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7장
파라오가 가자를 치기 전에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1)
The word of the LORD that came to Jeremiah the prophet against the Philistines, before that Pharaoh smote Gaza. 1)
지금의 가자와 가자는 같은 지역으로 보입니다. 이집트가 북쪽으로 진격을 하려면 바다와 사막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가자지구지역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예레미야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전달하였을까하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여집니다. 왜냐면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투옥되는 상황인데 다른 민족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상황이 아니라고 보여지며 그리고 당시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예루살렘의 예레미야가 가자의 필리스티아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려면 긴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방민족들의 멸망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예레미야가 느부캇넷살왕에게도 특별히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볼때 주께서는 그의 사명의 민족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이민족들이 사용하시며, 주의 시각에서는 이스라엘이 세상을 구원할 사명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자리로 나오도록 하는 과정의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이스라엘은 실패를 거듭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약속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명을 감당하시어 지금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안의 마음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물들이 북쪽에서 일어나 넘치는 홍수가 되어 그 땅과 그 땅에 있는 모든 것과 성읍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고 그 땅의 모든 거민들이 애곡하리라. 2)
Thus saith the LORD; Behold, waters rise up out of the north, and shall be an overflowing flood, and shall overflow the land, and all that is therein; the city, and them that dwell therein; then the men shall cry, and all the inhabitants of the land shall howl. 2)
howl ① 울부짖다 ② 웃음·조소를 짓게 하는 것 ③ 하울링
가자의 필리스티아인들에게는 남쪽의 이집트가 침략해오는 상황인데 북쪽의 앗시리아와 바빌론이 강성해져 침략하러 내려오므로 그들은 전쟁의 한 가운데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의 힘센 말들이 구르는 말발굽 소리와 그의 병거들의 돌진하는 소리와 그의 바퀴들의 덜컹거리는 소리에 아비들이 손에 맥이 빠져 자기 자식들을 돌보지 못하리니 3)
At the noise of the stamping of the hoofs of his strong horses, at the rushing of his chalots, and at the rumbling of his wheels, the fathers shall not look back to their children for feebleness of hands; 3)
feebleness ① 약함 ② 허약함 ③ 무력함
자기 자식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사람이 가진 가장 강력한 의지로 느껴집니다. 현실 전쟁의 모습은 그런 의지마져 힘이 빠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필리스티아인들을 약탈하러 오는 날과 투로와 시돈으로부터 남아 있는 모든 돕는 자들을 다 끊어 버릴 날로 인하여, 주가 캅톨 지방의 남은 자들인 필리스티아인들을 약탈하리라. 4)
Because of the day that cometh to spoll all the Philistines, and to cut off from Tyrus and Zidon every helper that remaineth: for the LORD will spoil the Philistines, the remnant of the country of Caphtor. 4)
캅돌, 갑돌은 지금의 크레타 섬을 가리키며, 이 필리스티아인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보입니다.
시돈과 투로는 키프로스(구브로) 섬으로 나가는 항구가 있었던 곳입니다. 이 당시의 뱃길은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아니고, 해안가를 따라서 항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크레타섬에서 살던 필리스티아인들은 구브로를 거쳐 시돈과 투로를 통하여 가자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들을 주께서 앗시리아와 바빌론으로 그들의 근거지까지 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가자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클론은 그들의 계곡의 남은 자들과 함께 끊어졌으니 네가 언제까지 네 몸을 베겠느냐? 5)
Baldness is come upon Gaza; Ashkelon is cut off with the remnant of their valley: how long wilt thou cut thyself? 5)
아슈켈론, 아스클론은 가자지역의 북쪽 인근입니다. 이집트로 가는 길목에 살고 있었던 캅톨(크레타)출신의 필리스티아인들이 바빌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현대 전쟁과 달리 당시의 전쟁은 군대가 걸어서 정복하는 전쟁으로 지역이 대머리처럼 황폐화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주의 말씀은 그들에게 경고가 아니라 먼 미래의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민족은 갑자기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재앙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필리스티아인들이나 이스라엘이나 모두 전쟁에 패배하여 고통당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필리스티아인들은 멸망이고, 이스라엘은 경고인 것입니다.
재앙은 멸망도 있고 경고도 있는 것입니다. 끝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기의 길대로 가는 사람들은 보통 아무일이 없습니다. 평안합니다. 죄를 지어도 일이 잘 풀리고 세상적으로 행복하게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멸망의 재앙이 닥칩니다. 그에 반하여 말씀을 순종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징계가 들어옵니다. 어찌보면 믿기전의 삶이 마음은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징계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신을 살리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신앙이 없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요. 그들은 방치되어 경고조차 주어지지 않는 버려진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 너 주의 칼이여, 네가 잠잠하기까지 얼마나 있어야 하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쉬고 가만히 있을 지니라. 6)
O thou sword of the LORD, how long will it be ere thou be quiet? put up thyself into thy scabbard, rest, and be still 6)
ere ① …하기 전에 ② …의 전에 ③ …않는 동안에
scabbard ① 집 ② 칼집 ③ 칼집에 꽂다
위 말씀의 주의 칼은 바빌론으로 느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바빌론은 일루미나티입니다. 지금의 전쟁은 군인이 걸어서 정복하는 전쟁이 아니라 미디어를 장악하고, 부정선거를 하고, 화학물질을 비행기로 뿌리며, 동성애로 죄로 오염될 것을 강요하는 정복전쟁입니다. 일루미나티는 주의 칼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일루미나티를 분석하여 그들의 뜻을 찾기 보다 성경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일루미나티의 뜻은 없어서 당신이 찾아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당신이 찾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없어서 찾을 수 없는 일루미나티의 뜻과 질서를 찾아 해매고, 정작 말씀은 멀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알지 못합니다.
주가 아스클론과 그 해변을 치라고 명하셨으니 어찌 잠잠하겠느냐? 그곳에서 그가 그 일을 지정하셨느니라. 7)
How can it be quiet, seeing the LORD hath given it a charge against Ashkelon, and against the sea shore? there hath he appointed it. 7)
주께서 필리스티아인들의 거주지 아스클론과 그 해변을 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의 재앙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코로나 백신과 그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허락된 것입니다. 주께서 이땅을 코로나백신으로 치라고 허락하셔서 이 땅의 사기극이 일어난 것이며,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고 육신의 재앙을 받은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것이 위 말씀에 나타나는 필리스티아인들의 멸망과는 다른 경고라는 것입니다. 멸망은 짐승의 표입니다. 짐승의 표를 분별하지 못하고 인내하여 거부하지 못한다면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와 코로나백신은 주께서 우리에게 경고를 주시기 위하여 보여주신 일들이며, 결과적으로 은혜인 것입니다. 백신으로 기만당했던 사람들은 짐승의 표의 속임수에서 인내할 힘이 더 클수도 있습니다. 백신은 멸망의 재앙이 아니라 경고의 재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