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
(장석영)
서울 중앙지법은 엊그제(8월25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에게 뇌물공여죄를 위반했다고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필자가 법률가가 아니어서 타인들의 논평만 듣고 있으려 했더니 주일에 만난 교우들이 학자로서의 견해를 피력하라고 다그친다. 이에 양심을 걸고 비교적 상식선에서 이번 법원 판결에 납득이 안 되는 면들을 찾아봤다.
이번 사건에서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검찰의 기소는 뇌물공여죄 등 다섯가지가 된다. 그 가운데 법원은 판결을 통해 K스포와 미르재단 출연금은 무죄로 봤으나 승마협회나 영재 센터에 지원한 돈은 뇌물이라고 보았다.필자가 보기엔 이 혐의를 검찰의 기소대로 인정한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전체적인 문제점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부회장을 유죄로 판결해야 이와 연관된 박근혜 대통령도 유죄로 인정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내린 결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유죄로 본 근거가 정황상으로 "묵시적 청탁'에 의한 뇌물공여를 한 것이라고 봤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부회장이 승마협회나 영재센터 등에 수십억원의 자금을 출연한 것은 뇌물공여 행위이고, 그것은 자신의 승계를 청탁했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입증할만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비약이 또 어디 있는가? 전문가들의 분석도 그렇고 ,그간의 이 부회장이나 박 대통령의 진술과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번 판결은 그래서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2심인 고법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다툼이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죄나 집행유예가 될 수도 있을 것이 예상되지만, 이른바 '촛불정부'의 서슬이 시퍼런 이상 그 예상이 틀릴 수도 있다고 본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많은 국민들로부터 아주 심한 저항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법리나 상식에서 벗어난 것일까?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는 검찰의 기소 의견은 이 부회장이 회장직 승계를 위해 박 대통령에게 청탁하고 회사 돈을 출연한 것으로, 이는 뇌물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저 그럴 수 있다는 이른바 관심법에 의한 확신이라는 것이다. 이를 법원이 판결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그런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났지만 짧은 시간이고, 그런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검찰이나 법원은 증거는 없지만 상황적으로 보아 충분히 그런 의사가 오고갔고, 돈도 그래서 전달 됐으며, 이 돈이 결국 최서원에게 전달됐고, 정유라의 말을 구입하는데 사용됐다고 보는 것이다.이게 납득이 안 가는 것이다.
두번째는 삼성이 승계 작업중이었고, 그 사실을 박 대통령이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아 직접적 증거는 없지만,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다는 '묵시적 청탁'을 선고의 근거로 댔다는 점이다. 법전 어디에도 없는 근거라는 것이 전문기들의 분석이다. 특히 법리상 이 부회장이 청탁을 했느냐가 문제지, 어째서 박 대통령이 삼성의 승계문제를 개괄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하는 점이다.
당시 이 부회장의 승계문제는 각 신문방송에 연일 보도 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국민들도 거의 모두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 이 회장이 죄가 된다고 한 것이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논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세번째는 어째서 삼성그룹의 회장직 승계문제에 대통령을 끌어넣어 마치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 부회장이 승계할 수 있었다는 논리를 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도 '직접 증거'가 없자, 이른바 듣도 보도 못한 '정황 증거'라는 말도 나왔나 하는 것이다. 어떤 주식회사든지 대표의 선임은 주주의 권한이다. 삼성 회장의 승계 여부는 삼성 주주들의 몫이고 권한이다.
더구나 삼성의 주식은 소유주의 반수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간여할 수 있는가? 말이 되지 않는다.그러니 삼성이 박대통령에게 청탁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이 부회장이 '청탁한 일이 없다'는 주장이 믿음이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를 무시하고 대통령이 승계문제를 알고 있었고, 그 때 이 부회장과 만났기 때문에 정황상으로 청탁한 것이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한 모양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네번째는 법원은 박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회장직 승계를 도와 줄테니 (도울 수가 전혀 없는 상황인데도) 최서원씨에게 돈을 주라고 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것도 고의적으로 그랬다고 본 모양이다. 하지만 삼성이 돈을 제공한 것은 승마협회지 최서원 개인이 아니었다. 독일에서 말을 구입한 것도 여러 마리이고 정유라 혼자만 말을 사주라고 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이 비인기 종목인 승마를 육성해 국위를 선양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그게 최서원을 지원하라거나 아니면 정유라를 지원하라고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이 행정행위로서 하는 지시를 모두 이런 식으로 따지면 어떻게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재계에 동계올림픽을 지원하라고 한 말도 모두 국정농단이고 뇌물죄가 된다는 말인가.
다섯번째는 뇌물죄는 공무원에게 직무와 관련해 이득의 제공이 있어야 성립된다고 알고 있다. 공무원이 직접 이득을 보거나 아니면 이 이득을 제 3자가 보아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삼성이 승마협회에 지급한 돈은 공무원이 이득을 보게한 것이라고 판단한 점이 납득할 수 없다. 공무원은 대통령인데 그렇다면 대통령이 삼성에서 직접 돈을 받았는가. 아니다. 한 푼도 안 받았다.
아니면 최서원을 통해 돈을 받았다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런 사실이 이번 재판과정에서 모두 드러나지 않았는가. 물론 삼성측에서 최서원씨에게 돈을 주라고 한 사실도 없다. 그런데 법원은 검찰의 주장대로 이 부회장이나 대통령이 삼성에서 돈을 지원한 사실을 사전및 사후에 알았다고 본 모양이다.이 모두 오로지 정황상이고 직접적 증거는 대지 못했다. 돈 거래가 이뤄졌다면 그건 삼성측과 최씨간 거래지 대통령은 아니다.
또한 최씨는 공무원이 아니다. 사인간의 돈 거래가 어찌 공무원의 직무관련 범죄인 뇌물공여죄가 성립되는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건 순전히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수수 죄로 엮기위한 꼼수가 아닌가 한다.이럴 수는 없다. 이 부회장의 중형 판결도 그렇다. 뇌물 공여자라는 이 부회장이 중형이면 수뢰자라는 대통령은 그 보다 더 형량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게 말이 되는가.
여섯번째는 판결문에서 사용한 용어들이 완전 잘못됐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에게 중형을 내린 이유가 삼성이란 재벌과 대통령이라는 권력이 '정경유착'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정경유착'이란 용어는 필자가 알기로는 법률용어는 아니다. 그것은 언론이 만든 용어다. 그것도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낸 것이다.
대통령 탄핵에서 사용한 '국정농단'이란 말도 언론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용어들을 범죄 사실이나 판결문에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혹시 이 말을 쓰려면 "언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런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법관들이 자신들의 판결을 어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래선 안 된다.전문가들은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고 "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고 한다. 이 주장이 옳은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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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님의 페북 글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