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3 <정리> 23. 9. 13
지난주, 사흘에 걸쳐 옹달샘 방 벽에 페인트칠을 아이들, 옹달샘 부모님들과 같이했다. 올해 옹달샘 2학년 모둠 선생이 되고 모둠 방이 정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방에 페인트칠하면 좋겠다.’였다. 봄학기 초부터 계획을 이야기했는데 여섯 달이 지나서야 하게 되었으니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내는 동안은 깨끗한 방에서 아이들과 잘 지내면 되겠다 싶다. 무엇보다 벽이 깨끗해지니 방이 밝아지고 환한 기운이 가득 찬 것 같아서 좋다.
해마다 새 모둠을 맡게 되면 먼저 책장과 사물함 따위를 어디에 놓을지, 아이들 책상을 어떻게 놓고 지낼지 따위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 생각에서부터 아이들과 어떤 공부를 하며 어떻게 재미나게 지낼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을 거듭하며 해보고 싶은 것을 떠올리다 보면 ‘딱’하고 떠오를 때가 있다. 여러 생각을 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아무래도 ‘어떻게 하면 내가 한 해 동안 지낼 방을 깔끔하게 쓸 수 있을까?’다. 여러 가구와 짐을 필요에 따라 당연히 놓아야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덜 들여놓고 깔끔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든다.
학교 공간 곳곳을 보면 아이들이 공부한 것이 붙여져 있기도 하고, 장난을 하거나 오가며 벽을 만지다가 생긴 손때가 가득하다. 낮은 학년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나 손글씨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아기자기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 흐뭇하고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높은 학년들이 시간을 들여 공부한 여러 결과물을 보면 공부에 정성을 들이고 잘 해내려는 기운이 느껴져서 놀라울 때가 있다.
그런데 이따금 ‘여기를 좀 깨끗하게 하고 싶은데...’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이 만든 것과 논 흔적이 학교 곳곳을 어린이들이 지내는 초등과정다운 기운과 분위기로 채운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몇 달 또는 몇 년마다 바꾸거나 깨끗하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느 때 불쑥 든다. 순전히 내 생각이라 쉽게 바꾸거나 정리할 수 없고 나조차도 치워버리려고 할 때는 망설여지게 된다. 어떻게 했건 아이들이 한 것이고 이 공간은 아이들을 위한 곳이니까.
이렇게 학교에서는 조금 유난을 떤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것, 정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챙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공부하기 전, 공부하고 나서 뒷정리하는 것을 애써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나 혼자 사는 집에서는 조금 많이 느슨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집에서는 주로 잠을 자는 공간으로 여겨서 그런지 좀 설렁설렁하는 게 있다. 그래도 가진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한 번 정리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어렵지 않게, 짧은 시간에 끝낸다. 물건을 이곳저곳에 쌓아두는 것보다는 가진 물건을 최소화하고 필요한 만큼을 그때그때 사고, 가능한 물건을 수납장 속으로 넣어 보이지 않게 하니 단칸방이라 하더라도 방은 꽤 넓어 보인다. 어찌 보면 휑해 보일 정도로.
그렇게 물건을 줄이기 시작한 건 어느 때부터였을까?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때때로 들춰보며 버리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소하게는 주말이나 방학 때 방 청소를 하면서 굳이 없어도 되는 물건을 하나씩 버렸다. 그리고 서울에서 살면서 세 번 이사하면서 옷가지나 꼭 없어도 되는 것을 큼직하게 버리거나 정리했다. 그래서 학교에 가져다 둔 것도 몇 개쯤 된다. 물건을 버릴 때는 쉽게 버리는 것도 있지만 ‘버려야 할 것 같은데 아깝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추억이 떠오르고, 소중하게 여겼던 마음이 있고, 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물건 말이다. 그래서 버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짐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대개 이사할 때 가장 많은 고민이 드는데 추억이 있는 물건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이젠 쉽게 버리는 건 힘들 것 같고 남이 대신 버려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가진 물건에도 추억과 정이 스며있어 버리기 힘든데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와 지난 시간의 기억과 감정, 내 유년 시절과 꿈, 그 밖에 여러 과거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내가 실수하고 잘못했던 말과 행동, 상처를 주거나 비난했던 일, 알게 모르게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있는 감정은 몇 년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고 덮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플 때 깊은 곳에서 서서히 떠올라 힘든 마음을 더 뒤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런 흔들리는 마음과 감정을 빗자루로 쓱쓱 쓸어버릴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아니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다른 일과 쉼을 하면서 다시 가라앉히면 될 텐데 내 성격이 그렇지 못하다. 힘든 일이 있거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오면 가라앉을 때까지 그냥 버틴다. 그것도 꾸역꾸역. 나 자신도 이것이 건강하지 못하고 내 마음을 갉아먹는 것이란 걸 잘 안다. 그런데 다른 방법이 없다. 이렇게밖에 하질 못했고 다른 방법으로 편안해지지 못했으니. 때로 시간이 약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기억과 감정은 조각조각 나뉘어 내 몸 곳곳에 스며들어 평소에는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내 어려움과 미안함, 부끄러움, 죄책감 따위를 힘들 때가 아니라 기운이 있을 때, 안전한 곳에서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과 잘 풀어내고 싶다. 언제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짐작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지난 시간과 일을 한 번씩 툭툭 털어내고 정리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것은 빗자루질하고, 걸레로 닦아서 필요한 건 정리해서 예쁘게 담아놓기도 해야 할 터이고. 아마 그런 것들은 내가 쉽게 버릴 수 없고 버려서는 안 될 만큼 가치가 있고, 나를 거울 보듯 바로 바라보게 하는 것일 테니. 정리하는 것을 나름 잘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나에게 꼭 필요한 정리를 못 하고 있는 게 지금 내 모습이다.
첫댓글 정리❗️❗️
저에게도 과제라 요며칠 아이들과 조금씩 집정리를 하고 있어요.
저의 지난 몇년은 폭풍같았던 시간들이라
집에 그 흔적이…ㅠㅠ ㅎㅎ 저도 짐 많은거 안좋아하는데 정말 집에 있으면 스트레스 받아 죽을 거 같아요~~~!!! 또르르…ㅠㅠ
정리정돈과 머무는 곳의 아름다움을
학교에서 선생님께도 배울 수 있으니 더없이 좋네요.
저는 요즘 제 일상도 줄일 수 있는 것과 줄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고 들여다보게 돼요.
집정리도 해야하고 몸은 점점 아프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삶이어야 집도 정돈될테니요.
샘 글 보다가 제 신세한탄을 하게 되네요😄
선생님이 갖고 계신 마음의 짐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기도해요.
그것이 큰 사랑이길 바라는데요..
음.. 글로 적기 어렵네요..
저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에 그랬던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주세요…🙏
노학섭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시지요? 😄😄😄