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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돈/ 김명인
은하수 추천 0 조회 45 17.07.27 08: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돈/ 김명인

 


한때 나는 대학 입학금을 마련 못해 사흘 밤낮을

꼬박 울며 지샌 적이 있다

비웃지 마라, 그땐 그게 절박했었다

그렇다. 두 형들이 포기한 대학을

끝까지 마쳤던 것은 돈에 대한

맹목의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선탄부로 가정교사로 마침내 내 대학이 끝이 났을 때

 

배운 것이야 무엇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모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선생이 되었다

이 나라에서 돈 버는 길이란 투기거나 사기라고

일깨워준 저 7,80년대의 경제를 지나와

내가 집칸이나 장만한 것은 그 길에

밝아서가 아니라 아내의 맞벌이 덕이었다

 

그러나 돈이 돈을 거둬들인다고 뒤늦게 한탄한 아내여

남편은 백면의 여전히 주변머리 없는 서생일 뿐

무슨 주제로 헐거운 돈을 만났겠는가

그대의 눈썰미가 마련한 방 한 칸 차지하고 난 뒤로는

자주 목이 말랐고 자꾸만 부끄러웠다

 

그렇게 한번도 널 풍족히 누릴 수 없었다 해도

돈이여, 어느새 너는 내 발목을 잡고 있지만

나는 제게서 철저히 배반당하는 꿈을 요즈음도 꾼다

너를 돈이라 말하면 네가 돈이겠느냐

그게 인생의 목표쯤은 아니라 해도

 


- 시집『따뜻한 적막』(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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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 이유는 사람과 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에 대한 것도 들여다보면 돈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거의 모든 문제는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최고의 가치는 ''이다. 국정과제의 최대목표를 일자리복지’ ‘기본소득이라 말하고 에둘러 '경제'로 표현하지만 그 중심에 돈이 있다. '경제'란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뜻의 '經世濟民'이 줄어든 말이다. 일본 막부시대에 처음 들어온 영어 'Economy'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심하다가 중국의 고전에서 이 말을 찾아 '經濟'로 요약했다. 장자의 '재물론(齋物論)'에도 나오는 '경세제민'은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 세계경제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진단하는 학자들이 많다.


  경제가 살아야 정치가 살고, 정치가 잘돼야 경제가 좋아진다는 진리는 동서고금의 금과옥조이다. 경제에는 기업경제나 국가경제도 있지만 가계경제 즉 민생경제가 치세의 핵심인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영향을 받은 오늘날 주류 경제학은 경세제민보다는 시장의 결정이 곧 정의라며 시장논리만을 강조해왔다. 지난 10년간은 더욱 그러했다. ‘이 나라에서 돈 버는 길이란 투기거나 사기라고 일깨워준 저 7,80년대의 경제를 지나와지금까지 돈을 벌려고 박이 터지도록 경쟁해야만 했다. 집칸이나 장만하고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은 열심히 일한 덕분이고 돈 쓸 곳에 돈을 쓰지 않았거나 내핍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생도 돈 걱정 안하고 탱자탱자 편히 살 수 있을 정도인가.


  자녀교육비, 주거비, 의료비, 노후자금 등 생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돈 먹는 하마의 입을 누가 다물게 할 것인가? 매양 '너는 내 발목을 잡고 있'고 누구든 '그게 인생의 목표쯤은 아니라 해도' 어쩔 것인가. 늘 돈이 문제이고 돈에 얽매여 살지만 죽을 때까지 돈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삶이란 얼마나 비루한가. 가뜩이나 불공정과 반칙의 만연으로 돈이 한곳에 몰려 제대로 돌지 않고 고여 있는데, 가계경제에서마저 활로를 터지 못한다면 돈에 철저히 배반당하는신세를 면키 어렵다.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돈인 금전만능 세상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조금이라도 낮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고 돈의 위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돈이면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고, 돈으로써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런 나라의 국민들은 당연히 돈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돈을 모으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하려고 한다. 하지만 돈을 가지고도 할 수 없는 신나고 가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면 돈에 대한 탐욕도 줄어들 것이다. 그 토양을 위해 먼저 공정하고 공평한 법과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의 분배를 정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민주정부에서 해야 할 역할임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부자는 좀 더 겸손해지고 가난한 자들은 보다 더 당당해져야 한다. 부자증세와 기본소득 보장은 그 패러다임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조치이다. 그래야 극도의 탐욕과 이기심이 종말을 고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될 것이다. 결국은 돈이 문제인데 결국 돈은 또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권순진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박은옥,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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