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만나는 숱한 풍경 중에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언제 또 그 같은 풍경을 만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물며 이른 아침 산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구름 속에 해가 떠 있다던가, 아이를 업은 채 노을 지는 서녁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처럼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을 달리는 차 속에서 본다면 아니 본만 못하다고 할 만큼 속절없고 아쉽습니다. 그런데 가끔 사진을 찍지 않아서 더 큰 감동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어느 날, '낙동강 다큐멘터리' 촬영의 일환으로 청도 운문사를 찾았습니다. 270여 명의 여승이 불법을 닦는 승가대학이자, 나라에서 가장 큰 비구니 도량답게 초입부터 경내에 이르기까지 흐트러짐없이 단아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 풍경에 취해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다가 만세루 앞에 이르러 카메라를 내려 놓고 다리쉼을 할 때였습니다.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만세루 앞 대웅보전을 향해 삼삼오오 걸음을 옮기는 광경이 꿈인 듯 눈앞에 펼쳐지기에 허겁지겁 카메라를 들었다가 한 스님으로부터 "사진 찍으면 안 됩니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처럼 카메라를 들이댔으면 그러실까 싶어 카메라를 내려놓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이런 광경을 촬영할 수 있을까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 한 장도 찍지 못했습니다.
텅 빈 마당을 보며 어떻게든 사진을 남기지 못한 내 자신을 책망할 때였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한 스님이 빙긋 웃으며 말을 건네셨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스님은 속세를 떠나 절에서 수행하고 불법을 닦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얼굴이 뜻하지 않은 사진에 담겨 사사로운 공간에 떠다닐 것을 염려하기에 부탁드린 것입니다. 약속을 지켜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런 뒤 대웅보전으로 발걸음을 총총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곧 예불이 시작되었지요.
수많은 스님이 한목소리로 불경을 외는 소리는 대웅보전 문살을 넘어 내 마음에 큰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그 경건하고 웅장한 울림은 나를 눈물짓게 했습니다. 더불어, 때로는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는 것이 사진을 촬영하여 얻는 것보다 더 큰 감동과 향기로운 추억을 남긴다는 사실도 마음에 새겼습니다.
- 임 재천 님 / 다큐멘터리 사진가 -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스스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채근담)
(강헌 선집 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