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가는 길 비는 내리고
여유있는 관람을 위해 습관처럼 일찍 길을 나섰다
퇴근길 붐비는 차 틈에 끼어 도로에 갇혀있고 싶지 않아 이른 시간 도착해
차 한잔 마시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좋다
오늘 공연은
피아니스트 김대진 님과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올라 김 부녀의 공연이다
부녀가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딸과 함께 공연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공연하는 딸
음악에서 만큼은 철저히 부녀의 관계를 잊고 각자의 악기를 다루었으리라
피아니스트 김대진 님은 11세 때 국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할 정도라고 하니
그 천재성은 일찌감치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줄리어드 음대에 재학중
로베르 카사드쉬 국제 피아노 쿵쿠르에서 1위에 올라 한국을 빛낼 피아니스트로서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그의 음악을 평할 때 유연한 테크닉과 독창적인 작품해석을 높이 산다
놀라우리 만치 정확하고 눈부신 연주를 보여주는 솔리스트라고 뉴욕타임즈가 극찬한 바 있는
파비올라 김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개성 넘치는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음악가다
객석의 조명이 꺼지며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기 전의 설레임
이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는 나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D장조는
마치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듯한 연주였다
바이올린이 재잘재잘 말을 하면
피아노는 중저음으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고
서로 눈을 보며 마음을 열어가는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뭔가 신나는 놀거리를 생각해 냈는지
알레그로 비바체로 끝을 내니 둘은 아마도 놀러 밖으로 뛰어나갔으리라
*프랭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는
사춘기 딸과 엄한 아빠의 대립을 상상하게 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의견이 안 맞는지 바이올린이 좀 언성을 높인다
피아노는 같이 화를 내지 않고 중저음으로 다독여주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같이 고성을 지르며 다투는 듯 격렬해 졌다
결국엔 차 한잔하며 의견 조율을 끝낸 것 처럼 보인다
아마도 바이올린이 명랑한 음을 내는 걸 보니 아빠의 양보가 많이 있었으리라
인터미션 시간 15분 동안에도 내내 감동이 가라앉질 않는다
이어지는 두 곡은 애써 가라앉히려던 마음을 더 흔들어 놓는다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G 단조는 '악마의 트릴'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악마의 트릴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곡은 정말 악마가 작곡해준 곡이 아닐까 할 정도로
연주자에게 너무나 까다로운 테크닉을 요구한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역시나 파비올라 김은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활을 몰아붙인다
현 위에서 춤을 추듯 격렬하게 움직이던 활은
갑자기 실처럼 가는 고음으로 치솟다가 활을 수평으로 눕혀 저음으로 곤두박질 친다
날카로운 고음이 저렇게 고울 수도 있는 거야? 하며 놀랜다
파가니니가 연상되는 연주곡이다
파비올라 김은 어느새 전설의 파가니니가 되어 있었다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으며 고음과 저음을 오르내리는 파비올라 김은
마치 벼락이 쳐도 연주를 멈추지 않을 만큼 몰입도가 높다
그녀의 숨소리 하나까지 연주에 녹아든다
연주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몰두하다보니
이 모든 소리는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온 몸에서 자아내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파우스트 환상곡을 연주한다
메피스토 텔레스에게 영혼을 팔아서 까지 그 어떤 힘을 얻고자 했던
파우스트의 모습을 상상하며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곡이 끝났다
그치지 않는 박수 소리에 두 연주자는 다시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한다
앵콜을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녀가 악마의 트릴을 연주하며 모든 기를 다 쏟아낸 듯 하여
더이상 곡을 청하기가 미안하다
그냥 인사만 하고 들어가도 더 바랄 게 없었는데
두 사람은 무려 2곡이나 더 연주를 한다
듣는 내내 좋으면서도 미안한 이 이중적인 마음은 뭐람
아름다운 밤을 만들어준 두분 감사합니다
너무 멋진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