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김경인
모든 것을 잊고 그는 읽기 시작했다. 김종삼 좋지? 좋아. 김춘수는? 그도 좋지. 봄이군. 전봉래도 전봉건도 다 좋아. 그는 담배를 물었다. 산등성이에 왜가리들이 하나둘 돌아와 앉았다. 산이 드문드문 지워지고 있다. 죽은 왜가리 소리가 들렸다. 미래의 소리 같군. 그러나 새들에게 영혼을 물을 수는 없어. 나도 알아. 한 단어와 다음 단어 사이에서 그는 잠시 숨을 멈춘다. 왜가리가 활짝 날개를 폈다 접었다. 그렇지만 새들에게 영혼은 없다고. 비유가 익숙한 세계에 그는 있다. 그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은 어쩐지 아름다워. 그래, 그렇지만 이제부터 물의 비유는 절대 쓰지 말자. 그래, 그래. 아무것도 잊어서는 안 돼. 정말 봄이라며? 응. 우리가 여기에 있지? 그래. 여기에 있지. 산으로부터 어스름이 몰려온다. 봄이군. 그가 울기 시작했다.
삼월
늙은 도공의 탄식처럼
깨지길 기다리는
항아리들처럼
일생의 이야기들 속에서 달린 발 빠른 말이
지나간 자리
백 년 동안의 흙먼지처럼
자화상을 기다리는 검은 프레임처럼
텅 빈 깡통속 홀로 반짝이는 은화처럼
내려앉은 햇살처럼
강 한가운데로 흘러온 노래의 조각배
검은 머리털로 덮어버린
흰 머리카락처럼
아침마다 무너지는 세계
담벼락 아래 깔린 비밀 위로
가벼이 떠오르는 민들레처럼
그 물음표처럼
점점 작아지는 휘파람처럼
분노와 슬픔으로 촘촘히 짠
주머니를 찢고 나오는
어리둥절한 돌멩이처럼
― 김경인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문학동네 / 2020)
김경인
2001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가 있다. 형평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창의융합교육원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