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38 - 빙하 시대를 날다 남극점을 왕복 비행한 리처드 에블린 버드(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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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19:10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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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빙하 시대를 날다
남극점을 왕복 비행한 리처드 에블린 버드(1929년)
요약 리처드 에블린 버드는 남극 대륙에 ‘리틀 아메리카’라는 기지를 세우고 42명을 상주시키는 계획으로 남극 탐험에 도전했다. 30m가 넘는 얼음 절벽으로 이루어진 곳에 세운 기지에서 겨울을 나면서 남극점 비행을 준비했다. 플로이드 베닛호는 1929년 11월 29일, 남극점 상공에 다다랐다.
타고난 모험가
리처드 에블린 버드가 남극점으로 비행하면서 육분의로 태양을 관측하고 있다. 그는 열두 살 때 세계 일주 여행을 했으며, 대서양을 무착륙 비행하고 남극 · 북극을 다 정복했다. 국민적 영웅이 된 그는 편안히 살 수 있었지만, 여생을 남극 탐험에 바치다가 남극에서 죽었다.
1928년 8월 25일 돛대가 3개 달린 구식 포경선 '시티 오브 뉴욕'호가 출항하는 뉴욕 항은 축하 행사로 떠들썩했다. 크고 작은 배 수백 척이 뱃고동을 울리며 남극으로 떠나는 리처드 버드를 배웅했다. 버드가 남극해의 거친 파도와 얼음을 견뎌 낼 배를 찾아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찾아낸 이 배는, 반 세기 전 뉴질랜드에서 건조되었다.
버드는 이 탐험을 그동안의 남극 탐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과학적인 것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장비와 보급품 수천 톤, 비행기 3대와 설상차 1대, 라디오 송수신탑 3개를 세울 철근, 건물을 지을 조립식 패널들, 발전용 가솔린 터빈과 도서관을 만들 만큼 많은 책, 의약품과 식량 수십 톤, 썰매개 80마리와 전문가 · 의사 들이 남극으로 떠나거나 뒤따를 예정이었다.
남극 대륙에 '리틀 아메리카'라는 기지를 세우고 42명을 상주시켜 남극을 탐험하려는 버드의 계획은 포드 · 록펠러 같은 거부의 지원금과 일반인의 헌금 40만 달러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28년 12월 28일 버드는 남극의 고래 만에 도착해 30m가 넘는 얼음절벽으로 이루어진 로스 빙붕(氷棚)에 기지를 세웠다. 이 넓고 평평한 얼음 땅은 활주로를 만들기가 좋았고, 해안을 떠다니는 얼음덩어리가 절벽으로부터 비탈진 통로를 만들어, 배로 실어온 물자를 나르기 쉬웠다. 몇 주일간 썰매개들이 보급품을 운반하자 식당 · 합숙소 · 사무실 · 송신탑이 차례로 세워졌다. 전기 · 급수 · 환기 시설도 마련되었다.
1929년 1월 14일 공중촬영용 페어차일드 단엽기가 도착하자 버드는 동쪽으로 정찰 비행을 했다. 거기에는 지도에 없는 산맥이 50km쯤 뻗어 있었다. 그는 '록펠러'라는 이름을 붙였다. 록펠러 산맥을 넘어 다시 넓고 평평한 땅을 발견하자, 자기 아내 이름을 따 마리버드랜드라고 명명했다.
얼마 뒤 비행기 2대가 더 왔다. 금속으로 만든 플로이드 베닛호는, 3발 엔진 포드 단엽기로 스키를 달고 있었고, 1대는 단발 포커기였다.
버드는 리틀 아메리카 기지에서 겨울을 나면서 남극점 비행 준비를 했다. 또 물리학 · 기상학 · 빙하학과 관계된 여러 가지 조사를 했고, 로렌스 굴드 박사의 지질학 탐험 준비를 도왔다.
겨울이 가고 D데이가 가까워 왔다. 그런데 해결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남극점에 가려면 로스 빙붕 640km를 지나 4,200m가 넘는 퀸모드 산맥을 넘고, 다시 640km에 이르는 남극 고원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기가 퀸 모드 산맥을 넘으려면 4,300m 이상으로 날아야한다는 점이다.
