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수백 명의 산악인들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86m)를 오르기 위해 설치한 고정 로프를 잘라버린 것이 사실일까? 지난 27일(현지시간) 정상 도전 중에 팀원들이 잘려나간 로프를 발견했다고 네팔의 유명 탐사 지도자 니르말 님스(다이) 푸르자가 주장한 데 대해 반박과 재반박 등 파문이 번지고 있다고 아웃도어 전문 매체 기어 정키가 30일 보도했다.
같은 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다른 탐사 팀은 고정 로프를 이용해 정상에 도달했다고 밝혀 푸르자가 개인적 이득을 노리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의혹으로 연결됐다. 네팔 정부 역시 푸르자가 "유명세를 얻을 의도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며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푸르자는 29일 아침에 잘려나간 로프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탐사 회사 엘리트 엑스페드 소속 셰르파(산악 안내인)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하며 반박에 나섰다. 이어 다른 팀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푸르자 팀원들이 새로운 줄을 깔았던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잘려나간 로프를 보여주며 “그들은 날 거짓말쟁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잘려나간 로프 증거"라고 말했다.
그의 팀은 지난 26일 다른 탐사 업체 피크 프로모션으로부터 로프가 잘려나갔다는 말을 처음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피크 프로모션 팀은 사우스 서밋 아래 로프가 잘려나간 것을 보고 신고했을 때 주검 하나를 찾아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푸르자 팀은 피크 프로모션이 거기 있을 것이라고 알려준 바로 그 지점에서 로프가 잘려 버려진 것을 발견했다. 엘리트 엑스페드 소속 셰르파들은 약 40m 길이의 로프가 잘려 있었으며 산 아래로 던져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사우스 서밋과 이른바 발코니로 알려진 곳 사이에서 버려진 로프를 발견했다. 한 셰르파는 처음에는 문제의 로프가 바위에 의해 잘려나간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조금 더 살피더니 칼에 의해 잘려나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피크 프로모션 측은 기어 정키의 코멘트 표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푸르자가 지난 27일 동영상을 처음 공개하자 그의 주장에 의심을 품는 동료 산악인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많은 이들이 왜 누군가 많은 탐사업체들이 공유하는 로프를 잘라 괴롭히려 하겠느냐고 궁금해 했다. 서밋 포스의 응가 텐진 셰르파는 “누구도 그러지 않을 것, 산에서 고정된 줄을 의도적으로 자르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누군가 그랬다면, 정부는 위중한 벌칙을 부과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님스가 증거도 없이 누군가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에게 상당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푸르자가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 처음은 아니다. 현지 일간 히말라얀 타임스에 따르면 지난주 네팔항공청은 그가 이달 초 에베레스트에서 헬리콥터를 불법적으로 불렀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 그에게 스카이다이빙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번에 푸르자가 에베레스트에서의 반칙 행위에 대해 요란하게 지적한 데 대해 네팔 관광부 관리들도 재빨리 대응했다.네팔 탐사업체연맹의 담베르 파라줄리 위원장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긴급 회의를 열어 "님스의 주장은 근거 없으며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 위해 술수를 쓴 것처럼 보인다”고 단언했다.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네팔 구르카 용병 출신으로 영국군 특수부대 요원으로도 활약했던 푸르자도 당국의 조사 계획을 반겼다. "난 로프가 잘려나간 경위를 알아보려는 관광부의 조사 방침을 환영하며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내길 바란다. 난 얘기를 지어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5월이면 늘 세계 최고봉을 오르려는 수백 명의 산악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날씨가 좋은 날은 손으로 꼽을 만해서 그런 날이면 많은 탐사업체들이 동시에 자신들의 팀을 올려보낸다. 이에 따라 같은 고정 로프를 따라 장사진을 이루는 병목 현상이 벌어진다.
푸르자는 일주일 전에는 중국 티베트 지역에 있는 시샤팡마(8012m)에서 사흘 낮밤을 고생한 끝에 7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7일 눈사태에 목숨을 잃은 미국 여성 산악인 안나 구투(33)와 그의 산악 안내인 밍마르 셰르파(27)의 주검을 산 아래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구조 작업에 함께 했던 3명이 고산병으로 앓아 눕고, 둘은 산소 호흡기를 갖다대야 했고, 여섯 번째 인원은 다른 임무로 에베레스트에 보내졌다.
구투와 밍마르의 주검은 지난 25일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눈사태에 함께 희생된 다른 둘의 시신은 여전히 산의 어느 슬로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샤팡마는 네팔 국경에서 5km정도 떨어져 있으며,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좌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 영토 안에 온전히 자리한 봉우리다.
한편 지난주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고산병 증상을 보여 구출됐던 인도 등반객 반실랄(47)이 카트만두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27일 세상을 떠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날 전했다. 이로써 올 봄 시즌 세계 최고봉을 오르다 숨진 이의 숫자는 5명으로 늘었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반실랄은 정상을 밟지도 못한 채 실신해 베이스캠프로 옮겨진 뒤 수도로 이송됐다.
앞서 네팔 산악인 비노드 바부 바스타코티(37)가 이른바 데스 존에서 지난주 참변을 당했다. 정상을 등정하고 하산했는데 산소 부족으로 운명했다. 영국인 남성과 두 셰르파도 지난주 데스 존에서 실종됐다.
히말라야의 8000m 이상 고봉 14좌 가운데 8개를 보유한 네팔은 관광 수입이 정부 재정의 커다란 몫을 차지하며 현지 주민들은 산을 찾는 외국인들이 수입과 일자리를 제공한다. 네팔 정부는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를 일인당 1만 1000달러를 받고 내주는데 31일 막을 내리는 올 봄 시즌에만 421명이 허가를 받았다. 현지 관리들은 허가가 따로 필요 없는 현지 셰르파까지 포함해 600명가량이 올 봄 시즌 에베레스트를 발 아래 뒀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1953년 5월 29일 초등에 성공한 뒤 지금까지 7000명가량이 뒤를 따랐으며, 335명이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