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줄어도 어린이는 농부다>
- 양지마을 신문 여름호에 실을 글이에요.
맑은샘학교에선 텃밭 농사 공부가 무척 중요하다 텃밭 농사를 통해 생명의 귀함을 절로 알 수 있고 더불어 일하며 수학 공부, 과학 공부를 절로 이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까진 세 곳의 텃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꽤 크게 농사를 지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점점 과천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게 되며 그 가운데 한 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또 한 곳의 땅주인께서 더는 땅을 빌려줄 수 없다는 말씀을 해오셨다. 긴 시간 돈을 받지 않고 땅을 빌려주셨기에 고마운 마음이 컸지만 당장 텃밭 농사를 지을 땅이 필요했다. 학교 옆 땅을 급하게 텃밭으로 만들고 마을 주민분께서 농사짓고 있는 땅을 조금이나마 얻어 작은 텃밭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텃밭은 두 곳이 되었지만 크게는 많이 줄어든 것이다.
텃밭 크기는 줄었지만 해야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 농부들은 머리와 몸에 남아있는 농사의 지혜가 다르기에, 봄이 되면 늘 첫 마음을 되짚으며 한 해 농사 채비를 한다. 모종을 내고, 물을 주고 들풀(잡초)을 잡아줘야 한다. 텃밭은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이지만 들풀의 기운까지 가득하다면 안타깝게도 우리가 가꿔야 할 작물들은 잘 자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맑은샘학교를 다닌 어린이들은 “들풀도 생명인데 뽑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며 되묻는다. 그래, 훌륭한 질문이지. 못난 어른의 속마음 한 켠으로는 ‘풀 뽑기 싫어서 그런거 아니야?!’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어느 생명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했던 선생의 처지에서는 어린이 마음에 와닿을 수 있도록 잘 이야기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이다. 맞다.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거늘. 또 한 번 어린이들에게 배운다. 다만 텃밭 작물을 위해 뽑거나 잡아야 하는 풀과 벌레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선생들의 가르침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풀과 벌레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결국은 어린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타협점이 아닐까 싶다.
장마철이 되기 전까지, 이번 여름은 유난히 가물었다. 우리처럼 작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도 가뭄에 마음이 졸이는데, 농사를 직업으로 삼는 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특히 이번 여름은 산불도 곳곳에서 났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는 우리도 힘든 일을 하지만 더 힘든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때때로 알려주고 있다. 물조리개에 물을 담고 낑낑거리며 텃밭으로 향하는 건 어린이들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 더구나 무척 가물었으니 땅도 목이 많이 마를 터. 한 번만 물을 주기엔 땅도, 작물도 모두 힘든 상황이라 여러 번 물을 주면 어린이들까지 덩달아 힘들어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선생이 나서서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더불어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힘든 일을 했으면 알맞은 보상도 있어야 하는 법. 힘들게 일하고 온 어린이들에게는 얼음과자(아이스크림)와 시원한 매실차가 기다리고 있다. 고된 일을 한 번에 잊을 순 없겠지만, 힘들게 일한 것이 가치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일하고 난 뒤에 어린이들과 수다를 떨며 그동안 가물어서 나라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해주었다. 농사를 지으며 힘들었던 농부들, 말라죽은 작물들, 산불로 타버린 숲과 목숨을 잃어버린 ‘생명’들 말이다.
올해 작지만 우리가 해낼 수 있는만큼 애써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온전히 우리 땅이 아니기에 앞으로 텃밭이 얼마나 줄어들지, 아예 할 수 있는 공부인지 뚜렷하지 않다. 그래도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를 보며 같은 생명이라 여기는 우리 어린이들은, 생명의 귀함을 잘 알고 있는 멋진 농부임에 틀림없다. 텃밭이 크건, 작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