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면밀한 건축가의 보기 드문 인테리어 작업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작가의 작품,그리고 감각적인 생활이 만났을 때. 에디터 곽소영 | 포토그래퍼 문성진
1 ‘가우(Gau)’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작가 남묘진 씨. 다이닝룸에 나란히 걸어둔 작품은 미국에서 디지털 아트를 공부할 당시 작업한 작가 본인의 스크린 샷. 인터랙티브 작업을 평면화시킨 독특한 작업이다. 330cm짜리 육중하고 투박한 테이블이 인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다이닝룸.
2 다이닝 공간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벽난로 옆, 사선으로 마무리한 벽면이 인상적이다. 정면 모빌 작품은 덴마크 작가(Christian Flensted)의 ‘블랙 리듬(Black Rhythm)’, 오른쪽 매입 벽, 네온 컬러가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북 시리즈’는 작가의 은사인 강애란 작가의 작품.
3 거실에서 다이닝룸을 바라본 모습. 정면으로 보이는 작품은 작가 가우의 ‘틈’ 시리즈.
![](https://t1.daumcdn.net/cfile/171D724A4EC4DACF29)
제대로 자리 잡은 자연이 그대로 마당이 되는 다이닝룸. 오른쪽으로 넓은 아일랜드가 놓인 주방이 자리한다
지은 지 15년이 지난 이 조용한 빌라는 잘 지어진 고급 주택의 예스러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서양화와 디지털 아트를 전공한 작가 가우(Gau)가 2년 전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역시 오래된 만큼 잘 정돈된 정원과 고요한 환경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드한 인테리어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한 재정비가 필요했고 그녀는 그걸 해결해줄 적임자를 찾기로 했다.
“수많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만났어요. 스케일도 크고(294m²(89평)) 오래된 빌라라 전면적인 공사를 자신 있어 하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의 친구이자 건축가인 서승모 소장에게 부탁을 했죠. 재미있겠다며 한번 해보겠다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주셨어요. 거실과 다이닝룸의 라운드 통유리 구조를 제외하곤 모든 공간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1 돌로 감싼 듯한 느낌을 갖는 작가 가우의 작업 공간. 오른쪽 나무 문은 현관과 거실을 나눠주는 파티션 역할을 한다.
2 아치 형태의 문으로 나뉘어진 서재와 오피스 공간. 서재 밖으로는 이 빌라의 조용한 마당이 보인다.
3 작가 가우는 집과 작업실이 함께 있어서 자칫 느슨해질 수 있지만 대신 어떤 시간에든 적시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좋다고 말한다.
4 다이닝룸의 안쪽 공간. 둥근 형태의 창 아래에 놓인 도자기 역시 작가 가우의 작업이다.
대리석과 클래식한 몰딩으로 어두웠던 기존의 인테리어 마감은 그녀의 작품을 걸기 위한 넓고 흰 벽, 내추럴한 원목 마루, 자로 잰 듯 똑떨어지는 마감으로 마무리됐다. 작품을 걸기 위해 적당한 위치와 면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부분에는 그녀의 스케일 큰 작업을 염두해 석고보드로 보강했다. 천장은 높일 수 있는 한 최대로 높였는데 그 안에 에어컨 배관, 환기 시스템, 전선 등을 모두 넣어 깔끔하게 마감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부부는 거실의 홈시어터 시스템에도 공을 들였는데, 건축가는 이와 관련된 모든 시스템과 전선을 천장과 바닥으로 매입해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다. ‘집 인테리어는 배선과의 전쟁이다’라는 말을 몸소 그리고 완벽하게 실천한 결과였다. 장식적인 요소를 좋아하지 않은 집주인과 거추장스러운 요소를 완전히 감추고팠던 건축가가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그나마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한 부분이라면 현관과 바로 이어지는 작가 가우의 작업실. 돌로 감싼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집의 다른 마감과 달리 돌 느낌의 타일을 썼고 그 외벽이 거실의 포인트 월처럼 연결된 것이다. 현관과 거실, 서재와 오피스룸, 주방과 다용도실을 나누고 연결하는 문은 세로로 결을 준 나무 소재 미닫이문으로 만들었는데, 이 문을 움직이면 전혀 새로운 공간감이 생기는 파티션 개념의 디자인이다.
1 이질적인 재료로 조화를 만든 거실과 작업실의 옆모습.
2 내추럴한 소재를 활용해 미니멀하게 마감한 욕실 모습.
3 침실 안쪽에는 제법 넓은 공간의 드레싱룸과 파우더룸, 욕실이 자리한다.
“요리를 좋아해 키친 공간에는 각별히 신경을 썼어요. 요리는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개방성 없이 완벽히 독립적이던 부엌을 오픈 형태로 만들어 다이닝 공간과 연결감을 줬고 넓은 아일랜드 덕분에 충분한 수납공간이 생겼죠. 이 집엔 매우 많은 수납장이 있는데 공간별로 아주 잘 숨겨져 있어요.” 절제된 미감과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는 이 집의 매력은 잘 감추고 과감하게 드러낸 건축가의 기교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과 삶의 가치에 같은 무게를 두는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탁월한 호흡이 좋은 공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