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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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돈난(Donnan)
축일 4월 17일
성 돈난은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에이그 섬에
은수자들의 공동체를 세우고 지도하였다.
어느 해 부활절에 그가 미사를 봉헌하는 중에
무장한 사람들이 침입하였다. 그들은 미사가 끝나자
수도자들을 건물에 몰아넣고 불을 질렀다.
수도자들은 모두 타 죽었다. 이런 야만적인 짓은
이 섬에 은둔자들이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사람들의 행위였다고 하나, 바이킹 해적들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 후 스코틀랜드의 교회는 이들을
모두 순교자로서 높이 공경하는데,
돈난은 그들의 대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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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란데리코(Landericus)
축일 4월 17일
성 란데리쿠스(또는 란데리코)는
성 빈첸시오 마델가리우스
(Vincentius Madelgarius, 9월 20일)와
성녀 발데트루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네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메스의 주교가 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은퇴하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의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성인 성녀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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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베르투스 드 튀랑드
(Robertus de Turlande, 또는 로베르토)
축일 4월 17일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쉐즈 디유
수도원의 초대 원장인 성 로베르투스 드 튀랑드
(Robertus de Turlande, 또는 로베르토)는 사제가
된 후부터 병자들에 대한 뛰어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공적 예배를 정성껏 봉헌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그는 클뤼니(Cluny)로 가서 수도자가 될
생각을 가졌지만, 성소를 확인하기 위하여
로마(Rome)에 있는 사도들의 무덤을 순례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스테파누스(Stephanus)라는 기사를
만나 회개시켰고,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을 떠나도록
권유하는데 성공하여 두 사람은 브리우드에
은둔소를 세웠다. 그들은 기도생활 외에는 손수
노동하여 얻는 수확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그 후 제자들이 몰려들므로
큰 수도원으로 발전되었다. 이것이 유명한
세르 디외이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규칙을 채택했는데 3백여 명의 수도자들이 있었다.
그는 1095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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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또는 마르치아노)
축일 4월 17일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와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또는 마르치아노)는
시리아(Syria)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한 듯하나, 보다 개연성 있는 것은 필경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에서 순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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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팔리코(Mappalicus)
축일 4월 17일
데키우스 황제는 아주 지능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는데, 주로 이교신전에 희생물을 바치게
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황제의 칙서가 카르타고
(Carthago)에까지 전해졌을 때 그곳의 주교인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가 제일 먼저
체포되었는데, 그는 신자들이 빨리 몸을 숨기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 마팔리쿠스(또는 마팔리코)는 미처
숨지 못하고 체포되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이때 함께 순교한 이들은 모두 1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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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리야(Elias)
성 바오로(Paulus)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축일 4월 17일
에스파냐 코르도바(Curdoba)의 사제
성 엘리야(Elias)는 노년에 그로부터 영성지도를
받던 두 젊은이, 즉 성 바오로(Paulus)와
성 이시도루스(Isidorus)와 함께 무어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목격증인이었던 성 에울로기우스
(Eulogius, 3월 11일)가 그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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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Petrus)
성 헤르모게네(Hermogenes)
축일 4월 17일
성 베드로(Petrus) 부제와 그의 봉사자인
성 헤르모게네(Hermogenes)는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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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파노 하딩(Stephen Harding)
축일 4월 17일
영국 남부 도싯셔(Dorsetshire) 지방
쉐르본(Sherborne) 태생인 성 스테파누스 하딩
(Stephanus Harding, 또는 스테파노)은 고향의
어느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스코틀랜드와
파리(Paris) 그리고 로마(Rome)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몰렘(Molesme)의 은수자 그룹에
가입하였다. 이때 그는
성 로베르투스(Robertus, 4월 29일)와
성 알베리히(Alberich, 1월 26일)의 지도를
받는 행운을 얻었다. 1094년 원장과 4명의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또 다른 영적 생활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곳을 떠날 허락을 받았다.
성 로베르투스는 시토(Citeaux)에 수도원을
세우고 성 스테파누스를 장상으로 임명하였다.
만년에 그는 맹인이 되었고 시토에서 운명하였으며,
1623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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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니체토(Anicetus)
축일 4월 17일
에메사 출신의 시리아인인
성 아니케투스(또는 아니체토)는 교황 비오 1세
(Pius I)의 뒤를 이어 155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마르키온주의(Marcionism)와
영지주의(Gnosticism)를 적극적으로 배격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의 재위 기간에 부활절 날짜를
두고 동방과 서방 교회의 논쟁이 벌어졌다.
