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하던 날
김종숙
올해도 벽에 걸린 달력은 달랑 한 장을 남겨놓고 있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하다. 여느 달과 달리 십이월은 고마웠던 일을 생각하고 정을 나눔을 생각하는 달이 기도하다. 한해를 되돌아보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 옮긴 직장에 첫 출근 하던 날, 공복으로 가긴 출출할 것 같아 평소에 먹지 않던 우유를 한 컵 마셨다. 야근만 하던 습관이 몸에 배인지라 사실 아침밥을 거른 지 오래이다 보니 아침에 먹는 밥이 부담스러웠다.
오랜만에 떠오르는 해를 한가슴 안고 발걸음도 가볍게 출근길에 나섰다. 걸어서 삼십분 거리 딱 좋다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사! 큰일 났다. 아직 직장까진 반 정도 더 가야하는데 공복에 마신우유 때문에 큰 낭패를 겪게 생겼다. 빠르게 종종걸음으로 상가를 살펴보지만 문을연 상점이 없었다. ‘ 이런이런 어떡하지’ 괄약근에 힘을 주어 참으려 해도 급하게 나오려 것을 참을 수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된 것은 왠만큼 참을 수 있어도 설사는 도저히 참아볼 수 없다. 이마엔 땀이 번지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흐른다. ‘아유우 어떡하지’ 개망신 당하기 일보직전 한군데 작은 식당이 문을 열고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급한 상황인지라 창피하단 생각은 잊어버리고 거침없이 말했다.
“화장실 좀 쓸 수 없을까요? 아후 제가 너무 급해 서요” 주인내외가 쳐다봤다. 그때 나는 죽을힘을 다해 창백한 얼굴로 다리는 비틀어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엉덩이를 쭉 뺀 채 세상에서 제일 절실함을 눈에 담아 애원의 눈빛으로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의 절실함을 알아챘는지 그러라며 승낙을 해주었다. 감사하단 인사를 하고 신발을 벗으니 신발을 신고 가란다. 너무 급하다보니 신발을 벗을 곳인지 신을 곳인지 분간 할 수 도 없었다. 정말 그 순간은 나에게 절대 절명의 순간 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총알보다 빠르게 뛰어 들어가니 주인이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 경황 에도 잠시 주춤해진다. 분명 설사를 할 텐데 아후 저렇게 잘생긴 남자 앞에서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하지만 참을 수 없어 방으로 들어갔다. 예쁜 애완견이 마구 짖어대며 달려들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나 되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급한 상황 물려도 할 수없단 생각을 하며 뛰어가니 개들은 앞을 가로막으며 무섭게 짖어댄다. 정신없이 눈앞의 문을 열려는데 주인이 옆문을 열라고 했다. ‘아! 옆에요’ 하며 돌아서는데 뭔가 차가운 것이 발 뒤 꿈치에 밟히며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유쉬 개똥을 밟고 말았다. 젠장 할 엎친데덮친 다더니 오늘 완전 재수 옴 붙은 날이다. 화장실 문을 닫자 천둥이 치기시작 했다. 우르릉쾅쾅, 소리가 화장실 밖으로 새어나갈까 무서워 물을 내리자 천둥에 폭우까지 쏟아지는 소리를 내며 더 요란하다. 창피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딱 죽고만 싶었었다.
다시 멀어져가는 천둥의 여운 같은 소리를 내고 화장실은 평온해졌다. 등에 흐르던 땀도 걷히고 아프던 배도 멀쩡하다. 그나저나 망신스러워 어떡케 나가지 생각하는데 개똥 밟은 생각이 번쩍 든다. 물로 발을 씻고 싶은데 수건까지 달라고 하면 염치 없을것 같아 찝찝하지만 양말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애완견이라 사료를 먹이니 양말에 묻은 것도 없었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개세마리가 무섭게 짖어댄다. 주인이 진정을 시키지만 앙칼지게 짖으며 나를 쫒아온다. 나는 속으로 이것들을 그냥 확 된장을 발라 버릴까보다! 생각하며 온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아마 70년대 초였던 것 같다. 고모가 고기와 술을 사오셨다. 명절 때나 맛보던 고기를 허겁지겁 먹고 탈이나 고생을 한적이 있었다. 지금은 먹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아침에 마신 우유한 컵에 이 고생을 하는걸 보니 나는 아직도 나물 넣고 고추장에 밥 비벼먹던 그때를 잊지 못한 모양이다.
