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전통 혼례를 치를 때에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장가를 가서 신부 집에서 혼례식을 올리고 신부집에서
첫날 밤을 지내고 다음날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집 시집으로 가서 정해진 절차를 밟고 신방을
꾸렸는데 신부를 맞는 신랑집에선 멍석 깔고 치알(대형 그늘막) 쳐서 하객을 맞는 결혼 잔치를 벌렸었다.
신랑이 말을 준비할 수 없는 일반인이나 서민들은 그래도 전통 혼례복을 입고 걸어 걸 수는 없으니 신랑도 가마를
타고 왕래해야만 했다.
요세 같이 자동차도 대중교통도 없던 시절에는 멀게는 몇십리 가까이라도 몇리를 가마를 타고 이동하였는데 지나는
마을에서 그냥 두지를 않았는데, 가마를 막아 세워서 신랑에게 문제를 내어 합격하면 장원주를, 못 맞히면 벌주를 내게
해서 즐기며 혼사를 축하해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마상풍월이라 하였다.
내가 고 2때는 김영삼씨 고향인 거제도 장목면 외포마을이 신작로도 없고 재를 넘어 가야 하는 산길 밖에 없었는데
그 외포마을에 지금은 대우조선이 들어선 아주마을에 살던 셋째 할아버지의 둘때 아들 내한테는 당숙이 장가를 가게
되었는데 산길에 가마도 갈 수 없어 어선을 세내어 가마를 싣고 외포 마을 언저리까지 가게 되었었다.
혼사 일행으로는 먼저 가마꾼이 네명(장거리는교대 두팀 8명) 그리고 신랑측 가족 친지 대표 이들 상객(上客) 5-6명을
위시해서 신랑 우인대표 5-6명등 대략 20명이 대동하는데 이들 중에는 마상풍월의 질문에 대응할 역활도 준비
하는데 한문 질문에는 유학에 박식하신 분이 대비하셨고 영어 문제에는 내가 대비하기로 하였다, 몰라서 벌주를
내느니 맞혀서 장원주를 내는게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먼저 다리를 건너는데 동네 장년들이 몰려와 어려운 한문을 보여 주며 무슨 뜻인지 물었는데 유학하신 분이 대신
대답하고 준비해 간 술상에 장원주로 술과 고기 떡을 내려 대접하고, 또 가니 이제 영어문제가 나왔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뭐냐 해서 대답하고 역시 장원주를 냈던게 기억이 난다.
시집 온 신부가 시집 첫 밤을 자고 나면 나무 땔감으로 취사하던 시절 불 지펴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시부모 와 친척들
아침 식사상을 차려 내 오는데 밥투정으로 새댁이 눈물이 핑돌게 만드는 것은 시동생과 조카들 몫이었다.
"이게 밥인지 죽인지 모르겠다."는 둥,
"무슨 반찬이 간이 맞아야 밥을 먹지, 차라리 간장통 고추장통으로 갖고 오라." 는 둥....
그럴수록 시집에는 자기가 의지할 사람은 신랑 밖에는 없다는 걸 자각하고 부부가 돈독헤 진다며 어른들이 그리
하라 시켰고 내가 제일 설쳐서 새댁 숙모를 기어이 울리게 만들었었고, 우리는 재밌다고 돌아서서 키득거리고 ...
결혼식 치르고 한열흘 지나고 나면 신랑 신부는 친정 처가로 초행길을 가게 되는데 이때 처가 동네 사람들이 신랑을
불러내어 메달아 발바닥을 치는 신랑 단다는 통과의례를 치르며 잔치상을 차려 한잔 하면서 처가 동네 사람들과
통인사를 틀기도 했다.
아들 결혼식은 전통 결혼식으로 하였는데 김해 민속 가옥에서 전통예식 이벤트 팀이 복식과 소도구를 준비하여
예식을 진행해 주어서 잘 치뤘던 것 같다, 그게 2012년 이니 어느새 12년 세원이 지나고 슬하에 2녀 1남을 두어
올망졸망 손자들 자라는게 대견스럽기만 하다.
첫댓글 와~~~ 멋지네요!!!
한복특유의 강렬한 색상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