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자연속학교] 둘째 날, 많은 부모님들이 애쓴 덕분 - 23. 7. 8
7월 8일 흙날 날씨 : 하늘이 흐리다. 낮에는 햇볕이 제법 뜨겁다. 저녁에는 선선해서 좋다.
제목 : 많은 부모님들이 애쓴 덕분
대개 자연속학교를 오게 되면 이른 아침부터 잠이 깨서 부스럭거리거나 옆 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둘째 날인데도 6시가 넘도록 조용하다. 그러다 6시 30분쯤 되자 2학년 남자아이들은 다 깨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7시 30분에 아침 산책하러 나가보니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파도도 잔잔해서 여유를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그다지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일어난 아이들이 기운찬 걸 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나 보다.
어제저녁과 마찬가지로 금강산 콘도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자연속학교에 와서 외식을 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늘 부모님들이 학교에서 반찬 재료를 가져가서 정성을 양념으로 넣고, 손맛으로 만들어 낸 맛있는 반찬을 먹는 게 자연속학교 식단이다. 학교에서보다 더 많이 놀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다 보니 밥을 잘 먹기도 하고 많이 먹는다. 그렇게 당연한 것에서 벗어나 외식을 한다는 건 아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도 할 것이다. 물론 부모님들이 맛있게 만들어 준 반찬보다는 덜 하겠지만 말이다. 어떤 밥을 먹든 맛있게 먹고 잘 놀면 그것만으로도 자기 앞가림 반은 한 셈이기도 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밥을 먹으면 된다.
짧게 아침열기를 하고 아침나절 일정인 통일전망대로 간다. 출입 신고를 하고 따로 교육이 없어서 바로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어서 편했다. 신고를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이들에겐 지루했던지 언제 가냐고 여러 차례 물어보기도 하고 선생과 묵찌빠 놀이를 하기도 한다. 뒤에 앉은 해솔이는 통일전망대 가는 것보다 물놀이가 더 하고 싶은지 '아~ 재미없다. 심심하다.' 를 줄곧 이야기한다. 해솔이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 머릿속은 언제 물놀이할까? 로 가득 차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절로 났다. 물놀이가 그렇게 좋을까? 바닷물이 끈적거리고 햇빛이 따가워 살이 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선생에게 줄곧 물어보고 재촉하는 아이들이 조금 놀랍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물놀이는 가장 신나는 놀이 가운데 하나일 터이니 조금이라도 빨리, 몇 분이라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전망대에 닿아서 휴전선 너머 보이는 금강산을 바라본다. 날이 조금 흐리긴 하지만 금강산 옥녀봉과 다른 봉우리를 보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몇 년 전에 고성 답사를 왔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대학생 때 다녀왔던 금강산이 생각났다. 2박 3일 동안 짧게 다녀오고 이제는 대부분 기억이 희미해져 버렸지만 강렬하게 다가왔던 금강산 삼일포 풍경, 그리고 금강산 호텔에서 먹었던 저녁, 북한 대학생과 만났던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 벌써 17년 전 일인데 언제쯤에나 다시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을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자연속학교 오기 앞서 옹달샘 어린이들과 6.25 전쟁과 통일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간절히 바라고 그 마음이 어른들에게도 전해지고 또 전해지다 모이면 언젠가는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전망대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도 쓴 다음에 외식으로 먹는 마지막 밥인 점심을 기차 식당에서 먹은 다음에 DMZ 박물관을 둘러보고 잠집으로 들어온다.
잠집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줄곧 잠집에 언제 들어가냐, 바로 물놀이를 할 거냐고 묻던 아이들인데 반나절 바깥 활동을 하고 와서 좀 쉬어야 한다. 그리고 물 온도도 물놀이하기 알맞게 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해야 하고. 남자 아이들은 방에 들어와서 침대방에서 자기들이 만든 놀이를 떠들썩하게 하는데 몇몇 아이들이 와서 언제 물놀이를 하냐고 묻는다. 이럴 때 보면 아이들은 정말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놀고 놀고 또 놀 수 있는 어마어마한 충전지 같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기운이 자꾸 충전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아이들 바람을 바로 들어주고 싶지만 같이 나가야 하는 선생과 부모 선생들도 쉬어야 하기에 2시에 나갈 채비를 해서 바닷가로 나간다.
주말이라 그런지 물놀이를 하러 온 관광객이 많다. 가족 단위로 와서 물놀이를 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아이들도 첨벙첨벙 물에 들어와서 헤엄도 치고 튜브를 타고 놀기도 한다. 어제 짧게 물놀이 할 때 캔 조개가 있어서 이번에도 준희와 도현이, 도윤이를 중심으로 조개를 캔다. 선생들이 바닥을 긁어서 조개를 찾아내면 아이들이 잠수를 해서 조개를 캐는 식이다. 저마다 기운껏 놀고 들어오니 오늘은 어제보다 길게 1시간 20분쯤 물놀이를 했다. 달날부터 비 예보가 있어서 아마 물놀이는 내일까지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놀이를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겠지.
물놀이를 마치고 잠집에 들어오니 또 씻고 옷 갈아입는 게 일이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저녁부터는 부모님들이 채비한 반찬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데 부엌과 마루가 밥을 먹고 정리하기에는 사람 수가 많아서 복잡하다. 그래도 작은 것이라도 꼼꼼하게 챙기는 부모 선생님들이 있어 아이들은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다.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주시고 내일 먹을 반찬까지 미리 채비해두니 선생 손이 갈 일도 없어 한없이 고마운 마음만 든다. 반찬 만드는 것도, 부모 선생으로 내려와서 이것저것 챙기는 것도 다 자연속학교를 잘 지내다 오길 바라는 많은 부모님들이 애쓴 덕분에 아이들이 잘 먹고 잘 놀 수 있다. 그러니 선생은 더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을 챙기고, 저마다 기운과 함께 사는 기운을 살릴 수 있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미리 모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7시 30분쯤에 1학년 아이들이 먼저 남자 아이들 방으로 건너오기 시작해서 바로 마침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인 아이들 얼굴을 보니 피곤한 기운이 눈 밑 곳곳에 묻어있다. 오늘 줄곧 바깥에서 돌아다니고 물놀이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마침회를 빠르게 끝내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놀이 한 판을 하자고 해서 후라이팬 놀이를 하는데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나를 줄곧 지목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아이들은 그렇게 장난스럽게, 왁자지껄하게 선생과 노는 걸 좋아하는 때가 많고 그건 나도 그렇다. 피곤해서 차분하게 끝날 것 같았던 마침회가 떠들썩하고 한바탕 웃으면서 끝이 났다.
오늘 밤에는 옹달샘 남자 어린이들이 둘씩 나눠서 자게 되었다. 침대방에 자고 싶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자연스레 나뉜 것인데 그래도 이야기는 듣고 싶단다. 그래서 어제 들려준 이야기에 이어 짧게 들려주니 어제 시시하다고 했던 것과 달리 만족한 듯한 말을 남기며 잠자리에 들어간다.
오늘 하루 잘 놀고, 잘 먹느라 다들 애썼다. 내일은 내일대로 또 재미난 하루를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