사도 요한(Joannes)의 제자인 스미르나(Smyrna)의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가 로마(Rome)에 있는
그를 방문하여 부활 축일 날짜에 관해 논의하였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서로의 관행을
존중하기로 했으나, 이후 ‘부활 축일 논쟁’은
더욱 가열되어 다음 세기까지 열띤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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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James)
축일 4월 17일
야고보(Jacobus)는 매우 어린 나이로
페루자(Perugia)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사회에
들어가서 임종할 때까지 기도에만 전념하면서
살았다. 은수자들이 성모를 공경하는 뜻으로
흰 옷을 입는 허가는 그의 기도 덕분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은수자들처럼 그 역시 동물들을 매우
사랑하였다. 그는 자주 야외에서 설교하였는데,
개구리들조차 입을 다물고 조용히 경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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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베르하르도(Eberhard)
축일 4월 17일
도나우(Donau) 강변의 마륵탈에는 폐허가 된 성당이
많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방치하여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성당들을 우연히 보게 된
튀빙겐(Tubingen)의 백작 후고(Hugo)의 아내인
엘리사벳은 크게 놀라고 상심하여, 남편에게 성당의
재건과 더불어 수도원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리하여 후고는 수도원을 세우고 전쟁에서 승리한
감사의 표시로 프레몽트레회에 건네주었다.
이 선물은 매우 값진 것으로 4개의 성당을 비롯하여
광대한 토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기 위하여 에베르하르두스
(Eberhardus, 또는 에베르하르도)가 임명되었다.
그는 원래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서 재산이 많았으나,
그 모두를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고 이 수도회에
입회하여 성인으로 불리던 수도자였다.
그는 마륵탈 수도원에서 12년 동안 지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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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인노첸시오(Innocent)
축일 4월 17일
성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또는 인노첸시오)의
부모가 박해 동안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황제의 특별 사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부모에게만 한정되었다.
그래서 부모가 사망하자마자 그 자녀들은 이교도의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리하여 인노켄티우스는 야반도주하여 로마(Rome)로
갔다. 이때 그는 교황 성 멜키아데(Melchiades)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고, 후임자인 교황
성 실베스테르 1세(Silvester I)는 그를 부제품에
올리고 후일 토르토나의 주교로 파견하였다.
그는 28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하여 수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킨 모범적인 주교라는 칭송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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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Kateri Tekakwitha)
축일 4월 17일
캐나다 이로쿼이(Iroquois) 인디언들에게 체포된
알곤퀸의 딸인 카테리 테카크위타는
모호크족(Mohawk)인디언 추장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1676년에 예수회 선교사인 쟈크 드 랑베르빌
신부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나,
그녀의 신앙을 반대하는 부족과 친척들의 질시와
학대를 이기지 못하여 고향을 떠났다.
밀림 지대를 거쳐 200마일의 거리를 헤맨 끝에
몬트리올(Montreal)과 가까운 어느 그리스도교
인디언 마을에 당도하였다.
그녀는 1677년 성탄절에 첫영성체를 하였고,
1679년에는 정결서원을 발하고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녀는 캐나다의 코프나와가
(Caughnawaga)에서 선종하였는데, 그녀의 성덕이
뛰어나 만인의 공경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녀는 ‘모호크족의 백합화’라고 불리며,
198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에 의하여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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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 감바코르타(Clara Gambacorta)
축일 4월 17일
클라라는 '아주 맑은'이란 뜻이다.
클라라 감바코르타(Clara Gambacorta)는
피사 공화국의 우두머리가 된 피에트로 감바코르타의
딸로 1362년에 태어났다.
피사의 성 베드로(Petrus, 6월 17일)는 그녀의
오빠로서 일곱 살이 많다. 그런데 클라라가 일곱 살 때
그의 양친이 약혼을 시켰는데, 그녀는 이 약혼미사
중에 “주님, 제가 당신만을 사랑하는 줄 아시겠지요.”
하고 말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12세 때 클라라는 억지로 남편의 집에 보내졌는데,
그녀는 이때 이미 심한 고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는 특히 자비심이 뛰어났다.
어린 신부인 클라라가 시댁의 재산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녀의 시부모는 며느리의 착한 뜻을 알고 오히려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녀가 15세 되던 해에
남편과 자신이 열병에 걸려서 과부가 되었다.
주위에서는 재혼하라고 성화였으나 그녀는
시에나(Sien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편지로
힘을 얻고 피사로 갔다.
그 후 클라라는 머리를 깎고 남몰래 클라라회에
입회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오빠들은
수녀들을 위협하면서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고,
친정집에서 5개월 동안이나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마침내 그녀의 아버지는 가까운 곳에 있는
도미니코회에 입회하도록 허가하였다.
시에나의 카타리나의 가르침은 클라라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일생동안 참으로 열심한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녀가 운명하기 전에 그녀의 입가에는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고 한다.
클라라는 57세에 운명하였고, 1830년에 그녀의
공경이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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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판타가투스(또는 판타가토Pantagathus)
축일 4월 17일
프랑스 국왕 클로비스(Clovis)의 신하였던
성 판타가투스(또는 판타가토)는 사제직을 준비하기
위해 궁전을 떠났다.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후에 비엔의 주교로 승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