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품격
- 대통령 (국가 원수) 이란 자리는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잘 아시다싶이 대통령은 외국에 대하여는 국가를 대표하며 국내에서는 군 통수권자이자 행정수반이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들의 과욕 또는 판단 착오로 수 천만명의 국민이 이유도 모른채 전장으로 끌려나가 헛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꽤 부유했던 나라가 하루 아침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신음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들의 비 상식적인 언행으로 어떤 경우는 국격이 실추되는 나라 망신을 불러 올 수도 있다.
- 최근의 예만 보아도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그랬고 이태리의 뭇소리니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의 도죠가 그랬다. 그리고 한 때 상당히 잘 나갔던 페론의 아르젠티나, 마르코스의 필리핀 그리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등이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인해 국가재정이 거덜난 케이스다.
- 1960년대 소련수상 ( 공산당 서기장 ) 후르시초프는 유엔총회에서 필리핀 대표가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를 비난하자 흥분한 나머지 큰소리로 떠들며 자기 구두를 벗어 탁자를 내리치는 소란을 피웠다는 기사로 자신은 물론 소련의 국격을 크게 떨어뜨린 사건이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소련국민은 교양이 없고 무례하며 독한 보드카나 마시고 하루종일 취해서 지낸다는 평판을 들어야 했다. 소련국민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을 것이다.
- 여기서는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이곳 밴쿠버를 스쳐간 분들로,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이곳 교민을 당황하게 했던 두분 대통령들의 에피소드 ( 한국신문,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던 ) 를 소개 하려고 한다. 먼저 소개할 분은 전두환 전대통령이다.
- 비록 육사시절 성적은 바닥을 기었지만 육사 축구팀 주장을 해서 통솔력은 좋았다고 한다. 이분은 집권후 1년 만에 동남아 5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 바로 개최한 각료회의에서 뜬금없이 우리나라도 국민학교 (당시) 에서 영어를 가르쳐야한다고 역설 한다. 그러자 여기에 한술 더 뜬 문교부장관께서 바로 다음 학기부터 국민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보고 한다. 이 보고에 대통령은 대 만족을 표하셨다고 했다.
- 한 나라의 어학교육이 그렇게 쉽게 이뤄진다면 영어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이미 전 국민이 마스터 했어야 했다. 국민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처음 시작 한다면 우선 영어를 가르칠 선생님부터 영어교육을 시켰어야 하고 그 준비기간도 수년은 필요한데 몇개월도 안 남은 다음 학기부터라니. 이런 즉흥적이고 대증요법식 보고를 하는 문교부 장관이나 이런걸 보고 받고도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흡족해 하는 대통령이나 지능지수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 이야긴즉슨 대통령 내외분은 동남아 5개국 순방 내내, 비록 통역이 24시간 보좌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초청국 정상과 지극히 간단한 인사말 한마디 주고 받을수 없었으니 그 불편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귀국하자마자 바로 <국민학교부터 영어를> 가르치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런 해프닝이 있고 나서 서울 대학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카더라” 식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 전두환 대통령의 육사시절 영어듣기시험 답안지.
아이엠 소리 I am sorry. 답 < 나는 소리다.>
예스, 아이 캔 Yes, I can. 답 < 그래, 나는 깡통이다 >
메이 아이 헬프 유 May I help you?. 답 < 5월 달에 도와 줄까? >
나이스 투 밋유 Nice to meet you. 답 < 너 이놈 잘 만났다 >
아마 이런 이야기 주고 받으며 낄낄대다 정보부원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리던 세월 이었다.
- 그런 그가 다음해에는 구라파 4개국 순방을 위해서 가는 도중 밴쿠버에 들린다. 당시 한국에서 구라파를 가려면 미국 알라스카의 앵커리지를 경유 (Technical Landing) 하는것이 보통이나 굳이 밴쿠버를 택한것은 관광의 목적이 컸다. 캐나다 정부로서는 정부 초청이 아닌 단순히 경유만 하는 외국 국가원수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 3일을 묵는데 도착 당일 오후 스케줄은 한가했는지 갑자기 이곳에서 제일 좋은 골프장이 어딘가 묻자 총영사는 샤네시골프장 (Shaughnessy Golf Club) 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그는 한국에서 하던식으로 지금 당장 그곳에서 골프를 치겠다고 했다. 당황한 총영사가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 샤네시 회원권을 가진 교민을 찾아 부킹요청을 하는데 그날은 이미 부킹이 끝나 칠 수 없다고 한다.
