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김학명
날씨는 맑고 청명한데 귀전에 스치는 바람이 차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이 길은 시내를 관통하는 무심천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작은 길로 시민들의 공원일 뿐아니라 체력 단련장 이기도 하다. 자전거길 옆에는 동네 체육시설도 있어 단순한 체력단련도 함께 할 수 있다. 날씨 탓인지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아주 적다. 추위가 심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즐기는데 그 모습이 늘 보기 좋다. 하천을 따라 천천히 달린다. 페달을 밟으며 주위를 돌아보면 몸도 마음도 상쾌해 진다. 저만치 가니 지난 봄 꽃을 피우고 싱그런 향기를 나눠주었던 아카시아 숲이 잎을 지우고 나무들만이 덩그렇게 남아 쓸쓸히 다가왔다 스쳐 지나간다. 길 옆 넓은 하천의 갈대 숲에 이르렀다. 자전거를 세우고 그 옆에 서서 갈대를 바라본다. 커다란 키에 수염을 달고 머리를 숙여 세상을 관조하는 모습이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신선같아 보인다. 보면 볼수록 그 표정이 정중하고 고요하며 경건하다. 마치 겨울을 한 몸으로 표현하고 서있는 듯 하다.
다시 저전거를 달려 동네체육시설이 있는 벚나무 아래에 도착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이 시리도록 밝고 진한 코발트색 하늘이 보이고 하얀 구름이 나목의 빈 가지에 걸려있다. 문득 줄을 선 나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꿈이고 희망이었으며 한몸이었던 잎새를 어느 순간 털어내고 비워낸 모습을 보면 진한 연민의 정을 감출 수 없다. 땅끝 깊은 곳에서 애써 영양분을 뽑아 올려 봄 여름 가을 3계절 내내 키우고 살찌우고 단장했던 그 잎새들을 어떻게 비워낼 수 있었을까. 작은 것 무엇 하나 비우기가 쉽지 않은 우리네 삶을 생각하면 비웠다는 그 마음에 생각이 무거워 진다. 나무이기에 당연하다고 쉽게 말하면 안되겠지. 잎을 떨구기전 나무도 온몸이 떨리는 고통과 애절한 몸부림을 감내하지 않았을까.
나와 나무 그림자가 하천을 향하여 길게 쏟아져 내린다.
나무 아래 의자에 앉으면 늘 시원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따스한 햇살이 나를 비추니 흐뭇함을 넘어 나목들이 멋스럽게 다가온다. 여름엔 잎새를 큼직하게 키워 항시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볕을 모두 가려 주었기에
내 그림자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추운날엔 그 따스한 볕을 온전히 내어준다. 고맙게도 이 또한 모든것을 비워낸 나목의 사랑과 배려 때문이 아닐까.
어제는 맑고 화창하던 날씨가 오늘은 차츰 흐려지더니 눈이 내린다.
길게 줄을 선 나목위에 흰 꽃이 내려 앉는다. 가을 단풍으로 알록달록한 잎새를 떠나보낸 후 나목으로선 처음 맞는 축복의 꽃이다. 이는 모든걸 떨구어낸 나무들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하늘의 마음이며 길게 뻗은 가지들만 남아 조금은 쓸쓸해진 모습을 보듬는 감성의 응원이 다. 또 봄에 꽃을 피워내야 하는 그들의 마음에 꽃의 화신을 보낸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떨어지는 눈을 위로와 격려로 받으며 머지않아 눈꽃같은 예쁜 꽃을 피우리라는 다짐을 한다. 또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건강한 봄을 맞도록 힘을 기른다.
소복히 내리는 축복같은 눈과 하얀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같은 건 벚나무의 바램이 눈꽃을 통하여 서로의 의미을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길 옆에 늘어선 나목들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생김새가 같은 듯 제각기 다르다. 가지를 수평으로 길게 뻗어 옆의 나무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가 하면 위로 뻗은 다음 다시 아래로 내려와 휘어져 돌아가는 생동감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솟아 오르고 꺽고 구불구불 비틀며 하늘을 향한 열정을 토해내는 모습이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몸의 표현이다. 집에 돌아올 아이를 동네 앞에서 이쪽 저쪽 쳐다보며 가다리는 어머니 같이 그런 마음으로 나목은 멀리 남쪽을 내다보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봄이 오면 따스한 봄볕을 받고 양지쪽에 보라색 봄까치꽃이 피기 시작하고 민들레꽃이 노란 얼굴을 내밀겠지.
곧 눈꽃 같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