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여름 한때를 즐기는 이들 뒤로 콘크리트 담장이 보인다. 왼쪽에 망루 같은 것이 보인다. 110만명 가까운 이들이 독가스로 죽임을 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그러면 담장 하나를 두고 너무도 딴세상인 이 집은? 수용소 소장으로 일한 루돌프 회스의 집이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연출해 아카데미상 다섯 부문 후보에 지명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대량 학살의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옆집 회스의 집을 세밀하게 묘사해 오히려 공포를 극대치로 끌어올린다. 글레이저 감독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빅브러더'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 스태프와 카메라 위치를 알리지 않고 배우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음에 적나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영국 BBC에 28일(현지시간) 털어놓았다. 10대의 원격 조종 카메라가 돌아갔다.
회스는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이곳 수용소 운영을 책임졌는데 지클론 B란 독성 살충제를 유대인 100만명, 유대인이 아닌 10만명의 신체에 주입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회스의 집은 실제로 아우슈비츠로부터 몇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음식도 풍족했고,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수용자들의 비명, 총성, 기계 돌아가는 소리 등이 담장을 건너왔고, 이 집 정원에서 나는 소리 역시 수용자들이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해서 글레이저 감독은 "내가 자꾸 쓰던 문구가 '나치 가옥에 있는 빅브러더'였다"고 털어놓았다. 늘 누군가 지켜보는데 자신들은 어떤 연기를 펼치는지 알 수 없지만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담았다. 조명도 최대한 자연스럼게 해 다큐멘터리를 찍는 느낌으로 촬영했다. 실제 촬영은 회스의 집은 아닌, 그리 멀지 않은 집에서 했다.
영화에 드라마 따위 없다고 감독은 말했는데 맞다. 가족들의 삶은 단조롭게 그려진다. 전혀 전통적인 관습을 좇지 않는다. 편안한 캐릭터, 재미있고 따듯한 구석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아내 헤드비그는 커피를 들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하인들을 함부로 부린다. 위층에선 아이들이 놀고 있다. 회스는 서재에서 가능한 많은 이를 효율적으로 화장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글레이저 감독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볼 필요가 있었다. 해서 우리가 그들과 한 집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야 했다"고 말했다.
헤드비그는 스스로를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유대인 수용자로부터 빼앗은 모피코트를 걸친 채 침실에 들어간 뒤 주머니에서 밝게 빛나는 붉은 립스틱을 찾아내 입술에 발랐다.
루돌프 회스에 캐스팅된 크리스천 프리델은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역할을 거절한 것으로 유명했다. 나치하면 잔인한 악을 묘사하는 일종의 클리셰가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글레이저의 접근이 나아 보였다고 했다. "내게 이렇게 하면 관점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 캐릭터를 관찰하는 창 역할 말이다.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식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조너선이 우리에게 말했다. '제발 연기하지 말고, 그 존재가 돼달라'고."
산드라 휠러가 헤드비그 회스를 연기했는데 오는 31일 국내 개봉하는 '추락의 해부'(Anatomy of fall)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그녀는 영화 만드는 일은 기다리는 데 에너지를 소모해 많이 지루했는데 제작진도 적게 투입되고 설정하지 않고 배우들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고 기술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니 한결 재미있었다고 돌아봤다. 실수해도 상관없었다.
평단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일간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악의 진부함을 극명한 초점으로 들여다본다"고 했다. 글레이저 역시 유대인이다. '쉰들러 리스트'와 '소피의 선택', 선오브 사울' 등 아우슈비츠를 그린 영화들이 많다는 것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작가 마틴 에이미스의 원작 소설을 읽고서 연결됐다고 느껴 각색했다. 에이미스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시사회 전날 숨져 안타까움을 안겼다.
나치의 잔인함을 묘사하거나 하지 않고도 진정 독보적인 관점을 제공하고 싶어했다. 수용소의 공포는 이미 우리 심상에 각인돼 관객들은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언더 더 스킨'과 '섹시 비스트' 등 전통적인 영화 문법과 거리를 두어 온 글레이저 감독은 "소리야 말로 완벽한 잔인함을 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지 않아도 결코 우리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이라고 말했다.
사운드 디자이너 조니 번은 몇 달을 고민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두 영화를 보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 하나는 가족 드라마나 '빅브러더'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을 타고 넘어오는 소리다. 그것이 진정한 내러티브"라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수용소 기계음이었다. 목공 작업소와 화장장 기계음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수용자들이 낼 법한 소리들을 재현하는 일도 힘겨웠다. 또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이들의 비명을 담아내는 일도 어렵긴 한가지였다.
미카 레비가 음악을 맡았는데 첫 장면 컴컴한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 화제가 됐다. 어떤 이는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 반면, 다른 이는 끔찍한 일의 전조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저아래 악마의 소굴에서 들려오는 포효같은 깊은 비인간적인 소리"라고 평가한 반면, 버라이어티는 "극대치에 이른 기이함"이라고 봤다. 레비는 "일종의 의문부호다. 캐릭터들의 내러티브를 감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영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회스가 폴란드인 가족으로부터 빼앗아 단장한 집이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크리스 오디는 아우슈비츠를 재현하고 싶었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500m 안쪽까지 건드리거나 건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글레이저는 나치가 Zone of Interest라고 명명한 이곳에서 촬영하고 싶었다. 나치 친위대(SS)는 수용자들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자신들의 범행을 아무도 목격하지 못하도록 이 지역에 살던 9000여명을 쫓아냈다.
그런데 원래 회스의 집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회스 가족이 입주했을 때처럼 새 집 같아 보이지 않았고, 곱절은 커져 있었다. 오디는 그 집을 여섯 차례나 방문해 가족들과 친해졌다. 그는 원래 집에서 200m 떨어진 건물을 발견했다. 그 건물을 4개월 반에 걸쳐 수리해 가구를 들이고 나무를 옮겨 심었다. 그 뒤 10대의 원격 조종 카메라를 숨겼다.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에서 목이 매달려 처형됐다. 1년여 도주한 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뒤 폴란드 정부에 넘겨져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앞마당에 차려진 교수대에 매달려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악행과 참회는 다음을 참고하면 되겠다. 가톨릭 신부가 되려 했으며 실제로 사제 수업을 받다가 정치깡패로 변신, 하인리히 히믈러의 눈에 들어 유대인 학살에 앞장서 요제프 멩겔레 등에게 생체 실험을 지시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사형 선고를 받고 회고록을 집필했다. 루돌프 회스 - 나무위키 (namu.wiki).
글레이저는 이번 영화가 "인간 능력의 어두운 구석을 들여다본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영화가 그린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저지른 일이다. 우리가 스스로보다 다른 이를 덜 인간적으로 볼수록 잔인함으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 안에 내재한 폭력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