이튿날 출근길에 인사를 하려고 식당을 보니 문이 닫혀있었다. 옛말에 때에 따라 바뀌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해 뒷간 갈 때 다르고 나올 적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감사를 표하려는 내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식당 간판을 볼때 마다 고마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마수걸이도 하지 않은 가게에 문 열자마자 뛰어 들어온 나에게 흔 쾌이 방안에 있는 화장실을 빌려준 사람들, 절대로 잊지 못할 고마움 이다. 나의 인성은 아직도 덜 자란 모양이다. 먼저 베풀 줄은 모르고 받은 후에야 비로소 고마움을 알게 되니 말이다.
얼마 후 나는 갓 구운 따끈한 피자한판을 들고 찾아가 인사를 했다. 마음씨 좋게 생긴 부부는 내게 더 고마워한다. 이 겨울 내 가슴이 훈훈해 진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격으며 출근한 직장은 나와 인연이 없었는지 난 독감을 오래 알았고 결국 사표를 썼다. 인생은 참 요지경 속이란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그 식당은 홀 손님은 받지 않는 배달전문 식당이었다. 애견을 키우는 집에선 함께 자며 식구처럼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첫댓글 ㅎㅎ 선생님, 안녕하십니까..수업시간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이제야 올리셨군요.."고모가 고기와 술을 사오셨다. 명절 때나 맛보던 고기를 허겁지겁 먹고 탈이나 고생을 한적이 있었다. 지금은 먹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아침에 마신 우유한 컵에 이 고생을 하는걸 보니 나는 아직도 나물 넣고 고추장에 밥 비벼먹던 그때를 잊지 못한 모양이다. " 재미있게 감상하고 갑니다. 건필하십시요.^^
하하하하... 배꼽 빠질까봐 잡고 있습니다..읽고 또 읽어도 웃음이 나옵니다..참 유쾌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좋은 글 감사드리고 모처럼 눈물 나도록 웃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재미있네요. 당시엔 얼마나 급했을까 안봐도 비디오네요. 저도 우유먹으면 설사를 해서 잘 먹지 않습니다. 수필 잘 읽고 갑니다.
" 나는 죽을힘을 다해 창백한 얼굴로 다리는 비틀어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엉덩이를 쭉 뺀 채 세상에서 제일 절실함을 눈에 담아 애원의 눈빛으로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
나의 절실함을 알아챘는지 그러라며 승낙을 해주었다. 감사하단 인사를 하고 신발을 벗으니 신발을 신고 가란다. 너무 급하다보니 신발을 벗을 곳인지 신을 곳인지 분간 할 수 도 없었다. 정말 그 순간은 나에게 절대 절명의 순간 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총알보다 빠르게 뛰어 들어가니 주인이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아직도 나는 나물 넣고 고추장에 밥 비벼 먹던 그때를 잊지 못한 모양이다"... 돌연변이같은 글이란 생각 인데, 멋빕니다...^^ ^^ ^^
추억은 아름다워라...어떤 추억이든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종숙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잼있는 작품 감사히 보았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화장실 소동이지요. 그 절박함이란... 감상 잘 하였습니다.
아유 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글로 만나는 군요. 그때도 많이 웃었는데 또 웃습니다.
자신이 살짝 망가져서 다른사람을 즐겁게 해주시는거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머지 않아 만날 수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여러 선생님 모두 감사합니다.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사람 이렇게 기억하시고 많은 댓글 달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ㅋㅋ...잊지못할 추억을 겪으셨습니다 선생님? 해서 좋은 글 한편이 탄생하고요...
재미있는 글 올려 주셔서 감사히 감상 하고갑니다. 선생님.
와!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이제야....즐겁게 보고 갑니다.
나의 인성은 아직도 덜 자란 모양이다. 먼저 베풀 줄은 모르고 받은 후에야 비로소 고마움을 알게 되니 말이다 하필이면 피자를 사가지고 가셨군요
여러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게을러 홈에도 자주 들리지 못하고 인사도 드리지 못하는데 이렇게 많이 칭찬해 주셔서 넘넘 감사합니다. 봄학기엔 선생님들 뵙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ㅎㅎㅎ
저야말로 선생님 글을 이제사 봅니다 늘 궁금하고 보고싶네요 내년엔 같이 공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