019 Autumn No.114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MUSEO ROSENBACH:
ZARATHUSTRA” LP (Ricordi, 음반번호: SMRL 6113 / S-6113-1,2 15/5/73)
언젠가
위대한 정오를 맞이하여 나 준비되어 있기를,
그리고 성숙해 있기를.
휘황하게 빛을 내는 청동처럼,
번개를 머금은 구름과 부풀어 오른 젖가슴처럼
나 준비되어 있기를,
그리고 성숙해 있기를.
내 자신을 그리고
가장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내 의지를 위해 준비가 되어 있기를.
오, 의지여, 온갖 고난의 전회여,
너 나의 필연이여!
위대한 승리 하나를 위해 나를 아껴다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칼럼
독일의 사상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적 철인 짜라투스트라의 언행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초인(超人)’과 ‘동일물의 영겁회귀(永劫回歸)’를 테마로 한 명저 <Also sprach
Zarathustra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남겼다. 이 철학서는 수많은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독일의 리햐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이다. 그는 동명의 타이틀로 교향시 Op. 30을 작곡하였고, 이 중 일출을 표현한 서주가 스탠리 류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으로 쓰여 더욱 유명해졌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로그레시브/아트록 그룹인 뮤제오 로젠바흐(Mueseo Rosenbach) 또한 감명을 받은 뮤지션 중 하나로서 1973년 <ZARATHUSTRA>라는 앨범을 남긴다.
뮤제오 로젠바흐는 1971년 이탈리아의 La Quinta Strada와 Il Sistema 라는 두 밴드가 합체하여 결성된다. 당시 이탈리아의 프로그레시브록 계에는 밴드의 이름을 길게 짓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는데 이에 따라 이들도 밴드명을 Inaugurazione del
Museo Rosenbach로 짓는다. 하지만 음반사의 권유로 Museo Rosenbach로 과감히 이름을 줄이고 앨범을 발매하는데 그들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 바로 록 음악사에 빛나는 <ZARATHUSTRA>이다. 밴드 이름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Rosenbach Museum
& Library>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독일의 편집인 Otto Rosenbach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앨범에는 스테파노 갈리피 (Stefano
"Lupo" Galifi)가 보컬을, 엔조 메로뇨 (Enzo Merogno)가 기타, 알베르또 모레노 (Alberto Moreno)가 베이스, 피트 코라디 (Pit Corradi)가 키보드와 멜로트론을 그리고 잔카를로 골지 (Giancarlo Golzi)가 드럼을 맡았다.
이 앨범의 표지는 사진작가인 Caesar Monti가 검은 바탕에 무솔리니의 파멸을 의미하는 조각 사진을 붙여 구성했는데, 이 때문에 이 앨범은 작품성과 무관하게 파시즘의 추종으로 오인되어 이태리 방송협회 RAI가 방송 금지조치를 내리는 등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금지조치는 오히려 역으로 홍보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1973년 6월에 있었던 "Festival di Nuove Tendenze di Napoli"에서 거둔 라이브의 대성공으로 그들의 앨범은 대중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끌어낸다. 그러나 2집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밴드 멤버들 간의 불화는 불행하게도 밴드의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그림> Museo Rosenbach
뮤제오 로젠바흐의 <ZARATHURSTRA> 음반은 LP A면에 20여 분에 달하는 대곡 “Zarathustra”를 담고 있으며 B면에는 이의 연장선에 있는 세 개의 곡 Degli Uomini (인간에 대해서), Della Natura (자연에 대해서), Dell'Eterno Ritorno (영원으로의 회귀)을 담은 컨셉트 앨범이다. 니체의 작품이 4부로 이루어진 반면 뮤제오 로젠바흐의 “Zarathustra”는 아래와 같이 5개의 표제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a. L'Ultimo Uomo (최후의 인간) (3:57)
b. Il Re Di Ieri (어제의 왕) (3:12)
c. Al Di La Del Bene E
Del Male (선악의 피안) (4:10)
d. Superuomo (초인) (1:22)
e. Il Tempio Delle
Clessidre (모래시계의 궁전) (8:02)
멜로트론, 해먼드 오르간, 비브라폰, 전기 피아노 등 각종 건반 악기가 동원되고 독창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이 곡은 20분이 넘는 시간을 단숨에 지나가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반복되는 곡 초반의 낭만적이면서 애수 어린 멜로디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곡은 우리나라의 헤비메탈밴드인 블랙 신드롬(Black Syndrome)의 6집 앨범 “ZARATHUSTRA”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뮤제오 로젠바흐는 이 앨범을 유일하게 남기고 1974년 해체되어 족적을 감췄지만 25년이 지난 1999년 재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2011년 10월 우리나라에도 방문하여 소월아트홀에서 콘서트를 가진 바 있다.
본 앨범은 1973년 Ricordi 레코드에서 초판이 발매되었는데, (음반번호: SMRL 6113) 초희귀 반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2011년에 열린 제1회 서울 레코드페어에서 이 음반이 전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초판을 이탈리아의 중고레코드 가게에서 힘들게 구할 수 있었는데 상당한 거금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앨범은 이후 수 차례 재발매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 해동뮤직과 이후 시완레코드 (음반번호: SRMC 1047)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다.
뮤제오 로젠바흐가 <ZARATHURSTRA>의 데모테이프를 Ricordi 레코드사로 보냈을 때 당시 음반제작자였던 Angelo Vaggi는 그들의 음악에 매료되어 그들을 밀라노의 스튜디오에 초대하여 연주를 직접 들었다고 한다. 당시 연주가 녹음으로 남아있는데 이는 1992년 Mellow Records에서 <Rare and
Unreleased>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CD, 음반번호: MMP 103) 공식 앨범과 비했을 때 편곡과 보컬파트가 현저하게 다른 점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