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온다고 하거든 무조건 오케이부터 하라
내 나이 칠십보다 팔십이 더 가깝다.
지금까지 집에 손님이 오고 가면서 애환이 일기도 했다.
옛날에는 가끔은 손님이 집에 오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식당이나 숙박 시설이 대신해주고 교통이 어낙 발달되어 남의 집에 방문이
그의 끊어 졌다.
아주 옛날이다.
아버지가 고향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있어 병원에 갔다.
문병을 마치고 밤에 병원 주차장에서 선배 동료 교사였던 분에게 전화를 했다.
여차여차하여 선배님 댁에 방문하고 합니다.
했더니 반기는 기분이 아니었다.
선배 선생님 댁은 상주에서도 외각지에 있는 시골이다.
언젠가 그 댁에서 하루 밤 머문 기억도 있고
선배 선생님이 서울 우리 집도 방문하기도 해서 퍽이나 친밀한 사이었다.
방문에 거절 의사를 받고 나서는 자연적으로 멀어지고
다시는 방문하지 않게 되었고 소식도 끊어졌다.
근래다.
모임을 같이 하는 친구가 양평 어디서 전원주택을 빌려서 생활한다고
카톡에 연락이 오기도 하고 모임 때 자랑도 했다.
내가 서울 오가는 길이 가끔은 양평을 지나 가기도 한다.
“친구 내가 서울 오가면서 자네 전원주택에 들릴 수도 있으니
주소 좀 카톡으로 보내주시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그 후 그 친구가 단톡에 카톡을 보내왔다.
단톡을 하면서 주소 좀 보내달라는데 대답을 아니하니 무척 불쾌하고 언짢았다.
그 후 그 사람과의 인연도 모임도 끝이 났다.
작년이다.
고향에서 초딩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
고향 한마을에서 같이 자란 친구가 일찍 고향을 떠나
울산 현대자동차 부속 공장을 하여 돈을 좀 벌었다고 한다.
그 공장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대둔산 근방 전원주택에 산다고 했다.
카톡으로 “자네 집에 한 번 방문 하고 싶네”라고 했더니
보름은 골프치러가고 또 며칠은 공장에 가고.......
‘오지 말라는 소리지 뭐야’
그래서 방문 생각을 접었다.
나는 강원도 횡성으로 이사 온지가 십년이 넘었다.
그동안 꾀나 많은 손님이 다녀갔다.
크게는 내가 퇴직한 학교 직원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방문 하기도 했고
내가 가까이 지내는 모임에서는 십년동안 일년에 두 번씩은 다녀갔다.
닭도 잡아 먹고 소나무 뿌리에 소주도 매달아 놓았다가 드시고 모두 술이 취하기도 했다.
가끔은 친구가 찾아와서 술에 취해 넘어지기도 하고
여자분들이 와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하늘에 별을 세기도 했다.
일년에 몇 번이고 찾아와서 밥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있었고
기사를 둔 친구는 우리집에 들리고 동해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친구도 있었다.
가끔은 제자가 찾아와 옛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요즈음은 생각도 못 했던 손님이 찾아 온다고 한다.
갑자기 전화로 방문 의사를 밝히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오케이를 한다.
그렇다.
나를 찾아오겠다는 사람에게는 흔케이 오케이 싸인을 보내야 한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손님이 방문하면 정성을 다 하는 마음도 깨우쳐 간다.
잊고 살았던 친구가 찾아 온다는 것은
그래도 나의 향기가 멀리멀리 퍼졌기 때문이 아닌가
나의 향기를 더욱 퍼지게 하는 삶을 살도록 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