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 주일 큐티
다니엘 6:1 ~ 10
‘일사각오’(一死覺悟)
관찰 :
1) 새로운 제국에서 세명의 총리 중의 하나가 되는 다니엘
- 1절.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 바벨론이 망하고 새로운 제국이 되었습니다. 다리오는 고레스와 더불어 메대 바사 연합군을 이루어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다리오가 바벨론을 맡아서 통치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리오는 바벨론의 120개 도를 통치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각 도를 다스리는 사람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제국의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 2절.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 다리오는 제국의 통치에 120명의 각 도의 장관들 위에 세 명의 총리를 두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리오의 원하는 사람들로서 구 바벨론의 잔재를 청산하고, 신 메대 바사 제국에 충성을 다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벨론 출신의 다니엘이 그 120명 도의 장관들을 다스리는 세 명의 총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파격이기도 했지만,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소문은 메대와 바사에 까지 분명히 알려졌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벨론의 모든 지역에 대해서 상세하게 파악하고 제국을 위하여 가장 손해가 없이 통치할 사람으로 다니엘보다 더 적임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리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많은 반대가 있었을지라도 다니엘을 등용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 자리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가장 지혜롭게 모든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 3절.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 다니엘은 지혜에 있어서 다른 어떤 사람과도 비교불가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가 보더라도 그의 지혜를 따라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상 다리오는 세 명의 총리 중의 하나보다 다니엘을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됨됨이와 지혜를 경험한 다리오의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2) 다니엘을 고발하고자 하는 이들
- 4절.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 다니엘 외의 다른 두 총리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짐작하건데 메대의 개국공신 급의 신하였거나 바사의 유력한 가문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유다 포로 출신의 다니엘이 자신들과 비견되는 것과 게다가 자신들보다 더 다리오의 총애를 받고, 심지어 자신들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힘을 모아 다니엘의 흠을 찾고자 애썼습니다. 사람은 원래 털면 먼지가 나는 법이니까. 그런데 다니엘이 아무리 흠을 잡고자 해도 흠이 없는 무결점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공직 생활에서 어떤 뇌물이나 억울한 판단이 없었고, 실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사생활에서도 도대체 흠을 잡을 수가 없었고, 덫을 놓아서 그의 실수를 유발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들과 동급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한 다니엘을 자신들이 어찌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다니엘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3) 다니엘을 고소하기 위한 법령
- 5절 ~ 9절.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 대적들은 거짓을 고했습니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했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상관인 다니엘과는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을 죽이고자 이들은 나라 전체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에 자신들이 하는 짓이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 금령이 결국은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 금령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들이 결코 그러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다니엘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대략 85살 즈음? 그는 어쩌면 이번 금령으로 자신의 생명이 마감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하여주실 것이고, 설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제껏 자신을 지켜주시고,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배반할 수 없다고 다시금 결연하게 ‘일사각오’(一死覺悟)를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대적들의 올무를 피하기 위해서 창문을 닫고서 기도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창문을 더 크게 열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더욱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가르침 :
1) 다니엘은 메대 바사 제국에서도 왕 다음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총리가 셋이지만 사실상 왕과 여타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는 2인자는 다니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를 넘어서는 지혜자나 총리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바벨론을 통치함에 있어서 다니엘보다 나은 자를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때문에 오는 역효과는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고, 그 시기심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높아지는 것은 좋지만 그로인해 발생하는 반대급부도 있음을 항상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로 인해서 많은 방비를 했고, 대적들로부터 어떠한 흠도 틈도 발견하지 못했고, 올무를 만들어도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2) 다니엘을 시기하는 이들은 급기야 나라 전체를 동원해서 다니엘을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에게 삼십 일만 경배하지 못하게 하자고 그들은 모략을 꾸민 것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다니엘이 그의 성격상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바로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인장이 떨어진 금령이 조서를 통해 온 나라에 반포되었어도 죽기를 각오하고 여전히 창문을 열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며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만일 이 시대라면 파파라치들을 동원하여 수많은 기도의 사진들을 찍어서 그 증거자료로 삼았을 것입니다. 대적들의 기대조차 저버리지 않는 다니엘의 모습입니다.
3) 다니엘은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노년의 안락함을 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잠깐만 세상에 타협하면 자신의 노년은 더욱 보장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더욱 더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룰에 타협하고, 신앙 양심을 팔아버리는 짓을 하지 않고 ‘일사각오’(一死覺悟)로 자신의 믿음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서 뜻을 정한 대로 그 인생을 끝까지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죽어도 여한이 없는 길이고,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는 가장 최고이자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적용 :
1) 다니엘은 대적의 고소에 흠도 틈도 찾을 수 없는 신기독(愼基獨)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했기에 다다른 지경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을 추구하다보니 세상의 사람들이 흠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디에서건, 누구와 함께 있건, 혼자 있던 간에 거룩한 언행심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감히 다니엘을 본받겠다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본받고자, 닮고자 애쓰고 함께 하길 소망한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내가 사모하고 닮기를 원하는 분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소망을 갖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로 나 역시 주님을 닮아가는 존재로서 동일한 목표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언제든지 주님과 동행함으로 누리게 될 믿음의 신기독(愼基獨)의 자리에 나아갈 것을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내가 부족해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결과 이전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내 일생의 도전입니다.
2) 다니엘이 그러한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이고, 죽어야 이룰 수 있는 지경이 있습니다. 나 역시 한번 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죽어야 한다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죽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 그 죽음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길이 아니라 죽고자 하는 길입니다. 신앙 생활이 언제나 그렇게 무겁게 힘들게 가는 길만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과정을 skip 해서는 진실한 것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 오늘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