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詩 읽기] 눈 (신경림) 물·바람이 되어도 서러워하지 않는다
픽사베이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 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 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야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서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는다 해도...
신경림(1936~), 시인
우리의 삶은 죽음을 맞이하며 눈꽃과 같이 녹아 없어진다. 그러나 하늘에 흩뿌려지는 아름다운 눈꽃은 세상을 환히 빛낸다. 인생의 끝이 허무하더라도 꿈을 꾸며 사는 우리는 반짝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신경림은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다니던중 문예지 《문학예술》에 〈갈대〉, 〈낮달〉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자리잡았다.
그의 시집으로 《농무(農舞)》, 《새재》, 《가난한 사랑노래》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시인을 찾아서》, 《민요기행》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호암상(예술부문), 4·19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국문과 석좌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