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거리에서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02호(2020. 1.15)
임승수 (전기공학93-98, 45세) 작가
호주의 작가 브로니 웨어가 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이 있다. 오랜 기간 입주간병인으로 일하며 생을 마감하는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눈 브로니 웨어는, 어느 순간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는 후회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회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는데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하며 책까지 내게 됐다. 그 책이 바로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백 명에게 묻는다면 백 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행복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으니, 누군가 멋대로 정의하더라도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어렵다. 신의 존재 여부를 증명할 수 없으니 종교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행복에 갈증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브로니 웨어의 책을 읽으며 죽을 때 후회가 적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다. 후회막심한 삶을 행복했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흥미롭게도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 중 사람들이 아등바등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 내 국민은행 통장 잔고에 0을 하나 더 붙여야 했는데, 앞자리 3을 6으로라도 바꿨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 없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살았어야 했는데, 반포자이 아파트에 살았어야 했는데, 한화 갤러리아포레에서 살았어야 했는데? 없다. 서울대 갔어야 했는데, 하버드, 스탠퍼드 갔어야 했는데? 이것도 없다. 그러면 도대체 뭘 후회할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5. 나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다. 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못 번 ‘돈’을 후회하지 않고 못 살아 본 ‘시간’을 후회한다. ‘1만원보다 1시간이 소중하다’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종종 하는데, 청중들이 공대 나와서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내 삶에 호기심을 보인다. 솔직히 연구원 그만두지 않고 공대 경력을 이어갔다면 경제적으로는 더 나았을 테지. 마르크스 책 팔아 벌면 얼마나 벌겠는가? 하지만 다시 2006년으로 돌아가더라도 망설임 없이 연구원 그만두고 작가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고? 다섯 가지 후회를 나에게 적용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 설마 부모님 또는 선생님이 마르크스 책 써서 먹고 살라고 했겠나?
2. 연구원 시절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유롭고 건강하다.
3. 남 눈치 보지 않고 감정 표현하며 산다. 한동안 팟캐스트 1위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 생방송에 출연해 술 마시고 욕하며 술방·욕방의 선구자라는 평을 들었다.
4. 친구들아! 우리 집이 무슨 포장마차냐? 너무 자주 연락하는 거 아니냐?
5. 여기서 나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하면 몸이 ‘빵’ 터진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판단을 하기 전에, 선택지 A와 B에서 펼쳐질 시간부터 비교하니 답이 너무 자명했을 뿐이다. 아무리 돈이 꼬박꼬박 꽂힌다 한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사는 게 더 비현실적 아닌가. 뭣이 중헌디.
* 반도체 소자를 전공한 임 동문은 첫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 뜨다’를 내며 공학도에서 인문 사회 작가로 변신했다. 마르크스 ‘자본’의 대중해설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펴내 화제를 모았으며,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등 저작과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이메일: reltih@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