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을 하는 공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우선적(優先的)으로
옷을 입고 식사를 하고 앉고 누울 거처가 있으므로 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종교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단체라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은 예외일 수 없다.
一日不作(일일부작) 一日不食(일일불식)
하루 동안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식사하지 않는다.
<백장(百丈)>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육조 혜능(慧能) 대사, 남악 회양(南嶽 懷讓) 스님,
그리고 중당기(中唐期 767-829)에 이르러 마조 도일(馬祖 道一 769-798) 스님이 출현하여
중국의 선종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마조 스님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 하여
사람들이 평상의 마음 생활이 그대로 도의 삶이라는 주장을 외치며
지금까지의 상류층 중심의 선을 서민층 중심의 생활선(生活禪)으로 구체화하였다.
그 후 마조 스님의 제자인 백장 회해(百丈 懷海 749-814) 스님에게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선 수행의 도량이 만들어지게 되어 생활과 선이 하나임을 몸으로 체현하게 되었다.
소위 총림(叢林) 제도라는 게 그것이다.
그래서 선 생활의 지침서인 백장청규(百丈淸規)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 청규(淸規)의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한 게
곧 여기에 소개한 만고의 명언인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다.
백장 스님 당시에는 서당 지장(西堂智藏 738-817)스님, 남전 보원(南泉普願748-835) 스님,
단하 천연(丹霞天然 739-824) 스님들과 같은 선(禪)의 대종장(大宗匠)들이 때를 같이 하였으며,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뒤를 이어 황벽 희운(黃檗希運), 임제 의현(臨濟義玄),
흥화 존장(興化存獎)으로 계승되었으니 참으로 화려한 선불교의 황금시대라 할만하다.
“하루 동안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식사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모든 수행자는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 그대로
일체 의식주 문제를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편타당한 진리의 삶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의 평상 마음 생활이 그대로 도의 삶이라는 주장을 하신 스승,
마조 스님의 생활선(生活禪)을 더욱 구체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상생활이 그대로 진리며 도다.
먹고 자고 입고하면서 그에 필요한 자원들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모두 진리의 삶이다.
선(禪) 생활이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그대로다.
자고 일어나서 세수하고 식사하고 출근하여 맡은 일들을 처리하는 것,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일상사가 그대로 사람의 일이며 도의 표현이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을 총림 생활의 규칙으로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규칙이면서 그것은 곧 도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에 도를 나타낸 가르침이다.
규칙이 도에 어긋나면 도를 숭상하는 총림의 규칙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의 총림 규칙이나 수행규범으로는 하루 동안 공부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식사하지 말라[一日不學 一日不食]고 바꿔서 이야기 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제는 옛 총림처럼 농사를 짓는 노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강원이나 선원이나 사찰행정부서나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밥값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불교에서 높이 숭상하여 곳곳에 써서 부쳐두고
항상 마음에 새기는 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또는 맡은 바의 임무에 따라서 자기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곧 진리의 삶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이라는 말과 더불어 사찰의 청규(淸規)이면서 선 생활의 지침이 된다.
-무비 스님의 명언 명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