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은 적요 속에 묻혀 있다. 부처님은 과묵한 분이라 일상에 지친 중생이 힘없이 들어와도 시시콜콜 묻지 않는다. 잠시 시어나 가라는 듯 오가는 이의 발끝만 살필 뿐이다. 그렇다고 인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목이 마른 쪽은 늘 나이기 때문이다.
불단을 향해 절을 하고 초에 불을 붙인다. 가지런히 꽂힌 향도 하나 집어 촛불에 들이민다. 향이 불을 머금는다. 제 몸 사르는 일을 숙명으로 타고났지만 순식간에 불속으로 디밀어지면 저라고 뜨겁지 않을까.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잠시 의식을 놓을지언정 소명을 잊지는 않는다. 이 향처럼 몸을 태우지는 못하더라도 오늘은 지칠 때까지 절을 해보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엎드렸다 일어서기를 몇 번을 했을까. 무릎은 시큰거리고 얼굴에는 땀이 번지기 시작한다. 수행을 게을리한 티가 역력하다. 평소 삼배三拜를 하고 선심이라도 쓰듯 몇 번의 절을 더 하고 나면 하릴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뭉그적거렸다. 무심의 상태는 눈 깜짝할 새 허물어지고, 갖가지 상념에 머리채를 내어주곤 했다. 오늘은 단연코 상념을 밀어내리라 다짐했지만 글렀다. 방향 없고 경계도 없는 생각의 뿌리는 산지사방 발을 뻗고 머릿속은 개미굴이 되어간다.
흩어진 생각을 모아보고자 다시 일어선다. 무릎을 꿇고 양팔과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오체투지의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한동안 절 삼매에 빠진다. 손에 든 염주에 땀이 묻어날 즈음 귓가에 작은 소리가 스친다. 귀에 익은 소리다.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양 합장한 손도 마음도 스르르 풀린다. 소리를 쫓아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거만한 날갯짓을 하며 주인공이 나타난다. 모기다.
손이 무심결에 모기를 쫓아간다. 모기는 나 잡아보란 듯 저만치 멀어진다. 까치발로 살금살금 따라간다. 모기를 따라 움직이던 눈과 손이 동시에 녀석을 덮친다. 깜짝 놀란 모기가 휙 날아오른다. 인간의 행동이 아무리 재바른들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는 모기를 잡기가 쉽겠는가. 모처럼의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모기의 의지와, 절대로 피를 나누어 줄 수 없다는 인간의 의지가 법당 안의 고요를 흔든다. 집에 있었다면 당장에 뿌리는 약이라도 방사했을 텐데, 놓친 아쉬움에 투덜대며 자리로 돌아온다.
한참 절을 하다 잠시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부처님, 오늘 하루도 제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살펴주시고,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하고 보니 좀 전에 모기를 쫓던 일이 떠오른다. 모기도 생명인데 부처님이 내려다보는 데서 원수 대하듯 살심殺心을 드러냈으니 여태 절을 헛한 것이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얼떨결에 쌓인 공덕마저 날아갔다. 공 덕만 날아갔으면 다행이다. 그보다 더한 살심의 업을 쌓은 게 아닌가.
어리석은 중생이 눈앞에서 업을 쌓고 있는 데도 말리지 않은 부처님의 심중은 무엇일까. 모래 한 알 만큼의 존재감도 없는 중생이지만 당신과 연이 닿았으니 구제해야 하는 본연의 의무는 잊으셨는가. 서운한 생각이 들어 살짝 눈을 흘긴다.
방자한 생각으로 눈을 흘겨도 단 위의 부처님은 표정 한 번 변하지 않는다. 네 수행의 근기가 그리 약하냐며 무언의 꾸짖음을 내린다. 눈을 내리뜨고 치뜨며 신경전을 벌여본들 무슨 소득이 있으랴. 부처님 집에 왔으니 부처님 법을 따르면 그만인 것을. 법당 안은 두 말이 필요 없는 부처님의 홈그라운드가 아닌가. 치뜨던 눈길을 바닥으로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부지불식간에 내 보인 속을 가다듬고 살심의 업을 벗기 위해 두 손을 모은다. '수십 년 몸에 밴 습관이 생각할 겨를 없이 행동으로 나온 것이니 부디 굽어살피소서.' 백팔 배, 삼천 배는 안중에도 없다. 방금 지은 죄를 사해 주십사 삼만 배라도 할 듯이 머리를 조아린다.
온몸이 땀에 젖도록 절을 하고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는 데 목뒤가 따끔하다. 합장하고 있던 손이 빠르게 목뒤로 향한다. 내리치던 손이 급정거하는 차처럼 멈칫한다.
"아차, 나는 지금 살심의 죄를 빌고 있지."
먼지보다 가벼운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내 피로 배를 채운 녀석은 여유로운 모양새다. 느긋한 날갯짓에 꼬리를 살랑인다. 이 인간이 설마 또 나를 덮치겠어? 하는 몸짓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배짱 좋은 놈이다. 머리 위를 두어 바퀴 돌더니 부처님 발치에 내려앉는다. '내가 바로 부처니라!' 어리석은 인간에게 보시행布施行 한 수 가르친다.
모기와의 한판에서 보기 좋게 졌지만 마음은 솜털마냥 가볍다. 비록 나라를 구할 공덕을 쌓지는 못했어도 내 피로 한 생명을 구하지 않았는가. 육안으로 직접 보셨으니 살심의 업은 벗겨 주시겠지? 부처님 코앞에 바짝 다가서서 배시시 웃어 보이고 법당 문을 나선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훈장을 닮은 메달 하나를 내민다. 적십자사에서 아들에게 보낸 '헌혈유공장'이다. 아들은 주변에 아픈 이가 있다며 짬이 날 때마다 헌혈을 한다. 피로 목숨을 살리는 일은 다르지 않으나 마지못해 빼앗긴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미의 얄팍한 마음이 빛을 잃는 순간이다. 하지만 어떠리. 내 자식이 생명 그 자체인 피를 아낌없이 나누며 살고 있는데, 부처님이 기도 하나는 제대로 들어주신 게 아닌가.
(최해숙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