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29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일행에게 한 몇 가지 나라 걱정에 대해 한 좌파 논객이 인터넷 언론매체를 통해 비판했다. 김 추기경은 최근 우리 사회에 반미친북(反美親北)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북한의 인권 개선과 체제 변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좌파 논객은 “추기경의 발언이 현실을 호도할 뿐 아니라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김 추기경의 모습이 과대평가된 대목이 많다”고 주장했다.
기자가 아는 김 추기경은 누가 자기를 비판했다고 하면 벌컥 화를 내기보다는 빙그레 웃으며 “그래, 뭐라고 했대?”라고 물어볼 분이다. 하여 기자 또한 이 좌파 논객의 글에 대해 “감히 추기경의 권위에 도전하다니…”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글에 나타난 현실 인식의 문제점과 이번 사태의 의미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이 좌파 논객이 김 추기경의 발언 중 주로 문제삼은 것은 ‘반미친북’에 대한 우려이다. 그는 이 땅의 주류는 여전히 친미반북(親美反北)이기 때문에 반미운동은 지금보다 더 퍼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친미반북’과 ‘반미친북’ 중 어느 쪽이 많은지는 쉽게 계량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김 추기경의 우려대로 감정적 반미가 확산돼 가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다. 또한 좌파의 반미운동이 마치 ‘대등한 한미관계’와 ‘용미(用美)’를 목표로 하는 듯한 그의 발언도 과연 그런지 듣는 사람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북한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김 추기경의 이 부분 발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추기경의 인식에 공감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것까지 건드리는 것은 이롭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10년 넘게 굶주리는 가운데도 핵무기 개발에 국력을 온통 쏟아부으며 세계사의 대세인 개혁과 개방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북한 당국에 대해 그가 별로 말하지 않는 점에 비추어보면 적어도 전자(前者)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 그가 신주 단지 모시듯 하는 ‘민족’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의 머릿속, 또는 달나라와 같은 외계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북한 정권 담당자를 ‘민족’과 동일시하는 것인가.
사실 이번 사태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추기경에 대해 좌파 일각에서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미 상당히 됐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는 도움이 됐지만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된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도적 입장에서 국민에게 큰 호소력을 지닌 김 추기경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민족의 걸림돌’이 아니라 ‘좌파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이번 좌파 논객의 도발은 더 이상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을 대표하여 ‘총대’를 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의 발언이 갖는 무게와 호소력은 단순히 그의 지위에서 나오는 권위 때문이 아니다. 격변의 연속이었던 지난 몇 십 년 동안 그가 남다른 고뇌와 용기를 통해 보여준 통찰력와 예지(叡智)를 국민들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그를 비판하고 싶다면 적어도 그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지혜와 논리가 없이 단지 어설픈 정치적·이념적 목적에 사로잡힌채 김 추기경을 깎아 내리는 것이 가능한지 이 땅의 좌파들은 고민해볼 일이다.
(이선민 문화부 차장대우)
입력 : 2004.02.02 15:54 50' / 수정 : 2004.02.02 17:18 50'
첫댓글 좌익들은 자기들 주장에 반하면 누구라도 씹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