승무원 · 장비 · 식량을 모두 합한 비행기 무게는 6,580kg이나 된다. 이 무게로는 비행기가 산맥을 넘을 수 없고 연료도 충분히 싣지 못한다. 탑승자 네 사람 중 항공 촬영을 맡은 애실리 매킨리와 그의 장비가 270kg이나 되었지만, 항공 촬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1929년 11월 28일 추수감사절. 날씨가 그런 대로 괜찮았다. 플로이드 베닛호는 오후 3시 29분에 기지를 이륙했다. 그러나 곧바로 눈발이 날리면서 화이트 아웃(천지가 흰색이어서 방향 감각을 잃음) 현상을 일으켰다. 지평선도 보이지 않는 은빛 세계를 520km나 날고서야 조종실에 햇발이 들었다.
멀리 퀸 모드 산맥이 보였다. 버드와 함께 대서양을 횡단한 노르웨이 출신 조종사 번트 볼천은 고도를 1,500m로 높였다. 버드는 잠시 고민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애초에 그들이 정한 비행 코스는, 아문센이 남극 고원에 올랐던 길로, 퀸 모드 산맥에서 가장 낮은 지점인 악셀 하이베르크 빙하였다. 또 하나는 멀리 서쪽 끝에 있는 리브스 빙하였다.
아문센 악셀 하이베르크가 3,200m라고 보고했다. 만약 비행기가 그 높이로 오르는 데 실패한다면? 좀 돌아 가기는 하지만 리브스 빙하는 악셀 하이베르크보다 300m쯤 낮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은 전혀 미지의 세계였다.
버드는 결단을 내렸다. 플로이드 베닛호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리브스 빙하는 여전히 비행기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거칠고 뾰족한 얼음산들이 비행기의 앞을 가로막은 것을 본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비행기가 산맥에 다가갈수록 그들 앞을 막아선 빙벽은 더욱 높고 거대해 보였다. 볼천이 고도를 높이려 안간힘을 썼지만 기류가 방해했다. 통신사 해럴드 준이 빈 연료 깡통 몇 개와 라디오를 밖으로 던졌다.
"100kg을 던지거나, 아니면 돌아갑시다!"
볼천이 외치자 매킨리가 그의 카메라 하나를 던졌다. 그리고 45kg짜리 가방도 던졌다. 순간 기체가 풍선처럼 둥실 뜨는 듯싶었으나 충분치 않았다.
"좀더! 또 다른 가방!"
볼천이 다급하게 외쳤다. 빙벽이 바로 앞에 있었다. 비상 식량이고 뭐고 판단할 겨를이 없이 매킨리가 150kg짜리 식량부대를 던졌다. 그러자 기체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즉시 30m쯤 휙 뜨는 것 같았다. 볼천이 환하게 웃는 것과 동시에 그들 앞에 탁 트인 남극 고원이 펼쳐졌다.
그들은 누구도 날아 보지 못한 곳을 한없이 날았다. 지평선 멀리 엷은 희푸름 속에 묻힌 외로운 산봉우리들을 제외하고는, 단조로움을 깨뜨릴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플로이드 베닛호는 300m 고도를 유지한 채 빙하시대의 대파노라마 속을 날고 또 날았다.
비행기는 맞바람 때문에 시속 140km 이상은 내지 못했다. 버드는 콤파스로 계속 태양을 관측하며 볼천에게 항로를 지시했다.
날이 바뀌어 1929년 11월 29일이 되었다. 오전 1시께 볼천이 동쪽에서 검은 구름이 극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상황이 다급해졌다.
오후 1시 14분 플로이즈 베닛호는 마침내 남극점 상공에 다다랐다. 그들이 극점 위를 선회하며 뚫어져라 내려다본 극점은 돌멩이 하나 없는 흰색 얼음 벌판이었지만, 리틀 아메리카를 통해 극점 도달 소식을 들은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강한 바람을 타고 시속 200km로 날아, 폭풍우를 앞질러 19시간 만에 기지로 돌아왔다.
▼ 그 뒤 기록은 * 1963년 / 제임스 리디 케이프타운~남극 대륙~뉴질랜드 무착륙 [네이버 지식백과] 빙하 시대를 날다 - 남극점을 왕복 비행한 리처드 에블린 버드(1929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