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40) - 2018 블라디보스토크 걷기 축제 참가기(3)
1. 얀코프스키 반도의 시지미 휴양소를 찾다
7월 9일(월), 종일 흐리고 쌀쌀한 날씨다. 오전 9시에 블라디보스토크의 숙소를 출발하여 북한과 가까운 하산지구의 얀코프스키(별칭 시디미, Sidimi) 반도에 있는 베즈베르호보 휴양소로 향하였다. 일행은 한국 팀과 일본의 가와타 시게루 팀에 러시아인 여러 명이다. 24명의 한국 팀이 한 버스, 15명의 일본 팀에 러시아인이 합승하여 두 대의 버스로 움직인다.
버스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벗어나 북쪽 방향으로 달린다. 커다란 만으로 둘러싸인 블라디보스토크 연안을 우회하느라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700km)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남동쪽으로 선회하는 육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벗어나니 낮은 구릉과 광활한 평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20여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의 우스리스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이 지역이 일망무제의 아득한 지평선으로 이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기록을 살펴보자.
‘9월 10일 오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우스리스크 지역을 방문하였다. 연해주를 구소련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도 제일 처음 고려인들이 정착한 지역이 우스리스크로 현재 약 1만5천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간단한 환영행사와 동포들의 삶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 고려인들이 많이 일하는 인근 시장을 둘러보고 강제이주에 직접 참여했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와 살고 있는 88세의 강일광 씨 집을 방문하였다. 노부부에게서 강제이주체험담을 듣고 그 집 마당에서 점심을 든 후 이곳 교민이 경영하는 아리랑농장에 들렀다. 약 300헥타르(90만 평)의 밭에 수박, 채소 등의 작물을 경작하는데 고려인 20명, 우크라이나인 5명, 조선족 150명, 북한에서 건너온 노동자 4명 등을 고용하는 대규모농장이다. 선 자세에서 보이는 시야가 37km인데 우스리스크에는 그러한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을 만큼 농사지을 땅이 많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농사짓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한국의 새마을중앙회에서 12,000헥타르(약 600만 평)의 농장을 개간하여 금년에 첫 수확을 올리는 등 이 지역의 농업전망이 좋다는 설명이다.’
차창으로 넓은 평원, 큰 강이 흐르는 목초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경작의 흔적이 없는 넓은 땅이다. 옆에 앉은 이는 호남석유화학 사장을 지낸 정범식 자문위원, 사업차 러시아를 자주 들렀다는데 이 지역의 지세와 정보에도 달통하다. 그는 이처럼 버려진 땅이 아깝다며 목장으로 활용하거나 한국의 기술과 북한⸱중국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개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 이에 동감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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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울창한 숲과 짙푸른 초원
12시 지나 도로변에 버스를 세워놓고 찾은 곳은 크라프초프 폭포,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낙폭 5미터 정도의 작은 폭포다. 폭포로 오르는 길이 최근에 내린 비로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사진 한 장 찍고 내려오니 행사를 주관하고 안내하는 엘리나 씨(현직 변호사인데 업무를 제쳐 놓고 봉사 중)가 폭포에 대하여 설명한다. 연해주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많이 있으나 길이 잘 닦아지지 않아 접근하기 어렵다. 크라프초프 폭포는 다섯 개의 폭포가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아래에 있는 폭포를 맛보기로 보여드리는 것, 다음에 더 좋은 폭포를 보기 원하면 언제든지 안내해 드리겠다.’
폭포 지점에서 출발하니 오후 1시 반, 목적지까지는 한 시간 반가량 더 가야 한다. 버스가 달리는 도로 옆으로 단선 철길이 남쪽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나진⸱선봉까지 연결되는 철도, 언제 저 길이 열려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을까.
잠시 조는 사이 버스가 덜컹거린다. 비포장도로에 접어든 것, 흔들리며 30여분 달리니 호수처럼 넓은 물길을 가로지르는 좁은 도로가 나타난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통로, 잠시 후 작은 어촌이 나타나고 이어서 베즈베르호보 휴양소에 이르니 오후 세시가 지났다. 김재일 씨가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거리는 170여km,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을 꽤 오래 걸려 당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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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디미에 도착하여 가방을 내려놓고 대기 중![](https://t1.daumcdn.net/cfile/cafe/993D70465B44853E23)
가방을 내려놓고 식당 행, 빵과 스프에 소고기를 곁들인 감자요리가 깔끔하다. 러시아를 자주 찾은 적 있는 이성남 씨의 코멘트, ‘이것이 정통 러시아 요리입니다.’ 외진 곳이라 와이파이가 안 될까 염려들인데 식당에서는 잘 통한다는 낭보, 지구촌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한 정보화가 고맙다.
식사 후 방을 배정(2인1실의 방갈로) 받아 입실하니 오후 다섯 시가 가깝다. 날씨가 스산하여 인근 언덕을 오르려던 산책을 취소하고 자유 시간, 따끈한 커피 한 잔 마신 후 피곤한 몸을 눕힌다. 휴식 후 실내수영장에 들러 몸을 풀고 식당 행, 마침 오늘 생일을 맞은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의 생일축하를 겸한 만찬이 되었다. 메뉴는 볶음밥과 빵, 냉채, 김치에 고사리나물도 등장한다. 생일 축하차 손명곤 부회장 부부가 동네 수퍼에서 사온 맥주로 건배,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느긋하다. 휴양소에 이르는 사진을 접한 아들의 메시지, ‘초목이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예전에는 우리 민족의 터전이기도 했던 지역, 자유롭게 오가며 공동의 번영을 일구면 좋으리라.
