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童顔)’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거나 어린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세월을 거슬러 살아온 듯, 삶의 흔적이나 연륜의 자취나 생활의 때가 남보다는 적게 묻어 났을 때 우리는 흔히 동안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자신의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얼굴을 갖고자 하는 바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스스로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신 우리네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오랜 시간 거울 앞에서 치장에 골몰하곤 했던 것 같다. 공들여 세수를 하고 크림과 분을 바르고 머리를 매만지는 수고와 정성을 기울이며 스스로를 단장하는, 그 조용하면서도 설렘으로 가득찬 순간들이 있었기에 더러 시름겨운 세상살이의 고단함 쯤은 쉬이 이겨내고 견뎌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즈음이다.
어느 날 지나가는 말이라도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래, 인생은 살만 해. 세상은 나름 살아갈 가치가 있어. 그래 해보는 거야!’라며 즐거워지는 건 ‘젊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리는 설렘이나 희망과 미래 같은 연상 작용 때문이리라. 젊어 보이는 얼굴, 젊어 보이는 몸은 무릇 아직까지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패기(覇氣)가 깃들어 있기에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이를 세 개 가지고 있는 부자(富者)이다. 돈이 많은 부자는 돈을 다 쓰고 나면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다. 나는 나이 부자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계속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실 따지고 보면 ‘나이 부자’인 내가 진정한 부자(富者)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나의 생물학적 나이 즉, 주민등록 상의 나이는 30대다. 아주 가볍다. 가벼운 30대다. 왜냐하면 철이 안 들었기 때문이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이 철부지다. ‘철’은 봄철 혹은 여름철이라는 말에서 보듯 계절을 가리킨다. 그러니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이 철이 든 것이고, 사계(四季)의 순환을 모르는 것이 철부지(不知)다. 철부지의 의미는 쉽게 와닿는데, 철난다거나 철든다는 말의 뜻은 알 듯 하면서도 꼬집어 풀이하기가 쉽지 않다. 사전에는 ‘철’이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힘’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충분한 설명은 아니다.
다음에 내 얼굴 나이 즉, 말이나 행동 등을 제외하고 얼굴만을 보고 나타난 내 나이는 열대(10대)이다. 피부도 깨끗하거니와 세상 때가 없는 순수함이 얼굴에서도 드러나는 모양이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색조 화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학교 다닐 때부터 물리 치료로 날마다 운동을 하고 목욕을 했으니 얼굴에 노폐물이 쌓일 여유가 없었던 것일 테다. 깨끗한 피부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때부터 20여 년 동안 날마다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었다. ‘이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나의 생각 나이는 내 입을 통하여 드러난다. 다시 말해 사람들과의 대화로 밝혀질 때가 많다. 아직까지 나는 아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고 채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를, 이렇게 부족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더 도전적이고 기대되고 희망적이다.
내가 어릴 때(꽃다운 열 다섯 살) 예기치 못한 교통 사고로 큰 시련을 겪었다.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걸음으로써 쉽게 말하여 인생 경험을 일찍 한 거였다. 그것은 책에 나오는 지식이 아니라, 내 실제 삶을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간접 체험을 시켜주었다. 나도 그들을 이해하려 하고 그들도 나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해 주었다. 종종 내 얘기를 듣고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훌쩍이는 이웃들이 있어 나는 더 힘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본다면 나처럼 복(福)이 많은 사람도 없을 터이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고 내 힘으로 일어나 하루를 열어가는 매일매일이 이렇게도 감사할 수가 없다.
감사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쉽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활짝 지어도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또 함께 일하는 이웃들에게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고맙다고.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렇게들 말하면 그 말이 나에게 두 배로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따뜻한 웃음과 감사하는 마음들이 바로 마음을 열고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 년이 되면 어김없이 ‘한 살’이라는 나이를 선물받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 일 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닐 테다.
생물학적 나이, 얼굴 나이, 생각 나이를 가진 나도 젊다면 젊음 그 자체로, 나이 들었다면 든 그대로 사람들에게 베풀며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나잇값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