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단단한것을 물렁하게 하는데 특효
적용질환:습관성 관절통,월경통,임파선염
약효: 충독,사독,해독,활혈,진통,심한요통,신경통,어혈에 효능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가 몇칠 남지 않았다.
벌써 밤이 되면 풀벌래들이 짝을 찾는 애절한 노래가 시작되고, 울밑에 봉선화는 그리운이들 기다리는듯 곱게 피어 난다.
봉선화는 재벌의 화려한 별장 보다는 시골집 토담 옆에나 장독대 울타리옆에 피어야 어울리는 꽃이다.
봉선화는 목련이나 장미꽃처럼 결코 화려하고 요염한 꽃이 아니다.
힘겹게 살아 가는 시골 아낙네 같고 어딘가 말못하는 서러운 사연을 지닌채 누군가 기다리는듯 그렇게 사리문 앞에 피어 있는 꽃이 봉선화다.
누님네 가난한 정원
봉선화는 다정히 핀다.
어느해 5월
영이와 슬픔을 나누며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 하다.
마음의 가난을 풀어준 꽃
많은 가시네의 순정을 그려 준꽃
돌아 가리라 돌아 가리라
울밑으로 울 밑으로만 --
피보다 짙은 사연을 안고
고향보다 그리운 봉선화 곁으로 가리라.
- 김혜성 (봉선화)-
이 시에서 보듯이 가난 ,다정,누이,처량,슬픔,사연,순정,그리움,고향 울밑을 연상하게 하는꽃이다.
봉선화는 봉선화과 한해살이 풀이며 씨앗으로 번식 하고 6-7월에 꽃이 피며 품종에 따라 빨간색 ,분홍색,주홍색,흰색, 드물게 연보라 빛꽃도 볼수 있다.
8월부터 먼저핀 꽃에서 타원형 씨앗 주머니가 생겨 여무는데 익어면 탄력적으로 터지면서 좁쌀보다 조금 큰 황갈색의 여러개 씨앗이 퉁겨 흩어 진다.
키는 약 60cm 크기 내외로 곱게 자라고 털이 없는 매끄러운 모의 육체 이며 특히 밑부분과 마디가 붉고 두드러지게 굵어진다.
봉선화는 옛부터 잡귀들 물려 치고 뱀의 침입을 막는다고 하여 울타리들 따라 많이 심었다.
실제로 봉선화는 뱀이 싫어 하는 냄새가 있고 (약초지식)에서는 뱀독과 벌래독에는 봉선화 잎의 즙이나 씨앗을 가루들 내어 바르면 큰 효과를 본다고 하였다.
봉선화는 인도 중국을 비롯한 동남 아시아가 원산지로 알려 져 있어며 생약 이름은 씨앗을 급성자. 풀전체를 투골초라 하는것을 약효가 빼속 까지 침투 한다는 뜻이다.
사실 봉선화는 빼처럼 단단 하것을 물렁 하게 하는데는 불가사이 하게 하는 토종 약초 이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을때는 봉선화 씨앗을 곱게 갈아 침과 같이 넘기면 생선 가시가 녹아 없어 지며 민물고기나 생선을 삶을때 봉선화 씨앗을 몇개 넣어 삶어면 빼가 아주 연해 진다.
출산의 고통이 심할때는 봉선화 씨앗을 달여 마시면 골반 빼가 연하게 열려 순산 한다고 하였다.
민간 요법으로 봉선화는 뿌리,줄기 잎,꽃,씨앗, 모두 같은 효과의 약으로 쓰인다,
신장결석,요도결석으로 통증이 심할때는 씨앗을 비롯하여 풀전체를 술에 담가 두었다가 소주잔으로 한잔씩 마시면 몇시간 이내 통증이 가시고 보름 정도 복용 하면 결석이 녹아 쌀 뜨물처럼 되어 오줌으로 배설 된다고 하였다.
심한 요통 신경통 어혈에 효능이 있어며 특히 심한 요통이 있는 불임 여성은 봉선화 씨앗과 풀전체를 하루분량 30g 정도로 달려서 하루에 3번 나누어 보름정도 마시면 요통이 없어지고 임신가능성이 높아 진다고 하였다.
주의할점은 유독성 식물을 남용 하여서는 안되며 복용할때는 대롱으로 사용 하여 목안으로 삼키며이빨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봉선화 중에서도 흰꽃 봉선화가 갖가지 난치병에 신비한 효력이 있다고 하였다.
봉선화 ,봉숭아 다같이 표준어로 쓰며 손톱에 꽃물들이 그날을 생각 하시리 라는 시처럼 누이들에게는 추억의 꽃이며 1942년 봄 동경의 하비야 공화당 성악 신임 발표에서 선발된당시 김천애라는 소프라노 고향 어머니가 보내준 흰치마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서 앵콜송을 부러는 노래가 홍남파가 작곡한 봉선화다.
이미지 보기 봉선화 제공: encyber.com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 봉숭아라고도 한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있으며 바소꼴이며, 4~5월에 씨를 뿌리면 6월 이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빛깔은 분홍색․빨간색․주홍색․보라색․흰색 등이 있고, 꽃 모양도 홑꽃․겹꽃이 있다
청중석 교포들은 너무나 감격하여 모두 눈물을 흘리고 노래가 끝난후 교포들은 그를 불들고 고향생각에 나라 없는 서러움에 울고 또울고 흰 치마 저고리가 눈물에 졌었다고 하는 노래가 봉선화다.
그후 1940년 초반 민족의 한의 노래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반일 사상의 노래라 하여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봉선화에는 많은 설화의 꽃의 유래등이 있으나 다음으로 미룬다.
*****글: 이 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