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운이좋은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군 현대화 과정에서 소위에서 대위까지 고속 승진
아니 특진을 하였다 소위에서 대위 까지 5년여 새월에...
(동기들보다 1년 먼저 육사생보다 6개월먼저 진급했다)
당시 실태: 내가 고등학교1년생 일때 외숙이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까지9년을 달아 생질인 저가 먼저 대위 진급됨
1959년11월 30일 소위로 임관하였다
후보생 시절 벌점없는 후보생 처음있는 일이며
내무상호 평가 도 1등하였다
임관후 철원 수도사단 기갑연대 1대대4중대1소대장
소대장 부임과 동시 소대원과 같은 내무반에서
기거생활을 함께했다
5.19혁명후 전국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석방
전방부대에 배치되어 하루도 편안할 날이없는 사고가
이부대 저 부대에서 일어났다
지휘관들의 고심끝에 사고자들을 한테모아 사고자소대를
만들어 모범소대로 명칭하여 나에게 소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임명받는 날 지휘관에게 3가지 사항을 건의하였다
첫째: 일과 시간 외에 사역을 시키지 말것
둘째: 소대장이 건의하면 즉시 휴가를 줄것
셌째: 지휘계통 없이 사고자를 소대장이 직접 헌병대에
유치권한 부여
즉석에서 연대장 원태연 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았음
내 나이 23살
소대원은 모두 형님 또는 삼촌뻘
난 그들을 개개인으로 만나 대화할때 형 또는 삼촌으로
대하였다
그러나 그외는 엄정한 규율로 다스렀다
소대원과 함께 소총 또는 기관총 분해결합 시합을 수시로 하였다
난 숙달된 조교와 같았다
교도소에서 나온 소대원은 재주가 많았다
목수 석공 용접 타일 다양하여 이 다양한 소대원을
토의 끝에 대대취사장의 부식 창고를 짓기로 합의하여
취사장 뒤 언덕에 멋진 부식창고를 만들었다
언덕을 절개하여 내부에 석축을 샇고 나무로 선반을 만들고
위에서 낙수로 창고를 휘둘러 빠지게하여 내부 온도를
낯우고 창고문을 이중으로 만들어 출입시 외부 온도차를 나추는
작용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대장이 시킨것도 아니요 순전히 자발적으로
만든 모범소대 소대의 명작이었다
이 부식창고는 사단장님의 특명으로 시범부식창고로서
사단의 표준 규격이되어 취사단위별로 만들게 되었다.
나는 누가 지시하지않았지만 전방 소대장으로서
밤에 군화를 신고 잤다 이겄은 나의 생활신조다
어느날 밤에 바깥을 나와보니 멀리 불이번쩍 번쩍
차가 부대로 들어오고있어 연병장으로 달려나갔다
사단장 장춘권님이 오신거다 맹호 구화함께 거수경례를 하며
소대장 이석봉이라고 관등성명 정식 인사다
귀하는 왜 나왔어 하시길래
저는 평소 밤에 자다가 나와서 수시로 스스로 순찰을 합니다
그래 복장이 단정하구나 내 항상 군화를 신고 잡니다
사실 난 소대장때는 군화를 신고잤어 무좀을 달고 살았다
그날이후 사단지휘관 회의에서 사단장님이 어느부대
소대장 이석봉 소위의 내무생활을 소개하여
맹호부대에서 소위 이석봉은 명 소위가 되었다
25사단에서 근무중인 동기 이재홍 소위가 병원에 입원하여 퇴원하고
우리 수도사단에 부임받아 보충대로 오니 소위 이석봉에 대한
내무교육을 받아 알고서 니가 최고 모범소대장이라고 알려주어
보충대에서 나를 귀람으로 교육을 시킨 사실을 알게되었다.
