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교회, 거룩함으로의 초청“(2)
(벧전 2:4-5)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함 안으로 초청받았습니다.
예배의 회복성을 회복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제사장들인 목회자들은 둠밈과 우림을 소유해야 합니다. 신명기 33:8에 모세가 레위자손에게 한 축복기도 중에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예복에 달려 있는 것인데 이것으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물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경건한 자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경건이 곧 거룩입니다.
목회자라도 경건하지 못하고 거룩성이 결여되면 하나님과의 채널인 둠밈과 우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 심지어 어린 아이들이라도 둠밈과 우림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 특징은 정결함과 거룩함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라놓은 제물 사이로 횃불이 지나간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갈라놓을 때에만 하나님의 불이 우리를 깨끗케 하고,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교회회복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불로만 교회를 정결케,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제 본격적인 불세례가 임할 것입니다. 이 불세례가 횃불이 되어 번질 것입니다. 이 불로 정결케 된 백성들은 주님만을 사모하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거룩한 신부의 군대, 주님의 군대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이 주님의 군대가 찬미의 회복, 예배의 회복, 은사의 회복, 교회의 회복을 주도하게 되고 열방을 치유하며 온 세계를 추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거룩함입니다.
그때에는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가 하늘나라의 예배와 흡사할 것입니다. 그 예배의 특징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입니다.
계시록 4:8에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노래하며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자에게 경배하고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전체를 굴복시키는 것만이 참된 경배입니다. 그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앞에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만이 참 경배가 될 것입니다.
거룩한 예배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임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이 하나님의 보좌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6장에서 이것을 묘사하였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며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실 때 그의 성전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에 의해 무장해제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게 무장해제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앞에 완전히 굴복되어야만 합니다. 이는 제물이 완전히 태워지고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기 전에도, 예배드리는 중에도 예배드리고 난 후에도 뻣뻣이 살아있다면 참 예배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서 12:1애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네팔 17세 소년, 버팔로 제사). 죽어야만 합니다.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박살나야만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이 굴복되어야만 합니다.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더 내려 놓아도 안됩니다. 또 내려 놓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너져 내려야만 합니다! 굴복되어야만 합니다!
거룩함은 굴복한 자들에게 전이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요한일서 1:5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가짜는 드러날 것입니다. 정품이 아닌 것은 불살라질 것입니다. 어두움은 빛이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자, 진실되지 못한 목자, 거짓목자, 기회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관여치 않으실 것입니다(늑대 - 기회주의자, 거짓 목자).
이제 육체와 사망에 속한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법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거룩한 삶의 방법입니다. 만물 중에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거룩해지고 생각까지도 다스리고 하나님께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제 곧 의의 태양이신 주님이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때는 거룩하지 못한 것들은 다 불살라질 것입니다. 그때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여전히 거룩함으로 옷 입지 않는 자들은 주의 종들까지도 설마하다가 심판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환난 때에도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신 어린 영과 함께 있는 자들, 곧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적 그리스도, 짐승의 세력을 이길 것입니다(계 17:14).
그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주님의 거룩한 신부들이 되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계 19:8-9).
거룩함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한국의 4대 그룹의 임원이 되면 50-70여 가지 혜택이 있답니다. 그런데 입사한 지 평균 22년 정도되어 임원으로 승진한 확률은 1-2%입니다. 모든 자격에서도 임원으로서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답니다.
새 정부의 장관이나 대통령으로서 도덕성도 수준이 있습니다. 평 국회의원 때는 그냥 넘어갔던 사안들이 장관으로 올라가면 청문회에서 문제를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 부름받은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세상의 기준과는 비교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차 보험 주소 이전 . L.A는 더욱 흑암이 깊은 곳이니 더 높은 수준의 거룩성을 요구하신다).
세상의 어떤 위치나 지도자 역할에 청렴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할찌라도 거룩성이라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덕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은 세상에 대하여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 직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교회가 사회에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성의 수준 이전에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도덕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거룩성 회복을 위한 회개운동, 교회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백성들보다 더욱 엄격한 의식을 통해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 레위기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으로서의 위임식을 거행하실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아론에게는 속옷과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덧입히고 띠를 띄우고 흉배를 붙이고 흉배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였는데 곧 거룩한 관이었습니다. 그 아들들도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띄우고 관을 씌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칠일동안 밤낮으로 회막 문에 거하여 죄를 씻음 받았습니다. 그후에야 그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거룩함의 회복이 우리에게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정결케 하고 태우는 하나님의 불을 우리에게 보내시기를 기도합시다. 불세례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마 3:11). 불에 완전히 태워져야 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께 완전히 태워지고 난 후에 새롭게 빚어지게 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 자신과 교회가 하나님의 그 성품에 참예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니라.”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