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맞이 하고나서의 첫 나들이 길.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가을 하늘이 푸르다지만 겨울 하늘에 비할까.
빨려들 듯 푸르디 푸른, 시리기까지한 파란 겨울 하늘.
거기에 크고 밝게 빛나는 태양.
여과없이 내비추는 햇살에 구정 연휴 기간내 내렸던 많은 눈이 맥없이 녹아 든다.
구정 후 첫 나들이이자 첫 외식.
공양밥 얻어 먹듯 얻어 묵은 읍내에서의 국밥 점심 한끼.
무료 한끼의 중한 고마움을 미처 표현하지도 못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 우리 내외.
동복면을 경유하여 빙 휘돌아가는 길.
되살아나며 커지는 부락이 있는가하면 쫄아 들어 사라져가는 부락도 보인다.
새옹지마인 인생만사.
그에 못지 않은 세상만사.
나타났다 사라지는 뜬구름이 따로 없다.
구비구비 눈요기하며 다다른 곳.
곡성 관음사.
처음 뵙는 호남형의 키 큰 스님이 우릴 맞아 주신다.
짧은 대화 몇마디 나누고 주지 스님 계신다는 공양간을 찾아 갔다.
전생이라는 망각의 늪에 켜켜이 쌓여 있는 기억 속의 한 장면이 되살아난듯한
원인모를 감정.
비운의 여인이 애틋하고도 절절한 흠모의 감정 덩어리를 안고
스님 방을 찾은 듯한 그런 애절한 감정.
나는 내심 흠칫 놀라며 가슴 도려내는 듯 절절히 전율하는 기운을
차 한잔 홀짝이며 조용히 흘려보낸다.
스님 찾아오신 또 다른 손님들과 또 다른 젊은 스님.
주지스님 앞에 부채꼴 모양으로 나앉은 사람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무심코 돌린 내 시선이 멈춘 곳.
나란히 앉아 있는 화분 세개.
아름답고 탐스런 분홍빛 꽃망울을 한껏 터트리고 있는 부겐베리아 꽃.
꽃의 자태가 사무치게 아름답다.
한참을 바라보다 시선 돌려져 멈춘 곳.
스님이 애용하시는 진공관 앰프 기기.
거기에 낡고 닳아 불구덩이에나 집어 던졌음직한 조그만 나무 의자 하나.
등받이를 잘라내고 앰프 다이로 활용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비품 하나하나가 소박하기 그지없는 지극히 서민적인 것들.
소탈하신 스님의 대승적 면모가 여실히 엿보이는 부분이다.
갈수록 활기 넘쳐 보이는 관음사.
스님의 깊고 넓은 불력에 관음사의 활기도 계속 이어지리라.
한동안의 대화 끝에 스님 이하 좌중의 손님들까지 모두 나와
우리 내외를 배웅해주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수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관음사의 절사들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