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재를 내려와
봄방학 끝나는 이월 마지막 날이었다. 봄이 오는 길목 새벽과 한낮 일교차가 무척 큰 날씨다. 빈 배낭을 메고 산행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높고 먼 산으로 오르진 못해도 낮은 산기슭은 아직 다닐 만하다. 동정동에서 북면 온천장으로 넘나드는 녹색버스를 탔다. 굴현고개 너머 외감마을 입구에서 내려 동구 밖을 지났다. 달천계곡으로 들지 않고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으로 올랐다.
단감나무과수원을 지나니 낙엽활엽수가 우거진 숲이 나타났다. 여러 잡목들이 섞여 자라는 가운데 오리나무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른 봄이면 그 오리나무 가지에선 새 부리 같은 순을 달고 나왔다. 가지마다 새순이 나오면서 파릇한 기운이 감도는 잎눈들이었다. 가랑잎이 쌓여 삭은 부엽토 오솔길을 걸었다. 폭신한 촉감이 카펫을 밟고 지나는 기분이었다. 편백나무조림 구역도 지났다.
양미재를 앞둔 너럭바위는 그곳을 지날 때면 언제나 나의 쉼터였다. 여름이면 산비탈을 오르면 등줄기 땀이 흘렀다만 봄이 오는 길목이라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너럭바위에 앉아 쉬면서 몇몇 지인에게 내가 가는 행선지를 알려주었다. 양미재를 올라 엉겅퀴를 좀 캐 올 거라고는 동선을 알려주었다. 이어 양미재 너머 엉겅퀴가 자라는 곳으로 바로 가질 않고 구고사로 내려갔다.
구고사 절간으로 드니 법당에선 스님의 독경과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으고 약수터 샘물을 한 바가지 받아 마셨다. 범종각 귀퉁이 매달린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없는 날이니 풍경은 흔들림 없이 고요히 멈추어 있었다. 호주머니 휴대폰을 꺼내 범종각 풍경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범종각 추녀와 풍경 너로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뜬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절간에서 되돌아 나와 아까 그냥 스쳐 지난 양미재 언덕으로 향했다. 그곳은 함안에서 제법 너른 집안인 진양 강 씨 선산이었다. 볕이 바른 산언덕에 무덤이 몇 기 있는 곳이었다. 그 자리엔 이른 봄이면 늘 엉겅퀴가 파릇하게 돋아났다. 나는 그걸 채집해 끓는 물에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어왔다. 밥반찬도 되었지만 곡차 안주로도 좋았다. 가시가 있지만 삶으면 숨이 죽어 괜찮았다.
예년처럼 기대를 안고 양미재 진양 강 씨 선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성묘 철이 지났음에도 선산 들머리부터 인적이 보였다, 아예 호미가 아닌 괭이로 잔디를 파헤친 구덩이가 보였다. 아뿔싸! 내가 뒤늦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산의 후손이 아닌 전문 약초꾼이 선행주자로 다녀간 듯했다. 봉분 가까운 곳까지 새순으로 돋아나는 엉겅퀴를 캐느라 잔디를 마구 헤집어 놓았더랬다.
구덩이 흙이 채 마르지 않음으로 미루어 엊그제 다녀간 듯했다. 누군지 몰라도 내년에 돋아날 씨앗 그루도 없이 엉겅퀴를 모조리 캐 감이 씁쓸했다. 나는 헛걸음을 하고 되돌아 나오면서 참나무둥치에서 삭은 영지와 말굽버섯을 몇 개 찾아냈다. 양미재를 넘어 외감마을로 가는 숲길로 들었다.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 비탈길을 걸어 내렸다. 남해고속도로 터널 곁으로 나가니 외감이었다.
마을 앞 국수집에 점심 요기를 했다. 식후 구부정한 마을 앞 농로를 따라 걸었다. 군데군데 비닐하우스에서는 미나리를 키우고 있었다. 논으로 드는 수로엔 맑은 물이 흘렀다. 수로에 절로 자라는 돌미나리가 겨울을 나고 있었다. 추위를 건너오면서 이파리 끄트머리는 살짝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신발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 돌미나리를 걷어 모았다. 검불도 같이 따라 붙었다.
수로에서 채집한 검불과 섞인 돌미나리를 볕바른 농로에 앉아 가렸다. 땅속에 든 줄기는 하얗고, 물속에 잠긴 줄기는 파릇했다. 검불을 가린 돌미나리는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헹구었다. 오후에 기온이 올라서인지 손이 시린 줄 몰랐다. 가리고 헹군 돌미나리는 양이 제법 되었다. 돌미나리를 배낭에 채워 담고 찻길로 나갔다. 얼마 후 온천장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녹색버스가 나타났다. 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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