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택배
최혜영
늦가을 벌판에 떨어진 곡식 낱알을 쪼다
발소리에 놀라 하늘로 후드득 날아오르는 새떼
골목 어귀 자동차 아래에서
적막을 깨고 빈 밥그릇 긁는 고양이 울음
그날도 퇴근길 들리는 세상의 소리에
힘든 하루가 저물어 가고
당도한 현관 앞 택배 상자 안 고구마
달빛 쏟아지며 진한 먹 냄새 토해내고 있다
무성한 초록, 풀잎을 닦아주던 풀벌레 소리
창문을 열면 저녁노을에 이랑마다 발소리 찍혀있고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좋은 것만 주고 싶었듯이
그 사람도 내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던 걸까?
크기도 굵기도 같은 가을을 닮은 고구마
맞닿아 썩을까 봐 신문지 켜켜이 넣어보냈지
흙을 털어내어 고구마를 씻어 화목난로 위에
가지런히 올리며 가을이 익어 가는 동안 나는
어느 여름 한때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가는 핏줄이 솟구쳤다가 다시 잠잠해질 때를 기다리며
골목 모서리마다 닳은 구두 뒷굽 소리 들으며
늦가을 끝없이 밀려오는 산그림자를 저만치 마중 나간다
----애지 봄호에서
최 혜영 : 서울출생
다시올문학 2009년 겨울호“시”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 다시올문학 전망 동인
제2회 한탄강문학상 동상수상
시집 <그 푸른빛 안에 오래 머무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