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그림...
이 그림을 우연히 바라보며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돌이 다듬어지지 않고, 모난 상태로 그대로 둔다면... 아무리 밀어도
땅(세상, 마귀)의 중력과 마찰력이
꽉 잡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전진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하여, 모난 부분(육)을 다듬어야 중력과 마찰을 최대한 피해갑니다.
이것이 3차원 물질세계의 진리입니다.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붙은 모난 부분은 무조건 다듬어져야 합니다.
나의 육적인 너저분한 것을 그대로 두면 결코 전진하지 못합니다.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전진할 수밖에 없는 영적인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다듬고)
자기 십자가를 직접 지고 따르라 하신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인 없는 믿음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원받기 위한, 절대 불변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육을 부인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변질시킨 은혜 주의, 교리)를 만들어...
부인하지 않고, 쉽게 구원받는 방법을 계속해서 시도하려 듭니다.
육, 세상에서도 발을 빼기 싫고, 구원에도 발을 빼기 싫단 것입니다.
하여, 인간은 원래 죄의 덩어리라 절대 변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육을 버리지 않고 살아도
믿기만(?)하면 은혜로 구원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 그런 걸 마음속 깊이 원하기 때문에 의지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부인하고 변화돼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단호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사람이 만든 돌연변이 은혜 주의이며, 주님의 기준이 아닌
사람의 육적 편의 기준에 입각한 교리적 방법일 뿐입니다.
이것은 영적 반칙이므로 주님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5장 39-40절)
제발 부탁드립니다...
믿음을... 육적 기준의 이해타산에 맞춰 재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주님의 신성도, 교리의 틀에 가두고 판단케 됩니다.
그것은, 내 타입에 맞도록 최적화된 나만의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교리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슬며시
담치기 하여 구원받겠다는 불법 방정식입니다.
주님은... 사람 기준의 교리에 휘둘리는 분이 아닙니다.
기록된 말씀 기준대로 일점일획의 빈틈 없이 행하시는 분입니다.
자기 부인은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허나, 그 길 외에는 어떠한 편법의 길도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겠습니까...
나 자체가 육(죄)의 본체라,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육의 속성과
반대되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결코, 같이 동행할 수 없습니다.
두 입장은 절대 타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여...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맞춰야지, 육으로 찌든 나에게
하나님이 맞추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죄)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
성경에서 뜻하는 자기 부인이 무엇입니까...
육(죄)으로 물든, 내 기준에서의 호불호를 전부 쳐내고(거부하고)
주님 기준에서의 호불호를 전부 받아들이겠다는 서약입니다.
즉,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나도 싫어하고...
주님께서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좋아하겠다는 결단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부인한 사람의 테두리 안에는, 주님이 싫어하는
내 육의 속성이 계속 머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했노라 주장하면서도...
주님이 거부하는 육의 기질이, 습관적으로 계속 쏟아져나온다면
나는 애초에, 자기를 부인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거듭남과는 더더욱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은.. 그저 내 머릿속에서만 왔다갔다 하는 내 입술만의
선언이나, 이론처럼 실체 없는 무형의 관념적 조합이 아니라,
역동적인 삶이 동반되는, 실상의 열매입니다.
정말 가슴 깊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분과 동행하며 천국을 침노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 부인의 길...
그 방법 외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길 단호히 부인하려는 마음이 분명히 있어야 그분이 임하셔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는 은혜가 내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자기 부인의 결단이 곧, 회개와 거듭남의 열쇠인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회개와 거듭남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보는 실체들은
아주 잠시잠깐 동안 생겼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들입니다.
잠시잠깐 육의 기쁨을 누리고자 영원한 기쁨의 안식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간절히 또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8절)
랑별파파(다움카페/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