위기를 느낀 총영사는 그 사람을 보내 골프장측에 이분이 한국의 대통령임을 밝힌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한국의 대통령이라도 안되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총영사가 그런것 하나 해결 못하냐는 핀잔이 내려졌지만 축구주장 답게 잊는 것도 빨랐다.
- 그날 저녁 총영사관저에서 벌어진 리셉션에서 낮의 불쾌한 감정도 잊을겸 폭탄주를 몇잔 돌리고 나니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거기에 더해 그곳 테라스에서 바라본 앞 바다와 그 바다 건너 산 위에 위치한 노스 밴쿠버 (North Vancouver) 의 경치가 절경인지라 전 대통령은 역사에 길이 남을 한마디를 한다.
- “총영사!” “예? ” “ 저 경치를 보니 여기가 바로 그 천당 같은데 차마 천당 소리는 못하겠고 그러니 밴쿠버를 천당에서 하나 빠지는 999당으로 합시다.” “예, 각하!” 그 이후 밴쿠버는 999당으로 한국에 소개되어 이곳 교민들은 한국 친척들의 방문 러시로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이튿날은 교민업소를 직접 찾아 교민과의 대화를 하기로 했는데 일부 교민들이 광주사태관련 데모를 하기도 해서 경찰까지 출동하는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일찍 구라파로 향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 할지 모르겠으나 차라리 이곳에 들리지 않는게 교민과 대한민국을 위해 좋았을 것이라고 당시의 교민들은 전한다.
김영삼 대통령
- 이분은 1995년 10월 캐나다 국빈 방문차 오타와로 가는 도중 역시 이곳 밴쿠버에 중간 기착 ( Technical Landing ) 을 하게 된다. 구라파와는 달리 서울/뉴욕간 직항도 가능한 시절이라 서울/오타와도 중간 기착 없이 갈 수 있을 만큼 항공기 성능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밴쿠버를 중간 기착지로 선택한 것은 이곳에서 관광도 하고 또 교민들에게 평생을 독재와 맞서 싸워온 민주투사의 이미지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 도착 당일 은 B.C. 주정부로 부터 간단한 의전이 있었으며 이튿날은 낮에는 밴쿠버 관광을 한후 저녁에 시내의 캐나다 플레이스 ( 호텔과 컨벤션센터를 겸한 호화 유람선의 터미날 이기도 하다 ) 대 연회실에서 주정부 관계자및 교민초청 디너파티를 연다.
- 약 500여명 ( 대부분 교민 ) 의 참석자들로 파티는 대 성공 이었다. 주정부 관계자및 교민 대표들의 환영 인사가 있고 나서 드디어 Y.S. 가 단상에 오르자 우뢰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 우리나라는 잘 살게 되었고 전 세계에 부자나라로 알려져 OECD에도 가입하게 되었음을 자랑하는데 딱 거기까지로 끝났으면 아주 훌륭한 만찬장 연설이었을텐데 사족을 붙인다. 그 많은 돈으로 경치 좋은 캐나다의 밴쿠버 섬 ( VANCOUVER ISLAND ) 을 사고 싶다고 한다. 아마 그 날 오후 밴쿠버 섬 투어까지 다녀온듯한 발언이었다.
- 정말 외교적으로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그 돈으로 한 국가의 영토를 사겠다는 것은 금기중 금기라고 본다. 바꿔 말하면 중국이 우리도 부자가 됐으니 제주도를 돈 주고 사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경우 우리 국민들 정서를 헤아려 보면 짐작이 갈 일이다. 정말 다행인 점은 B.C. 주 관계자나 이곳 신문, 방송에서도 이 점을 크게 따져들지 않았다. 국빈방문 대통령이라서 예의상 봐준건지?
- 그로부터 2년 뒤, 공교롭게도 전에 Y.S. 가 사고 싶다고 하던 바로 그 밴쿠버 섬에서 APEC 회담 (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지도자회의 ) 이 열린다. 그 때는 이미 한국은 IMF 사태를 맞아 국가부도가 난 상태 ( 공식 발표만 미루고 있었다 ) 였는데 그 회의에 Y.S.는 한국 대통령으로 참석한다. 현지 TV가 뉴스시간에 전하는 회담 광경에 잠간 비친 초라한 그의 모습을 보며 그 날밤 필자는 Y.S.에게 한 없는 연민의 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 경제에 문외한인 그는 그 당시 한국이 아주 잘 나간다고 생각하고 너무 교만 했었다. 이전에도 무슨 문제로 일본과 대립하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고 해서 우리 외무부를 난처하게 했던 전과 (?) 가 있었다.
- 富贵而骄 自遗其咎 < 돈 많고 지위 높다고 교만한 자는 다만 스스로 허물을 남길 뿐이다 > 노자 제 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