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우리 동리.
내 소원은 칼국수집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겨울이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창에 김이 서리는 집. 멸치 국물 냄새가 옷이며 머리카락에 배어있어 누구든지 나를 만나는 사람은 금방 칼국수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작은 방 한 칸을 얻으러 동네 부동산에 들렸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가게문을 여는 어느 중년 부부에게 나는, 국자를 휘휘 저어서 국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감자를 한가득 퍼 줄 것이다.
전날 과음을 한 어느 청년에게는 얼큰한 다대기를 만들어 주고, 가게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에게는 50% 할인된 가격에 매일 점심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다.
혹, 장미꽃을 든 어느 남자가 내게 찾아온다면 나는 그 답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칼국수를 선물할 것이다. 어쩌면, 한 번 왔던 사람이 다음날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또 오셨네요'라고 알은체를 하지않을 것이며, 칼국수 위에 조갯살을 평소보다 더 많이 얹어줌으로 내 마음을 표시할 것이다.
가게를 처음 오는 사람들의 표정에 아무 기대감도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칼국수를 먹는 동안 행복한 표정으로 바뀌고, 나는 맞은편 탁자에 앉아서 벌겋게 상기되는 그들의 얼굴을 행복하게 훔쳐보고 싶다. 뱃속 든든함을 세상살이의 든든함으로 이어가길 나는 속으로 기도해 줄 것이다.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뜬금없이 내 소원은 칼국수집 주인이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서도 똑같은 말을 했다. 되돌아온 두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니 소원은 글쓰는 거였잖아."
내가 칼국수집 주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칼국수를 만들 때 칼국수만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기에. 정말로 행복한 칼국수집 주인은, 그날의 반죽상태와, 며칠 전에 한 깍두기가 익었는지를 가늠하는 것과, 오늘 올 손님들과…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칼국수를 만들면서 소설을 생각하게 될까봐, 그럴까봐, 칼국수집 주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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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리온냐 ~~~ 내 진짜 온냐 많이 사랑한데이~~~~~~~~~~~~~~~~ 이렇게 잔잔하게 내맘에 다가오는 글들...음악들... 꼭 만나고싶데이~~~
나리 온냣!!!(고래고래) 산이는 칼국수 2그릇 묵을끼당.. 온냐 산이도 놀러가면 칼국수 주낭??? 온냐 사릉해~~ ^^
""혹, 장미꽃을 든 어느 남자가 내게 찾아 온다면 나는 그 답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칼국수를 선물할 것이다.""이거이는 산이옵화얀테 해당 되능거 몰랐낭 ㅋㅋ
공감 팍 가네요 저도 79년 16세 가을에 빵집에 들어가 제과제빵일을 배워 빵가게도 했었는데 그게 항상 다른곳을 보고 다른꿈을 꾸었던 거 같습니다 남에게 좋은걸 주고 싶지요 잘 부풀어 오른 향기로운 것들을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도 어쩌지 못 하겠어요
성석제 글에 제주도 국시집 예기가 나오는데 국물내기에 들어가는 특제생선이 '디포리'같으네요
<귀천>...나는 귀국하고 싶어집니다..인사동 <귀천>에서 벙개하고 차한자도 하고 술한잔도 하고 ..하는 날을 잡아보면 좋겠다..
수강님 귀천이 너무 좁아서 벙개할수 있을까요? ㅋㅋ 거긴 평소에도 찾아가면 서로 부딪치고 앉아야 합니다... 천상병시인의 찻집 맞는거죠?
혹시 이 눈쌓여 포근한 동리가 상리마을이 아닌감요..상리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가 생각나서요..
개나리꽃님 글 읽으면서.. 따땃한 칼국수 한그릇 맛나게 먹은 기분이 드네요..ㅎㅎㅎ아.. 맛나다~ 맛나게 잘 먹고 갑니다..^^
개나리꽃온냐 주변은 언제나 시끌 벅적해서 언제 글 쓰실 시간이 나시려나....^^;;
난 벌써 칼국수 집안에 들어와 앉아있는것 같습니다.. 글로 묘사하신 그 분위기 그대로 느끼고 있습니다. 나리온냐, 그냥 글만 쓰세염,
역시나...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듯 한 느낌이 사진에서 났었는데 역시 그러시군요...음식솜씨도 좋으실 듯....언젠가 찾아갈께요.^^
낭만적이네요~~ 칼국수안엔, 호박의 이야기, 감자의이야기, 당근의 이야기, 양파, 마늘, 그리고 육수의 이야기들.. ^^ 어느님은 다른 재료의 이야기가 들어있겠네요~~^^
넘 황홀한 풍경이야요.... 난 가도 온냐 칼국수 못 얻어먹을 거 같다.. 저 눈밭 걷고 또 걷다 해 다 질것 같음... 그때 들어가도 칼국시 주시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