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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금강송 / 정수자
은하수 추천 0 조회 51 17.09.25 04: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금강송 / 정수자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 같은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 같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



- 시조집 허공우물(천년의시작,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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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야에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한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 곁에서 태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소나무와는 불가분의 연관을 맺으며 우리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유럽이 자작나무, 일본이 편백나무 문화라 한다면 우리나라는 단연 소나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듯 각 민족에게는 오랜 세월과 운명을 함께 해온 나무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소나무에는 물질적 특성 외에도 사람들의 느낌에 따라 붙여진 이름도 있다. 이를테면 곧다는 의미의 정목(貞木), 다른 나무에 비해 뛰어나다고 해서 출중목(出衆木), 모든 나무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백장목(百長木), 군자의 기상에 빗댄 이름인 군자목(君子木) 등이다.

 

 소나무는 또 그 형상에 따라 구불텅 소나무, 처진 소나무, 곧은 소나무 등으로도 나뉘는데 이 시에서는 뼛속까지 곧게 선 서슬 푸른 직립소나무인 금강송을 노래하였다. ‘붉은 저! 금강 직필들은 절개와 기개를 절로 연상케 한다. 성삼문이 세조의 사약을 받기 전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낙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고 지어 읊은 노래는 절개와 충절의 상징으로서 소나무를 빗댄 대표적인 시조로 꼽힌다. 이처럼 예로부터 문학작품에 있어서 소나무는 절개 절의 지조 의지 충직으로 유교적 덕목을 상징하는 나무로 그려졌다. 정수자 시인의 금강송도 성삼문의 웅혼한 남성적 기개를 이어받은 듯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를 경배하고 있다.

 

 흔히 청청한 소나무와 짝을 이루는 소재로 눈이나 서리가 등장하여 이들은 순간적으로 세상을 뒤덮어 현혹하는 불의한 세력이거나 변화무쌍한 현실을 상징한다.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이 거듭되면 소나무는 팔을 다 잘라낸 후’ ‘곁을 두지 않은 채 위로만 솟구친다. 가지에 눈이 쌓여 자꾸 꺾이다보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지를 뻗는 기능은 둔화되고 위로만 자라게 되는 것이다. 강직한 품새로 허공을 움찔 떨리게 하는 금강 직필이 되었다. 그 위용으로 소나무의 제왕이 되었고 자연스레 궁궐의 대들보로 차출된 것이다. 추위에 자라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나이테가 조밀하고 송진 함량이 많아 오랜 세월에도 잘 썩지 않고 휘거나 갈라지지 않으며 단단하여 집짓는 재목으로는 으뜸으로 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금강송 하면 울진 소광리를 떠올리기 쉬운데 경북 봉화에도 그 못지않은 금강송 군락지가 있다. 봉화에서는 춘양목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는 충청북도 북부와 경상북도 북부, 강원도에서 벌목한 금강송을 봉화 춘양역에 집결하여 전국으로 내다팔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며칠 전 경북관광공사와 봉화군이 마련한 봉화 춘양목팸투어에 동참하여 이 지역을 다녀왔다. 봉화는 여러 번 다녀왔어도 금강송 군락지 탐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서 출발한 금강소나무숲길은 약 5외씨버선길의 한 구간이다. 춘양면 서벽리의 군락지 트래킹은 2시간 정도의 코스다.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금강 직필들에 깊게 스며들면서 숲이 이렇게 섹시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여행하면서 그 유명한 봉화송이를 듬뿍 넣어 향이 짙게 밴 송이전골도 맛보고 백여 년 전 금강송으로 지은 <소강고택> 사랑방에서의 우아한 하룻밤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봉화가 전국에서 정자가 가장 많은 고장인 이유에는 비교적 손쉽게 춘양목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직 원장도 부임하지 않았고 정식 개원을 앞두고 있는 상태지만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세계 유일의 산림종자저장시설 시드볼트, 연구시설, 다양한 테마정원, 백두대간의 상징적 동물인 백두산호랑이 숲을 갖추어 금강송군락지와 연계한 이 지역 관광에 크게 기여하리라 전망된다. 정식 개관되면 친환경전기버스 트램을 이용해 꼼꼼하게 다시 둘러볼 참이다.



권순진


Wolfgang Amadeus 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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