* 베즈베르호보는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경관이 매혹적인 연해주의 비경이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율 부린너의 조부 율리 이바노비치 브린네르가 자신의 소유지에 별장과 아들의 저택을 지었던 곳, 그는 원래 스위스 태생인데 1880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서 1890년에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였다. 선박과 탄광을 소유한 사업가로 학문과 예술계의 후원자였다. 뜻밖의 장소에서 개성적 연기로 명성을 날린 율 부린너의 색다른 이력을 알게 되어 흥미롭다. 작년엔가 그가 주연한 ‘왕과 나’를 TV로 시청하였다.
2. 가랑비 맞으며 오르내린 천혜의 오솔길
7월 10일(화), 흐리다가 비가 내린다. 아침에 일어나 바닷가로 나가니 산책을 즐기는 이가 여럿이다. 파도소리 들으며 심호흡, 심신이 상쾌하다. 8시에 아침식사, 9시 지나 풍광이 아름다운 산길 탐사에 나섰다. 출발에 앞서 휴양소장의 인사, 여러분이 찾은 시디미는 옛날 한국인이 살던 곳인데 지금은 러시아 땅이다. 작은 언덕과 주변경관이 아름다운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하며 우리가 선정한 두 개의 걷기코스를 비롯하여 머무는 동안 즐거운 시간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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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디미의 걷기 출발에 앞서 기념 촬영
걷기참가자는 60여명, 준비체조와 기념촬영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하는 모습이 활기 있다. 조용한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이 섬의 개발에 앞장 선 브린네르의 묘지가 있다. 섬의 당초개발자는 폴란드 출신의 이바노비치(그의 이름이 반도의 명칭이 되었다.), 그를 도와 발전시킨 베린네르는 이곳에 뼈를 묻었다고 러시아인 안내가 설명한다. 곧이어 흙길로 들어서니 조용한 시골마을,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다가 가량비로 변한다. 우산을 펴들고 10여분 걸으니 숲으로 들어선다. 이내 완만한 오르막길이다가 점점 가파른 언덕길, 숨을 몰아쉬며 한참 걸으니 바다가 보이는 능선에 이른다. 한데 어울려 사진을 찍으며 잠시 휴식, 이윽고 두세 개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에 접어든다. 망망대해를 옆에 낀 가파른 절벽에 핀 노랗고 하얀 들꽃이 아름답고 잘 자란 잡초, 우거진 나무 등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호젓하다. 힘들게 걸어 가파른 능선 정상에 이르니 오전 11시, 가까이서 걷는 일행들과 사진 한 장 찍고 빠른 걸음으로 내리막길에 나선다.
오를 때는 힘들게 한 시간여 걸었는데 내리막으로 바닷가에 이르는 시간은 20여분이다. 바닷가에서 다시 작은 언덕 지나노라니 바위틈에 핀 한 송이 주황색 들꽃이 멀리서 온 나그네를 반긴다. 옆에서 걷던 이장수 씨가 이를 보고 찬탄하기에 깊은 산 속 홀로 핀 난초를 보고 깨친 공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알아주는 사람 없이 떠돌던 공자가 노나라로 향하던 중 인적 없는 골짜기에서 난초와 만나게 된다. 공자는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핀 난초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처음에는 탄식하다가 곧 그 빈 골짜기의 난초처럼 남이 알아주든 말든 고결한 향기를 가꾸며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잠시 걸으니 고즈넉한 동네가 나타난다. 아름다운 마을, 생업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동네를 휘돌아 한참 걸어 출발지점에 이르니 12시 15분, 11.5km의 제1일 코스를 2시간 40여분 걸었다. 계속 비가 내리고 안개도 자욱하여 더 아름다운 경관을 놓쳤을까, 전날 손명곤 부회장이 들려준 날씨에 관한 러시아 속담에서 답을 얻는다. ‘대자연에는 좋은 날씨, 나쁜 날씨가 없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햇빛이 반짝이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런다. 단지 사람이 자기 형편에 맞춰 날씨가 좋으니 나쁘니 불평할 따름이다.’
걷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하니 개운하다. 잠시 쉬었다가 오후 2시에 점심식사, 열심히 걸은 뒤끝이라 입맛이 좋다. 나머지 스케줄은 오후 4시 반에 수영하기, 6시 저녁식사, 7시 콘서트로 잘 먹고 열심히 활동하고 푹 쉬는 일정이다. 선남선녀 세상살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은가, 가랑비 맞으며 오르내린 오솔길에서 만난 풀꽃처럼 그윽한 향기 내뿜으며 남은 때를 아름답게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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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2층에서 열린 콘서트, 휴양소 전속예술단이 러시아 전통음악과 춤을 선보인다. 우리의 민요가락 비슷한 음정이 청아하고 카츄사의 노래가락이 경쾌하다. 한데 어울려 신나게 추는 춤판에 첫번째로 뽑히기도.
첫댓글 가랑비 맞으며 오르내린 천혜의 오솔길이라니...우리 원에 오솔길이 있었는가 생각하다 웃었습니다. 천혜라는 글자만 들어도 원이 생각나니 이만하면 저도 천혜사람인가(?) 싶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뵐께요. 홀로 피어난 난초와 같은 삶...디게 욕심나는 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