난 이때까지 연대장표창 3번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박임항
표창까지 받았다 표창을 받을려고 애쓴것도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보병에서 병참으로 전과되어
연대장에게 신고하니 보병에서 커야할 사람이 왜 전과하느냐고
하시길래 저도 모릅니다 명 받을 뿐입니다
전과되어 배치 받은 부대는 제1유류창 중대
어디에있는지 몰라 육군본부 병참감실로가니
누구 빽으로 그리가느냐고 따져묻는다
나도 기가 찰 노릇이다
부대는 인천 송도에 있었다
이 부대는 전쟁이 나면 미군이 운영하고있는 유류시설을
인수 전방에 유류를 보내기위한 탱크 운영부대다
탱크하나에 10,000드럼 저장이다
관물보관 빽을 매고 부대로 들어가는데 위병소에서
경래를 하는데 위병소 바깥에서 신문을 보던 하사관이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고 있엇다 소위에게 인사하기가
싫어서인가보다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다
귀관 뭐하는거야 신문 내려하니 하사가 그러고있었다
그 자리에서 시범을 보이고 정신없이 기압을 주었다
부대에 들어가 창장에게 정식 신고를 하고
들어오면서 하사관을 기압준것을 사과하였다
그러나 참 잘하였네
이 철조망 안에는 2개부대가 있어 우리는 유류창중대이고
현재 취사장을 운영하고 다른부대는 유류보급중대로
위병소운영밑 외각 시설을 경계하고있어 그 하사관은 유류보급중대 소속이야
난 그길로 유류보급중대를 찾아 중대장 이웅재 대위에게
이웃부대로 전속 온 소위 이석봉입니다
정식 신고를 하고서 부대 초소 하사관의 기압에 대하여 용서를
빌었다 듣고있던 이웅재 중대장님은 이소위 잘하였오 교육 고맙소하신다
벌서 이부대안에 무서운 소위가 왔다는 소문이 펴지게된다
사실 이부대는 군기가 억망이다
3개월간 집념으로 주번사관을 도맡아 꾸준히 교육하여
전방부대 못지않게 정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부대원들의 신상을 살펴보니 모두 위로 무시무시한 빽으로
들어온 서울 토박이들이다 간혹 경상도 전라도출신들이
섞여있다
휴일에 외출외박 못하는 경상 전라 병사들과 바다 물이 빠질때면
으래 걸어가서 조개도 꼴뚜기도 잡아먹으면서 대원들과 친목도
두터히 하고 체력도 단련하였다
창장 조태권 소령은 저에게 고사포기관총 (케리바 50) 분해결합 할줄 아느냐고 묻는다
이건 나의 특기다
이부대는 유류장고중대로 편재에 고사포용으로 2대의 고사포기관총을 갖고있으나
분해할줄 몰라 겉으로는 맨들맨들 하게 기름만 쳐놓은 상태다
내 암니다 하니 좋아서 창고로 바로 안내한다
판초 우의 깔고 즉석에서 제 빠르게 분해하여 펼치니 녹 슬은 부속이 가관이다
병사들이 딱고 문질러 녹슨부품을 새것으로 만들어 놓아 결합하여 놓으니
부대장님의 근심꺼리를 없에주었으니 나를 동생 조카처럼 대해주신다
난 이부대에서 참모총장상을 받었다
이부대철조망 밖에 배 밭이 있다
어느날 한 병사가 이제 익어가는 풋 배를 몰래 따다 먹는것을 발견하고
완전군장하고 배를 입에물게하여 부대 주위를 하루종일 걷게하였다
이후 배는 아무도 손을 대는 병사가 없었다
가을에 배밭주인은 배를 2상자를 보내주어 부대원들이 잘먹었다
그후 이배밭은 재되로 수확을 하였다
이부대를 떠나 8사단 병참중대 출납관과 중대장을하며
정인용 사단장님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이는 직분별로 부대 시설물 내지 부대외곽과 내무반 점검 카드를 만들어 점검하여
점검결과를 통에다 넣어두면 중대장이 확인한제도로
사단장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이후 1군사령부 병참참모 보좌관을 하면서 최광년장군 김종달 장군 두분을 모셔봤다
월남으로 파병하여 초대 영현중대장을 보임 받아 영현봉안소 가는 주변 도로에
한국의 꽃씨를 뿌려 물차로 매시간마다 물을 주니 잘 자라 완전한 꽃길이 되었다
(난 각도 교육감 앞으로 편지를 내어 꽃시 보내주시기를 호소하여 꽃시를 많이
확보하였다 다블백6개 분량이다)
고국에서 오시는 국회의원 참모총장 합찹의장 연예인등 월남오시면 영형봉안소
참배는 기정사실이다 모두들 봉안소로 올라가는 주변 우리꽃들로 가꾼것을 보고
탄성을 자아 내었고 사령관님께 감사하다고 하시어 사령관님 유학성 장군님은
나를 엄청 좋아하시었다
이곳에서 소령진급 대상자17명중 막내인 저가 혼자 진급을 하였다
누가 나를 운이좋은 사람으로 논하는가
선배 동료들 난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평소에 내 맡은 책임 범위 내에서
착상및 실천으로 소임을 다한것 뿐이요
운자를 꺼꾸로 보면 공자로 되어있어요 즉 공을 많이 쌓은 결과지요
난 대통령 시해 사건당시 시국의 어수선한 상태에서 본의 아니게 대령으로
희망재대하여 퇴역으로 구분되어 전쟁이 일어나면
언제든지 원하면 전투에 참여가능 상태로 되어있어 가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